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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5]자유의 여신상의 눈물(170824)

임기 7개월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만신창이 신세나 다름없다. 많은 대선 공약은 휴지 조각이 됐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폐지는커녕 대체하지도 못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 약속도 ‘속 빈 강정’이 됐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약속도 지난 21일 ‘제한적 개입’ 발표로 물거품이 됐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사태를 양비론으로 두둔함으로써 인종주의자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보이던 열성 지지자의 균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그의 7개월은 완전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자랑할 수 있고, 성공한 정책으로 내세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민제도일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전후 이민을 반대하는 말과 정책을 쏟아냈다.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불법이민자 추방, 불법이민자 자녀의 출생시민권제도 폐지, 무슬림 입국 금지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불법이민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가혹했다. 그 결과 취임 7개월 동안 멕시코에서 미국 국경을 넘은 불법이민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6%나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에 걸린 전체 불법이민자 수는 40%나 증가했다. 반대 논리는 단순하다. 미국 내 일자리를 잠식시키고 임금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이달 초에는 합법이민에도 칼을 댔다. 미숙련·저임금 이민자의 유입을 억제하고, 영주권 발급 대상자를 10년 안에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합법이민마저 제한하려는 이유는 저임금 압박을 없애 임금을 올려 미국 경제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쏟아낸 많은 이민정책 가운데 일부는 의회 등의 반대에 막혀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은 그의 이민정책에 열광한 백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민만큼 미국적인 것은 없다. 트럼프 가문도 이민자 출신이다. 독일 출신 할아버지는 1885년 16살 때 이주해와 7년 뒤 미국 시민이 됐다. 모계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이민을 오지 않았다면 트럼프는 부동산 기업가로 성공하지 못했고, 백악관 주인은 당연히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민정책에 적대적인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민의 역사가 개방과 제한의 반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냥 트럼프를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인종차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샬러츠빌 사태에서 보듯 트럼프 뼛속에는 인종주의 DNA가 깊이 박혀 있다. 27세 때인 1973년 일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지 2년 뒤다. 그는 법무부로부터 인종차별 소송을 당한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에 흑인의 거주를 차별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법무부를 상대로 1억달러 명예훼손 소송을 건다. 2년 뒤 합의하는 조건으로 매주 뉴욕인권단체에 그가 소유하고 있는 1만5000가구의 공실 현황 자료를 보내주기로 한다. 하지만 3년 뒤 그는 다시 법무부로부터 흑인에 대한 차별로 소송을 당한다. 이뿐만 아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지노에서 흑인 딜러를 쫓아내는가 하면 담당 판사가 멕시코계라는 이유로 비난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허핑턴포스트가 지난해 말 트럼프가 인종주의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를 16가지나 제시했을까. 

“자유의 여신상이 트럼프가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변기 속으로 버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달 초 트럼프가 합법이민 제한 방침을 발표하자 인권단체 안네 프랑크 센터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어쩌면 19세기 말부터 합법적으로 이민을 와 오늘의 미국을 만든 이들의 심정을 반영한 것 같다.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아랫부분 동판에는 “…고단하고 가난한 자들이여, 자유로이 숨 쉬고자 하는 군중이여, 내게로 오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에 온 에마 래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이다. 래저러스는 자유의 여신을 ‘망명자의 어머니’로 묘사했다. 1886년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 맨해튼 앞바다 리버티 섬에 들어선 이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땅을 밟는 이민자들에게 꼭 그러했을 것이다. 

반면 멕시코 장벽에는 분열과 갈등의 상징인 트럼프에 의해 좌절된 불법이민자들의 눈물이 뿌려져 있다. 트럼프가 22~23일 멕시코 국경의 애리조나주 피닉스를 찾았다. 여름휴가 뒤 첫 외부 일정으로, 국경수비대 캠프 방문도 포함됐다. 샬러츠빌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트럼프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의 열망을 다시 한번 자극하기 위해서다. 트럼프의 ‘이민 카드’가 그를 살릴 마술지팡이가 될까, 아니면 파멸로 이끌 티켓이 될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232047005&code=990503#csidxac1542bbdbb34c89de60a12153b59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