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내전 당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무슬림 남성 및 소년 약 8000명을 학살한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인 1995년 7월11일 오후. 당시 학살의 책임자인 세르비아계 군지도자인 라트코 믈라디치가 이 마을에 나타났다. 믈라디치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다독이던 장면은 TV 화면을 통해 방영됐다. 믈라디치가 보스니아 무슬림계 난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듯이 가장한 이 장면은 그러나 뒤에 감춰진 대학살이 드러나면서 전세계를 전율케 했다.

유고 내전 당시 스레브레니차 학살 당일인 1995년 7월11일 학살 책임자인 라트코 믈라디치가 마을을 방문해 무슬림 소년인 이주딘 알리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TV 화면. 스레브레니차 | AP연합뉴스


당시 TV 속의 주인공이 지난 31일 약 16년만에 AP통신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세르비아 정부가 지난 26일 체포한 믈라디치의 신병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인도한 날이기도 했다.

소년의 이름은 이주딘 알리치다. 현재 24살로 스레브레니차 인근 프로히치에 살고 있다. 알리치는 “당시 나는 8살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믈라디치가 누군지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알리치는 할아버지, 어머니, 두 여성 형제와 함께 다른 무슬림계 주민 2만명과 함께 유엔이 만든 수용소에 피신해 있었다. 이 수용소는 유엔이 유고 내전 중 무슬림계를 세르비아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알리치는 그날 왜 믈라디치에게 갔을까. 알리치를 ‘위험한 유혹’에 빠뜨린 것은 바로 초컬릿이었다. 그는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갔으며, 믈라디치로부터 초컬릿바를 받았다. 믈라디치가 이름을 물어보길래 ‘이주딘’이라고 대답했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오직 초컬릿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알리치의 할아버지는 가지말라고 했지만 8살 난 소년에게 초컬릿은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었던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가. 알리치가 초컬릿을 받아 게걸스럽게 먹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 사제트는 믈라디치 부하의 손에 의해 근처 숲속에서 학살됐다. 아버지는 전날 밤 마을 주민 1만5000명과 함께 마을을 빠져나와 산과 지뢰밭을 넘어 도망쳤지만 결국 믈라디치 부하들에게 붙잡힌 것이다. 알리치는 “아버지의 시신은 몇년전 공동묘지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유고 내전 당시 스레브레니차 학살 당일인 1995년 7월11일 학살 책임자인 라트코 믈라디치로부터 초컬릿을 받았던 이주딘 알리치가 지난 31일 스레브레니차 인근의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당시 TV 화면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어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스레브레니차 | AP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전세계를 전율케한 당시 TV 장면에서 알리치는 나이를 묻는 믈라디치에게 “12살”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성숙한 체 하기 위해 나이를 올려서 말한 것인 데, 스레브레니차 학살자 가운데 가장 어린아이가 14세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거짓말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가까스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피한 알리치는 내전이 끝난 뒤 지금 살고 있는 프로히치에 정착했다. 그는 건설노동자 일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며 살아왔다고 밝혔다.

믈라디치 체포 소식은 알리치와 가족에겐 커다란 위안이었다. 알리치는 믈라디치가 지난 26일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그는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면서 “최고형을 선고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P통신은 TV 장면 속의 주인공이 누군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수소문한 끝에 당시 믈라디치로부터 초컬릿을 받으려고 간 무리를 통해 그가 알리치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스레브레니차 인근 프로히치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Posted by em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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