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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오바마 100일 ‘기대 반, 우려 반’ (2009 05/05ㅣ위클리경향 823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9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오바마는 지난 1월 20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와 두 개의 전쟁(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이 남긴 최악의 유산과 변화를 향한 강한 의지를 안고 취임했다. 언론들은 이런 그를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치른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FDR) 전 대통령에 비유했다. 일부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음을 빗대 그를 ‘판매 총책임자(salesman-in-chief)’나 ‘보수수리 총책임자(plumber-in-chief)’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경제 위기 해결과 미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취임 100일은 오바마의 전모를 평가하는 데 짧은 시간이다. 그의 임기가 4년 또는 8년이나 남은 까닭이다. 향후 관심은 오바마가 현재의 정책을 계속 추구할 것인지에 쏠릴 수밖에 없다. 그가 링컨이나 FDR와 같은 성공한 대통령의 반열에 오를지, 부시와 같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취임 100일 동안의 오바마 정책과 그에 대한 평가를 통해 살펴본다.

#실용주의에 기반한 ‘오바마 독트린’
지난 100일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대내외 정책은 ‘오바마 독트린’이라 할 만하다. 오바마 독트린은 현실에 기반을 둔 실용주의다. 과거 적대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대결보다 협력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마 독트린은 부시의 일방주의와 예외주의를 뒤집는 차별화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시의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재설정(reset)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속도나 범위는 가히 현기증을 느낄 만큼 신속하고 전방위적이다. 대외적으로 오바마는 취임 후 역대 정권이 적대시한 이슬람 세계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중동의 반미 세력의 중심지 이란에 대화를 제의했다. 중동 평화를 위해 새로운 드라이브를 걸 것도 약속했다. 남미의 반미주의 선봉장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는 손을 맞잡았다. 미국민들의 여행 자유화를 허용하는 등 반 세기 동안 닫혔던 쿠바에도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미사일방어(MD)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러시아에도 관계 재설정 방침을 밝혔다. ‘핵 없는 세계’를 만들 것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고문으로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중앙정부국(CIA)가 운영해온 비밀감옥 폐쇄 명령도 내렸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도 대처해나갈 방침도 밝혔다.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유럽 국가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몸을 낮췄다. 사실상 국제무대 데뷔였던 이달 초 유럽 5개국 방문에서 그는 부시에게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말, “나는 듣기 위해서 왔다”고 가는 곳마다 되뇌었다. 대내적으로도 그는 의료보험 개혁과 세제안 개편 등 사회 민주주의적인 정책을 펼칠 태세다. 
오바마 독트린에 대한 현재까지 평가는 이중적이다. 부시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고 세계를 껴안으려는 오바마 대외정책은 일단 일반 대중은 물론 적대국 정상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다. 하지만 우방국 정상들의 반응은 냉담하기까지 하다. 언론의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클라이브 크룩은 4월 19일자 칼럼에서 “실용주의와 인내심에 기반을 둔 오바마 독트린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오바마는 취임 후 가는 곳보다 환호를 받았지만, 정작 얻은 것은 많지 않다. 4월 초 영국 런던 G20 정상회의나 나토 정상회의에서 오바마는 경기부양책에 대한 합의안도, 아프간·파키스탄 전략 수행과 관련한 의미 있는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크룩은 특히 오바마의 관계 개선 조치들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오바마의 인내심이 무너져 대외정책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바마에 대한 언론의 다양한 평가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말 ‘오바마 취임 2개월’ 행보를 평가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해결하려는 조급증 탓에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위기 해결이 급선무인데도 경제 위기와 무관한 의료보험 문제와 환경 규제 철폐도 같이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의 오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당위와 함께 정치적으로도 ‘위기가 기회’라는 정당성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잠재적 지지자는 물론 공화당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짐 호글랜드는 4월 19일자 칼럼에서 오바마에게 대외 문제보다 ‘국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Look Homeward)’을 주문했다. 호글랜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전히 새벽 3시에 전화를 받을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대외정책은 클린턴에게 맡길 것을 주장했다. 그는 더 나아가 경제 문제도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챙길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4월 20일자 온라인판에 따르면 오바마는 취임 이후 하루 평균 두 차례 기자들 앞에 섰다. 새 정책을 발표하거나 행정부가 성취한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백악관의 철저한 계산 하에 이뤄졌다. 그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같은 오바마의 언론 직접 대면은 역대 행정부가 부통령이나 다른 각료를 통해 정책을 발표하거나 또는 보도자료를 내는 것과 대비된다. 오바마는 최근 도로건설 계획 발표와 고속철도 계획을 발표할 때 이례적으로 조 바이든 부통령, 레이 라후드 교통장관과 자리를 함께 했다. 하지만 발표는 오바마의 몫이었다. 오바마는 ‘말 많은 대통령’이라는 지적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4월 21일 ‘오바마 취임 100일’을 평가하는 첫 기사에서 그의 정책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비유했다. 오바마 개혁정책의 속도를 생각하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결국 공산주의 붕괴를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파탄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창한 것은 취임 후 18개월이지만, 오바마 독트린은 100일 만에 실체를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오바마의 새 접근법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정책이 미국의 국익과 충돌할 경우 국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디펜던트>의 결론은 ‘영원한 친구는 없고, 국익만 영원할 뿐’이라는 외교 철칙의 재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