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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29/오바마의 짐 '갈라진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떠오른 때가 2004년이다. 당시 마흔세 살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오바마는 그해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자로 섰다. “진보 미국도, 보수 미국도 없다. 미합중국만 있다”는 그의 명연설은 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통합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오바마는 그 여세를 몰아 그해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4년 뒤 백악관에 입성했다. 오바마의 과거를 새삼 꺼낸 것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그가 미국 사회 갈등의 주범으로 떠올랐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경향신문DB)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4일 ‘2012년 미국인의 가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역할과 개인의 종교취향, 정치참여에 이르기까지 15개 부문에 걸쳐 미국인의 생각을 분석한 것이다. 1987년 시작한 이 조사는 25년 동안 미국인들의 가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25년 동안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는 점이다. 이는 민주·공화당 지지자 간 정치적 이념차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좀 더 왼쪽으로, 공화당 지지자는 좀 더 오른쪽으로 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 사회가 갈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정치적 양극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으며, 그동안 알려진 인종·계급·성보다 더 큰 사회 갈등요소라는 점을 확인한 일이 이번 조사의 함의일 터다. 두번째는 정치적 양극화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더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25년 전 민주·공화당 지지자 간 정치적 가치에 대한 격차는 10%포인트였다. 25년 후 그 격차는 18%포인트로 커졌다.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5년 동안 그 격차는 3%포인트였지만 오바마가 집권한 2009년엔 6%포인트로, 올해엔 8%포인트로 벌어졌다. 그 사이에 백악관 주인은 로널드 레이건(공화), 조지 HW 부시(공화), 빌 클린턴(민주), 조지 W 부시(공화)에서 오바마(민주)로 바뀌었다. 퓨리서치센터의 지적은 오바마가 미국인의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한때 통합의 아이콘에서 정치적 양극화의 주범이 됐으니 오바마에게 이보다 더한 역설은 없을 터이다. 전임자가 물려준, 대공황 이후의 최대 경제위기라는 짐을 떠안은 그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정치적 양극화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두드러진 이유가 뭘까. 퓨리서치센터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없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입장이 더 보수화된 점에서 찾았다. 정부의 역할과 관련된 두 가지 조사에서 이 부분이 명확히 드러났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즉 사회안전망 필요성에 찬성한 민주당 지지자는 79%이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40%에 불과했다. 이들의 격차는 25년 전 17%포인트에서 39%포인트로 두 배 이상 벌어졌다. 환경보호에 대한 입장도 현격히 달랐다. 첫 조사가 시작된 1992년엔 민주·공화당 지지자 90%가량이 엄격한 법과 규제의 필요성을 지지했다. 그러나 규제가 필요하다고 믿는 민주당 지지자는 20년 전과 똑같은 93%로 변함없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87%에서 47%로 급감했다. 두 당 지지자 간 격차도 6%포인트에서 46%포인트로 벌어졌다.


어느 나라든 정권에 대한 지지는 당파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정치적 회의와 불만이 커진다. 이번 조사에서도 무당파 비율은 38%로 민주(32%), 공화(24%) 지지자보다 많았다. 75년 만에 가장 높다고 한다. <불평등 민주주의>라는 책을 통해 역대 미국 행정부의 이데올로기와 가치, 당파성이 핵심 정책 결정과 경제적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미 밴더빌트대학의 래리 바텔스 교수는 정치의 힘을 강조한 바 있다. 그것은 갈라진 민심을 추스르고 사회 통합을 이뤄내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재선 시험을 5개월 앞둔 오바마 앞에 놓인 도전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