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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16/불편한 골드스톤의 변절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과거 행동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정치인의 경우 ‘사후 합리화’ 방편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최근 이 화법으로 말미암아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인물이 있다.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3주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가자전쟁)을 조사한 ‘골드스톤 보고서’로 유명한 리처드 골드스톤이다. 골드스톤은 지난 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골드스톤 보고서는 달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이유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보고서 발간 1년6개월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논란을 사고 있다.


골드스톤의 언급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보고서가 낳은 파장 탓이다. 가자전쟁은 비대칭 전쟁의 전형이었다. 이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은 1400여명이 숨지고 5500여명이 다쳤다. 반면 이스라엘군 희생자는 13명에 불과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가자침공이 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골드스톤을 조사 책임자로 임명했다.


남아공 법관 출신인 골드스톤은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과 르완다 사태 전범 조사를 통해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다. 인종청소를 자행한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 등 보스니아 내전의 전범 용의자들도 그의 손에 의해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에 나온 라도반 카라지치(오른쪽) 라도반 카라지치는 지난 1995년 보스니아 내전당시 스레브레니차 인종청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전(前)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다. (출처: 경향신문 DB)

이 같은 명성 덕분에 유엔은 유대인이자 시오니스트임에도 그를 임명한 것이다. 골드스톤도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2009년 9월1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모두 책임이 있다’는 중립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했다. 유엔 총회는 그 해 11월 이 보고서를 승인했다. 하지만 보고서의 파장은 컸다. 이스라엘 정부와 전 세계 유대인 그룹의 반발이 빗발쳤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당시 “우리는 세 가지 전략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란 핵프로그램과 하마스의 로켓 공격, 그리고 골드스톤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격분했다.
골드스톤은 왜 입장을 번복했을까. 소신인가, 계속되는 압력에 굴복한 것인가. 아니면 시오니스트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가. 뉴욕타임스는 19일 골드스톤을 잘 아는 2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3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유대권의 반발, 계속되는 하마스의 공격, 이스라엘에 의한 사망자가 소수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의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 아랍세계나 친 팔레스타인 그룹은 전 세계 시오니스트 단체의 계속된 협박에 굴복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골드스톤의 언급을 ‘도덕적 붕괴’라고 표현한 한 팔레스타인계 언론인은 “충격이라기보다 수치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골드스톤의 언급은 소명의식이 가득한 법조인의 양심고백일 수도, 변절자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의 본심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양심고백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정치적·전략적 이해관계가 복잡한 중동문제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이라는 화법을 쓴 것 자체가 그를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자기 합리화의 방편이라면 불쾌하다.

이스라엘이 침공했던 가자거리에는 아직도 팔레스타인의 눈물이 흐른다. 팔레스타인 두 여성이 가자지구 거리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DB)



그의 발언은 이스라엘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그의 언급 직후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됐다”고 환영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향후 이스라엘의 유사한 군사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골드스톤의 입장 번복은 중동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악수(惡手)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