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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6]아웅산 수지에 대한 오해와 이해(170921)

“우리는 미얀마와 미얀마의 인종 간 경쟁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 아웅산 수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얀마 실권자인 수지에 가장 정통한 서방 언론인으로 알려진 퍼걸 킨 BBC 기자의 말이다.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와 그에 대한 수지의 반응을 보면 이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가 아는 수지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테레사 수녀에 비견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철의 나비’로 불릴 만큼 가냘프고 아름답지만 강한 여성이다. 그런 수지가 달라졌으니 지지자들의 실망과 분노는 당연하다. 과연 수지는 두 얼굴을 한 야누스인가. 도대체 우리는 수지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걸까.

수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째가 ‘아버지’다. 아버지 아웅산은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영국과 일본 제국주의 틈바구니 속에서 미얀마 독립을 추구했다. 아웅산은 독립을 코앞에 두고 1947년 암살됐다. 그때 수지는 두 살이었다. 수지는 그런 아버지를 “나의 첫사랑이자 최고의 사랑”이라고 자랑했다. 수지에게 아버지는 모든 것이었다. 아버지의 리더십, 도덕률, 정치적 우선순위, 완고한 스타일까지 닮고자 했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은 자신의 과제가 됐다. 그것은 1948년 독립 이후 끊이지 않는 인종 갈등을 끝내고 미얀마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다. 권력을 잡은 수지는 경제성장과 북부 지역 소수민족과의 평화협정을 2대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당연히 서부 변방의 로힝야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가 오늘 그가 처한 현실이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박정희와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근혜가 연상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정치인 수지’다. 15년간의 가택연금을 포함해 21년간 정치적 억압을 받던 수지가 정치에 참여해 최고직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수지는 2011년 12월 정치참여를 선언했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지난해 봄 최고 실권자 자리에 올랐다. 수지의 정치참여와 부상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수지는 정치에 발을 들이는 대가로 군부와의 권력분점을 허용한 헌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결과 군부는 의회 의석 4분의 1을 지니고, 국방·치안·국경 업무에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수지는 힘이 없고, 실질적인 권한은 군부에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당초 수지는 헌법을 반대했다. 그를 굴복시킨 것은 미국이었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았다. 무엇보다도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얀마가 필요했다. 미얀마를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은 중국은 인도를 비롯한 서방에 중대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보내 수지를 압박했다. 이번 사태 이후 미국·인도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로힝야의 폭력사태만 비난하고 수지를 감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수지는 군부와 중국·미국의 손에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 키워드는 ‘로힝야’다. 전체 인구의 2%인 로힝야는 8세기부터 살았지만 국민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공식 지위는 불법이주자다. 교육과 의료 혜택은 없다. 공직 진출은 물론 이동의 자유까지 제약받고 있다. 그렇다고 수지는 무슬림 혐오자는 아니다. 수지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영국에서 주로 자랐다. 물론 과거 한 말을 보면 수지의 행동은 비난받을 만하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승리한 수지는 BBC 인터뷰에서 로힝야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집권하면 무슬림 공동체를 보호하고, 이들을 탄압하고 증오하는 사람은 법으로 다스리겠다.” 수지가 로힝야 사태에 눈감는 이유는 자신의 정치기반의 입장에 따른 것이지만 로힝야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판단도 깔려 있을 법하다.

어쩌면 우리는 수지가 ‘아시아의 만델라’가 되길 바랐는지 모른다. 수지는 지난 4월 BBC 인터뷰에서 “나는 정치인일 뿐이다. 마거릿 대처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이 말은 태생적인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수지를 제대로 알려면 그에게 씌워진 이미지와 그가 처한 현실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수지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의 상징과 국가 지도자라는 두 가지 명예를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지금이 그 기회다. 수지에게 거는 마지막 기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