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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28/죽은 빈 라덴에 기댄 오바마

 지난해 5월 미국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침착했다. 밤 11시가 넘어 그 사실을 발표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TV카메라 앞에 선 그는 감정을 억눌렀다. “오늘 밤은 9·11 당시 팽배했던 단합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나흘 뒤 9·11 현장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을 땐 침묵의 헌화를 했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축하 행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빈 라덴 시신 사진 공개 요구와 사망을 둘러싼 언론의 끝없는 의혹 제기에도 침묵했지만 이것이 미국의 공적 1호를 제거한 오바마의 허물이 될 수는 없었다.

 

 한데 ‘죽은’ 빈 라덴이 1년 만에 되살아났다. 그를 되살린 이는 제거 명령을 내린 오바마다. 오바마가 1년 만에 빈 라덴을 되살린 이유는 뻔하다.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에게 빈 라덴 사살은 최대의 정치적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오바마 대선 캠페인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 번의 기회’라는 대선 광고에 나와 오바마가 빈 라덴 사살 명령을 내릴 때까지의 고뇌를 묘사한다. 클린턴은 “그(오바마)는 더 어렵고 명예로운 길을 택했다”면서 “미트 롬니(공화당 대선 후보)는 어떤 길을 택했을까”라고 질문한다. 이어 2007년 롬니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로 결정타를 날린다.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써가며 백방으로 노력할 가치는 없다.” 조 바이든 부통령도 가세했다. 그는 뉴욕대 학생들에게 “빈 라덴은 죽었고 제너럴모터스는 살아났다”는 말로 오바마의 업적을 요약했다. 대미는 오바마가 장식했다. 빈 라덴 사살 1주년을 맞아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는 깜짝쇼를 벌였다. 빈 라덴 제거 과정을 지켜본 백악관 상황실을 이례적으로 방송 인터뷰 장소로 활용했다. 그곳에서 그는 “빈 라덴 사살 작전일은 재임 중 가장 중요한 하루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군통수권자로서 느낀 고뇌를 보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말은 없을 터이다.

  


(경향신문DB)



 대테러전 성과에 관한 한 오바마의 치적은 화려하다. 제거한 테러 지도자는 빈 라덴만이 아니다. 작전참모 아티야 아브드 알 라흐만(2011년 8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 지도자 안와르 알 올라키(2011년 9월), 파키스탄 탈레반 최고지도자 바이툴라 메수드(2009년 8월)도 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일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써온 수법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죽은 빈 라덴 활용전략에 못마땅해하는 부류들이 있다. 한쪽은 공화당이다. 롬니 후보 진영과 2008년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슬프다” “창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가 빈 라덴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정치공세일 뿐이다. 다른 한쪽은 오바마가 빈 라덴을 잡은 공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빈 라덴 제거 공로는 일차적으로 그 결정을 내린 오바마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네이비실 팀6의 몫이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과 군 인사, 이에 협력한 민간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빈 라덴 제거는 협력의 결과물인데도 오바마가 자신의 치적만 강조한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다시 말하면 오바마는 정치인이 아닌 대통령으로 행동해야 하며, 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죽은 빈 라덴 활용 전략은 효과가 있을까. 대선 레이스 전체로 보면 이는 ‘원 포인트’ 전술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얘기다. 안보 차원에서 더 중요한 것은 빈 라덴 사살이 이 지역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점이다. 많은 보수파들은 고개를 젓는다. 더욱이 오바마의 대외정책 분야 치적이 아무리 눈부시다고 해도 약점인 경제 문제를 감출 수는 없다. 전임자인 부시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논리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터이다. 죽은 빈 라덴에 기대고 있는 살아있는 오바마의 향후 전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