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러시아 대통령 3선에 성공… 민심 잃은 ‘차르’의 앞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60)가 지난 3월 4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3선에 성공함으로써 러시아에 ‘현대판 차르’가 탄생하게 됐다. 2000~2008년 두 차례에 걸쳐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푸틴은 이번 당선으로 2018년까지 6년간 대통령직을 보장받았다. 헌법상 연임이 가능해 2024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이 경우 푸틴이 대통령으로서 러시아를 통치하는 기간은 14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다. 총리로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47) 위에 군림해 ‘상왕통치’를 한 4년을 포함하면 푸틴의 통치기간은 24년으로 늘어난다. 1964~1982년까지 18년 동안 옛 소련을 통치한 브레즈네프를 넘어, 1929~1953년까지 24년 동안 통치한 독재자 스탈린에 버금가는 최고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3월 4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선거 승리 선포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철권통치자로서의 푸틴의 면모

러시아의 강력한 지도자 푸틴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스파이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푸틴은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안보국(FSB) 국장 시절인 1999년 8월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됐다. 스파이 수장에서 현대판 차르가 탄생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푸틴은 옐친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 직무대행을 거쳐 이듬해 3월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철권통치로 강한 러시아 시대를 열었다. 푸틴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은사이자 정치적 대부인 아나톨리 소바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조차 푸틴을 ‘새로운 스탈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철권통치자로서의 푸틴의 면모는 러시아 작가이자 언론인 마샤 게센(45)이 최근 펴낸 <얼굴없는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예상 밖의 부상>에 샅샅이 드러나 있다. 게센은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세상을 가둔 천재 페렐만>으로 알려진 작가로, <얼굴없는 남자>를 통해 살아있는 권력 푸틴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얼굴없는 남자>를 분석한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게센이 푸틴을 인신공격하고 비난하지만 믿을 만한 사실들과 통찰력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푸틴의 탐욕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프로풋볼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인 로버트 크래프트(71)는 2005년 러시아 방문 때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 해 패트리어츠는 슈퍼볼 우승컵을 안았다. 푸틴은 크래프트가 내민 우승반지를 보며 크래프트에게 “한 번 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반지를 낀 푸틴은 “이것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겠군” 하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푸틴은 처음엔 반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지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가버렸다. 크래프트는 “돌려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반지는 푸틴의 것이 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크래프트는 반지를 제작한 회사에 부탁해 다시 하나 만들었다. 게센은 푸틴의 탐욕이 병적 도벽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공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의 착복과 선거부정 등을 통해 벌어들인 푸틴의 개인 자산이 40억 달러(약 4조4628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게센은 푸틴의 철권통치 시작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사례로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 연쇄 폭탄테러 사건을 꼽았다. 러시아는 당시 수백명이 숨진 이 사건의 범인을 독립을 요구하던 체첸 자치공화국 반군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게센은 푸틴이 당시 수장으로 있던 FSB가 사건의 배후라고 단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푸틴은 옐친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게 되고, 러시아는 체첸 반군과의 전쟁을 정당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게센은 2002년 모스크바 극장 및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강경진압도 분리독립을 꿈꾸는 체첸과 북오세티야 공화국에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푸틴이 보낸 경고로 해석했다. 2000년 118명이 숨진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참사에 대해서도 비록 크렘린의 소행으로 보진 않지만 소극적으로 다뤘다고 꼬집었다. 잇단 언론인 독살 및 암살사건도 푸틴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인을 처단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찰이 지난 3월 5일 전날 치러진 대선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연합뉴스

이같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푸틴이 지난 4일 대선 당일 밤 눈물을 보였다. 출구조사 결과 당선을 자신한 푸틴은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서 10만여명의 지지자가 운집한 가운데 ‘완전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연설 도중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강한 카리스마의 지도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푸틴이 흘린 눈물의 정체에 대해 푸틴 반대파들은 쇼라는 반응을 보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블로거인 슬라빅 체너는 트위터에서 옛 소련 시대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인용해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며 푸틴이 보인 눈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1981년 제53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푸틴이 눈물을 보인 이후 반푸틴 세력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모스크바 시내에 내걸었다.

경제 위기로 조기 사임 가능성 제기

푸틴의 눈물이 쇼이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표심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푸틴의 전국 득표율은 63.6%이지만 모스크바 득표율은 47%로, 약 16%포인트나 뒤졌다.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선거부정이 이뤄진 점과 이번 대선을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에 맞서 승리한 나폴레옹 전쟁에 비유하며 막판에 모스크바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한 그로서는 참패나 다름없다.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대선 2주 전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러시아의 대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가 나폴레옹 전쟁을 노래한 시 <보로지노>(1838)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나폴레옹 전쟁 직전 조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조국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영웅들을 노래한 레르몬토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구애를 폈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베도모스티의 타냐나 리소바 편집국장은 “푸틴은 모스크바에서 영웅이 아니다”라면서 “모스크바는 푸틴으로부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3선에 성공한 푸틴의 향후 통치체제를 두고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처럼 야권을 강하게 탄압하거나, 기존 통치노선을 밀고 나가거나,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로존 위기와 중국 성장세 둔화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과 같은 경제적 변수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경우 고유가 덕택에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푸틴으로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조기 사임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 싱크탱크 전략개발센터의 미하일 드미트리예프 소장(51)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러시아가 경제난이 가중되고 푸틴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급속히 추락하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처럼 푸틴도 대통령직에서 조기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emu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