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정동탑

정동탑12/이란 아프간 대선과 미 이중잣대

1년 전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폴리시(9·10월호)는 미국 대외정책의 이중잣대(double standard) 가운데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물었다. 다양한 답변 가운데 ‘민주선거를 권장하면서도 싫어하는 나라의 경우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조하며 독재정권 지지하기’ 등 선거 관련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선거와 하마스가 언급됐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 가운데 강경파인 하마스가 2006년 선거에서 온건파인 파타에 승리를 거뒀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급기야 지난 겨울 전쟁까지 치렀으니 말이다.

선거를 바라보는 미국의 이중잣대는 여전하다. 최근 두 달여 시차를 두고 치러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선거가 잘 보여준다. 현 대통령의 재선이 관심사였던 두 선거는 심각한 부정선거 후유증을 낳았다. 열흘이 지났지만 아프간의 부정선거 시비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부정사례 건수는 개표가 진행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선두를 달리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겐 결선투표 가능성과 정치불안이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지난 6월12일 이란 대선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개혁파의 대선 불복으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두 나라의 부정선거는 예견됐다. 자유·공정선거가 보장되는 민주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중적 태도가 부정투표 논란을 부추겼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단적인 사례를 보자. 아프간 대선에서 카르자이와 경쟁자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은 대선 투표 종료 후 각각 승리를 주장했다. 두 달여 전 이란에서 아마디네자드와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보인 행태와 빼닮았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 특사는 두 후보에게 ‘신뢰할 만한’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승리를 주장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무사비의 승리 주장엔 침묵의 지지를 보낸 것과 대조됐다. 미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란 정부가 대선 종료 직후 아마디네자드의 압승을 발표했을 때 발표 시점을 문제삼았지만, 대선 3일 후 카르자이가 68%를 득표했다는 아프간 재무장관의 발표엔 비판을 삼갔다. 발표 시점에 신뢰할 만한 개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은 아프간이나 이란이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아마디네자드의 승리는 부정선거의 결과라고 강조하고, 아프간의 경우는 애써 무시했다. 이유는 뭘까. 이란은 ‘악의 축’이고, 아프간은 미국이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나라라는 이중잣대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이중잣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주장대로 복잡한 세상에 맞는 하나의 대외정책은 없다.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중잣대는 폐기해야 한다. 불가피한 이중잣대와 버려야 할 이중잣대를 구별하는 기준은 국익일 터이다. 포린폴리시가 1년 전 미국의 이중잣대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분명하다. 땅에 떨어진 미국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는 일이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가 취임 후 ‘부시 잔재 지우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중잣대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오바마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