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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검은 일요일의 극우(170926)


1991년 11월24일 치러진 벨기에 총선은 현대 유럽 정치사에 의미 있는 역사를 썼다. 극우정당 ‘블람스 블록’의 선전이다.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극우정당으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6%대를 득표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하원 의석은 기존 2석에서 12석으로, 상원 의석은 1석에서 5석으로 늘리는 대약진이었다. 1978년 벨기에 플레밍 지방의 분리독립과 반이민 등을 주장하며 창당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는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날이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그날 받은 충격을 ‘검은 일요일’이라고 표현했다. 블람스 블록은 2004년 인종차별주의 정당이라는 이유로 해산되기 전까지 3번의 총선에서 약 6~12%를 득표했다.

블람스 블록의 부상은 1990년대 이후 극우 포퓰리즘 정당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민족전선, 오스트리아 자유당, 덴마크 인민당, 네덜란드 자유당, 스위스 인민당, 영국 독립당, 독일 독일을위한대안(AfD) 같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은 자국 선거에서 작지만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6월 영국의 브렉시트와 11월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절정에 오른 극우 포퓰리즘은 이후 예상과 달리 퇴조했다.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 대선, 지난 3월 네덜란드 총선, 5월 프랑스 대선, 6월 영국 총선에서 극우정당은 줄줄이 패배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검은 일요일’은 없으리라는 낙관 섞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24일 독일 총선으로 ‘검은 일요일’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총선의 승자는 여성 첫 ‘4선 총리’라는 새 역사를 쓴  앙겔라 메르켈이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33%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으나 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다. 주인공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 AfD였다. 12.6%를 득표해 단번에 사회민주당에 이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3년 창당한 AfD로서는 두 번째 총선 도전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선거혁명이었다. AfD의 부상은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이다. 나치 이후 70여년 만에 첫 극우정당의 의회 진출은 전후 독일의 최대 도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AfD가 극우 포퓰리즘을 되살리는 촉매제가 된다면 메르켈에게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을 것이다.  조찬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