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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7]'‘저주받은 자들의 항해’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180706)

1939년 5월27일 새벽 4시. 대서양 횡단 독일 여객선 세인트루이스호는 2주간의 항해 끝에 목적지인 쿠바 아바나 해안에 도착했다. 탑승객 937명은 항구의 불빛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대부분이 나치의 핍박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이었다. 자유를 향한 희망에 부푼 이들은 짐을 꾸리고 하선 준비를 했다. 배에 올라온 쿠바 관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당시 6살이던 제럴드 그랜스턴은 쿠바 관리들이 외치는 “마냐나, 마냐나” 말만 반복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일” 또는 “언젠가는”을 뜻하는 낙관적인 이 말은 배반의 단어가 됐다. 6살 소년조차도 이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배의 입항 및 승객의 하선 금지임을.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로 불리는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은 5월13일 배가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기 전부터 예정됐다. 쿠바 당국은 애초부터 유대인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배가 출발하기 8일 전에 이미 비자를 무효화했다. 선박주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은 모른 채 탑승했다. 유대인 탑승객들에게 세인트루이스호는 마지막 탈출구였다. 선상에서의 일상은 천국이었다. 지상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식사가 제공됐다. 금요일 밤에는 댄스파티가 열렸다. 영화도 상영됐다. 수영 강습도 열렸다. 히틀러의 흉상은 식탁보로 가려졌다. 로타르 몰톤이라는 소년은 “자유를 향한 크루즈 휴가”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독일인임에도 세심하게 배려한 구스타프 슈뢰더 선장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쿠바 아바나 코앞까지 와서도 내릴 수 없는 유대인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한 탑승객은 자해한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는 정식 하선 허가를 받은 29명만 내려준 채 일주일 만에 미국 플로리다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행정부는 이들을 거부했다. 선장은 미 연안에 배를 좌초시켜서라도 이들을 탈출시키려고 했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막으려 해안경비대를 동원했다. 캐나다마저 외면하면서 기댈 곳은 유럽 국가뿐이었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더라도 독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탑승객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미국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가 907명 전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내 배는 벨기에 앤트워프 항에 입항했다. 함부르크를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6월17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가 독일을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254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됐다.

쿠바와 미국, 캐나다는 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1930년대 세계는 광기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대공황 여파와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이성이 설 자리는 애당초 없었다. 독일은 1939년 초 자국 국경 대부분을 봉쇄했다. 많은 나라들은 유대인 이주자 숫자를 줄였다. 쿠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상 최대의 반유대 시위가 열릴 정도로 반유대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쿠바는 탑승객들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이들을 막은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처럼 ‘미국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반이민 정서 때문이다. 2차 대전과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자국 내 독일인을 추방하고 일본인을 억류하지 않았던가. 결국 세인트루이스호 탑승 유대인들의 고난과 역경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오늘날 지중해를 비롯한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난민들의 목숨을 건 항해를 보면 세인트루이스호 탑승객의 비극적인 운명이 겹쳐진다. 7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이들을 막는 자들의 논리와 사고방식은 물론 세상의 작동원리도 마찬가지다. 난민 배척 역사는 반복되고, 정책은 오히려 악랄해지고 있다. 과거 세인트루이스호 유대인을 받아준 영국·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2012년 9월 세인트루이스호 난민을 외면한 데 대한 미 국무부의 공식 사과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빈말이 돼버렸다. 호주를 본받아 가혹한 무관용 정책을 채택한 트럼프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 지난해 취임 직후 말콤 텀불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 난민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그가 더 악랄하다고 한 트럼프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난민 문제가 지구촌의 최대 관심사가 된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내놓는 해법은 절망적이다. ‘당신들이 탈출한 지옥으로 돌아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나 연민 대신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언어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디에 기대야 하나.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을 되새겨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