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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이란 대통령·보수성직자 ‘파워게임’(2011 06/21ㅣ주간경향 930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55)은 서방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국가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곧바로 대서특필된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가시돋친 아마디네자드의 발언은 서방 언론들이 다루는 단골 메뉴다.
 이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있다. 정치지도자인 아마디네자드와 종교지도자이자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72) 간 권력투쟁이나 갈등이다. 음모론적 시각을 가지고 이란을 지켜보는 서방 언론에 이보다 더 좋은 기삿거리는 없을 정도지만, 이란의 복잡한 내부 권력투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4월 내부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서방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오른쪽)가 6월 4일 테헤란 외곽에 있는 이란 혁명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무덤에서 열린 22주기 행사 도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

 아마디네자드와 하메네이 간 불화는 막강한 정보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의 경질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모슬레히 장관은 지난 4월 17일 아마디네자드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차관을 경질했다가 오히려 사임 압력에 직면해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란 IRNA통신은 모슬레히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최대 온라인 뉴스사이트인 더스타닷컴(thestar.com)은 아마디네자드가 모슬레히를 해임한 이유에 대해 하메네이가 아마디네자드의 친척이자 심복인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에 비서실장을 사찰하도록 명령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모슬레히 장관을 곧바로 원직에 복직시켰다. AP통신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이를 두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이슬람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를 양축으로 하는 이란 보수파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했다. 주요 정책 결정의 최종 승인권자인 하메네이가 그동안 지지를 보내온 아마디네자드에게 제동을 건 모습으로 비춰져서다.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외무·정보·국방·내무장관 등의 임명을 승인하는 전통이 있다. 하메네이는 지난해 12월 아마디네자드가 마누체르 모타키 외무장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했을 때는 반대하지 않았다.
 아마디네자드는 곧바로 두 차례의 내각회의에 불참하는 등 11일 동안 업무를 거부하는 식으로 하메네이의 조처에 무언의 불만을 보이며 항의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지난 5월 1일 주례 내각회의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관영 IRNA통신은 아마디네자드가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마디네자드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 뒤인 지난 5월 8일 8개 정부 부처를 4개로 통폐합하는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보수파 성직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란의 최고재판소인 헌법수호위원회는 5월 11일 아마디네자드의 정부 통폐합 조치를 위헌으로 판정했다. AP통신은 당시 위원회 위원장인 아야톨라 아마드 자나티가 친 아마디네자드 인사로 분류돼 아마디네자드의 또다른 정치적 패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의회에서도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탄핵 운운하면서 그를 압박했다. 결국 아마디네자드는 지난 2일 자신이 겸직하고 있던 석유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침묵을 지켜온 아마디네자드는 지난 6월 7일 처음으로 보수파 성직자들과의 갈등을 시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는 이날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가 그들로부터 ‘180도 상황’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사실상 정반대에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들은 보수 성직자들이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는 보수 성직자를 비난하면서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우리의 입장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며, 침묵의 단합을 고무하는 것”이라면서 권력투쟁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을 거부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란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22주기 하루 전인 6월 3일 테헤란 외곽에 있는 그의 묘소에서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아마디네자드가 보수 성직자들과의 갈등설을 시인한 것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일탈’ 또는 ‘간첩’이라고 계속 비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에 따르면 혁명수비대 부책임자인 호자톨레슬람 모즈타바 졸누르는 바로 전날인 지난 6일 “‘일탈의 조류’가 이슬람 기관의 근본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움직임은 시아파 이슬람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일탈의 조류’라는 말은 아마디네자드 반대파들이 만든 것으로, 자신들이 보기에 너무 자유롭고 민족주의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아 집권 보수파와 공존할 수 없는 이념적인 움직임을 가리킨다. 보수 성직자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아마디네자드의 비서실장인 마샤이에가 선도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하메네이는 지난 4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22주기를 맞아 이란 정권 내부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존중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위기상황을 끝내줄 것을 보수파들에게 요청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만약 누가 이슬람 체제와 이슬람을 충실히 신봉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형제들을 모욕한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이란 전문가들 분석도 서방 언론들의 보도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의 배경엔 단순히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정치·경제·이념·종교적 현안이 걸려 있다고 보고 있다. 아마디네자드와 그의 지지자들이 집권 성직자 세력에 의한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근동정책연구소의 메흐디 칼라지는 더스타닷컴에 “아마디네자드는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범했던 같은 실수, 즉 자기들이 성직자를 자신들의 어젠다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서 “아마디네자드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영국 더램대학의 아누쉬 에테샤미 국제관계학 교수는 “아마디네자드는 성직자들을 이자 생활자로 보고 있다”면서 “이는 이슬람 국가를 향한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미국 시라큐스대학의 중동연구소 메르자드 보루제르디 소장은 “성직자들은 아미디네자드의 행위를 폭동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하지만 잠깐 동안의 주목을 갈망하고 있는 아마디네자드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메네이 입장에서도 아마디네자드를 제거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인데, 이는 그가 너무나 많은 정치적 자산을 아마디네자드를 지지하는 데 썼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이란 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포탄을 가지고 있고, 신도 가장 큰 부대를 가진 자의 편”이라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는 2년 전  6월 12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 끝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당시 부정선거 논란은 개혁파의 ‘그린혁명’으로까지 번지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아마디네자드는 하메네이가 그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란에서 파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