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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스트로스 칸 성추문 ‘반전의 반전’(2011 07/19ㅣ주간경향 934호)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62)의 성추문 사건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스트로스 칸 총재의 성폭행 사건이 갈수록 의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5월14일 사건 발생 직후 스트로스 칸이 호텔 여직원(32)을 성폭행한 증거가 명백히 드러남에 따라 유죄 선고 가능성이 높았지만, 7월로 들어서면서 대반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측이 스트로스 칸에 대한 공소를 취하할 것이라는 기대는 검찰의 반발로 사그라지고, 그가 프랑스에서 정치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프랑스에서 또 다른 성추문과 관련한 고소가 제기되면서 곧바로 묻혔다. 남녀 치정 드라마처럼 얽히고설킨 스트로스 칸 성추문 사건이란 대반전 드라마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7월 6일 부인 앤 싱클레어와 외출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를 나서며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스트로스 칸 성추문 사건이 7월 대반전을 맞은 단초는 검찰 측이 밝힌 피해자의 거짓 진술이다. 피해자를 조사해온 뉴욕 맨해튼 검찰은 지난 6월 말 피해자 측 진술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사건을 사전에 공모했음을 보여주는 남자친구와의 전화 통화 내용, 마약 거래에 연루된 혐의, 거짓 내용을 기술한 망명 신청서 등 피해자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는 결격사유가 드러난 것이다.
 검찰 측은 지난 6월 30일 스트로스 칸 변호인단을 만나 이 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다음날인 7월 1일 스트로스 칸에 대한 보석 완화를 위한 재판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으며,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스트로스 칸에게 취해진 가택연금 조치를 해제했다. 스트로스 칸은 이 조치로 미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미국 언론들은 법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실상 검찰이 공소 유지에 실패해 조만간 공소 취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은 물질적 증거와는 별개다. 스트로스 칸이 성폭행했다는 증거는 드러난 상태다. 하지만 배심제인 미국의 사법체계에서는 피해자의 진술과 성장 배경 등이 무·유죄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검찰 측이 아무리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더라도 배심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죄 평결이 난다. 최근 두 살난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파티맘’ 케이시 앤서니(25)에 대한 무죄 평결이나 과거 미국 프로풋볼(NFL) 스타 OJ 심슨(64)의 살인사건의 경우가 그러했다.
 스트로스 칸 사건은 이때부터 주객이 전도됐다. 원고(호텔 여직원)와 피고(스트로스 칸)의 처지가 바뀐 것이다. 실제로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피해자의 ‘신상캐기’에 들어갔다. 뉴욕포스트는 지난 7월 2~4일에 걸쳐 피해자가 호텔에서 남자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했다면서 그를 ‘매춘부’라고 언급하는 등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냈다. 피해자 변호인 측은 이 신문과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반면 재판부의 가택연금 해제 조치로 자유를 되찾은 스트로스 칸은 뉴욕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신뢰성 논란은 검찰 측과 피해자 변호인 간 신뢰 싸움으로 번졌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피해자 측 변호사인 케네스 톰슨은 지난 6일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사이러스 밴스 뉴욕 맨해튼 지방검사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건에서 손을 떼고 특별검사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톰슨 변호사는 그 근거로 4가지를 들었다. 우선 밴스 검사의 보조검사가 지난 6월 30일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수감 중인 남자친구에게 한 대화 내용(“걱정 마. 스트로스 칸은 돈이 많아.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이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그대로 난 점을 들어 검사가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 고위 검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창녀’라고 주장한 뉴욕포스트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길 거부했다면서 “이는 당신 사무실의 검사는 피해자가 창녀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톰슨은 이어 검찰 관계자가 스트로스 칸 사건 담당 변호사와 배우자 관계인 점을 들어 잠재적인 이해 충돌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피해자를 조사하는 동안 고함을 지르고 존중하지 않았던 검사가 여전히 사건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검찰 측은 이 같은 피해자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반전 드라마는 프랑스 정가는 물론 뉴욕 검찰,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등에 영향을 미쳤다. 스트로스 칸이 소속된 프랑스 사회당은 내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인 스트로스 칸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며 환영했다. 13일로 예정된 대선 후보 등록 시한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사회당의 브누아 아농 대변인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수백만 프랑스 국민이 알고 있는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을 조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 이후 스트로스 칸이 후보 등록을 원하면 일정을 빌미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혐의가 벗겨지면 등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가까이는 스트로스 칸의 프랑스 정계 복귀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사법체제와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과 울분도 폭발했다. 스트로스 칸의 성추문은 프랑스인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한때 자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인물을 타블로이드 신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당 출신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미국의 사법체계를 비판하며 “스트로스 칸이 늑대떼에 던져졌다”고 말했으며, 로베르 바텡데르 전 법무장관은 스트로스 칸에 대한 미국의 처우를 “언론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스트로스 칸에 대한 미국의 처우를 ‘포르노그래피’에 비유했다. 뉴욕 맨해튼 검찰도 스트로스 칸 사건의 피해자다. 미국 내에서는 공소 유지를 해야 할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7월 5일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대해 성추행 혐의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프랑스 작가 트리스탄 바농이 파리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하지만 스트로스 칸의 부활은 잠깐이었다. 2003년 스트로스 칸을 인터뷰하려다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해온 여성작가 트리스탄 바농(31)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를 벗어난다 해도 프랑스에서 또 다른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바농의 고소가 스트로스 칸 성추문의 ‘시즌 2’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트로스 칸 측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기된 성폭행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명예회복은 물론 정계 복귀를 노리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스트로스 칸의 사생활과 여성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는 분석이 많다. 파리 정치학연구소의 파스칼 페리니우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스트로스 칸이 모든 혐의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의 행실에 대한 강한 의혹이 이어진다면 프랑스 정계 복귀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6일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5가지를 꼽았다. 프랑스 여성계와 망명 신청자, 미국 언론,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그리고 스트로스 칸이다. 포린폴리시의 지적처럼 어쩌면 이번 사건은 승자가 한 명도 없는,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게임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