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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과거 너의 도덕성을 알려주마 (2007 03/20ㅣ뉴스메이커 716호)


‘족보 들추기, 주차위반 범칙금 미납, 주식 불법거래 의혹, 마약 복용, 재산신고 누락, 가족과의 불화….’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민주·공화 양당 유력 후보들에 대한 후보 검증이 뜨겁다. 각 당의 공식 후보 지명이 1년 반 가까이 남았는데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유력 후보들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연일 신문에 공개되고 있다.

기실 대선후보에 대한 검증은 후보의 자질을 유권자에게 알려주는 필수과정이다. 유권자들은 각 후보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에 호기심을 보이며 최종 선택기준의 하나로 삼는다. 하지만 검증당하는 후보로선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인이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명에 진땀을 빼야 하고, 이에 따라 출렁이는 지지율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시쳇말로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검증된 정치인이야 정치신참에 비해 덜하겠지만 그렇다고 검증을 피해갈 수는 없다. 후보로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양당 후보 가운데 언론의 가장 혹독한 검증 대상 후보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노리는 오바마 의원이다. 그의 최대 장점은 정치신인이라는 참신성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알려진 것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로, 검증받을 것이, 까발려질 것이 많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언론에 공개된, 그와 관련한 새로 드러난 사실들은 주차 위반 범칙금 미납부터 주식 불법매입 의혹, 마약 복용까지 총망라한다.

오바마 의원의 지역구인 시카고 언론들은 3월 7일 그가 17년 전의 주차 위반 범칙금을 뒤늦게 낸 것으로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1980년대 말에 받은 주차 위반 딱지 15장에 대한 범칙금과 과태료 375달러를 대선 출마 공식 선언 2주 전인 지난 1월에 납부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의원은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버스 정류장 부근 주차, 주차 허가가 요구되는 주거지역 내 무허가 주차, 주차미터기 요금 부족 등으로 17장의 주차 위반 딱지를 발부받았다. 총 범칙금은 140달러, 과태료는 260달러. 이 가운데 오바마 의원은 1990년 2월 2장의 딱지에 대한 범칙금 25달러를 납부했으며 이번에 나머지 375달러를 냈다. 오바마 캠프 측은 “많은 사람들이 주차 위반 딱지를 받고 또 과태료를 문다. 오바마 의원의 범칙금과 과태료는 완납됐다”고 해명했다.

하루 전인 7일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의원이 정치 후원자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업체 2곳의 주식을 매입했다고 폭로했다. 신문에 따르면 오바마 의원은 2005년 2월 위성통신회사 스카이테라 약 9만 달러, 생명공학회사 AVI바이오파마 9000달러 등 약 10만 달러의 주식을 매입했다. 그가 스카이테라 주식을 산 날 연방통신위원회는 전국무선통신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혀 이 회사 주식은 당시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는 AVI바이오파마 주식 매입 2주 뒤 의회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퇴치를 위해 연방기금이 더 지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의원은 이에 대해 “내가 그 회사 주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어떻게 투자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3월 4일 일간 ‘볼티모어 선’은 한 족보학자의 조사자료를 인용해 오바마 의원의 조상이 노예 소유주였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내용은 그가 1995년 펴낸 회고록 ‘아버지로부터의 꿈:인종과 물려받은 것들의 이야기’에서 이미 밝힌 것이다. 2월 18일에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오바마 의원이 회고록에서 밝힌 시카고 흑인빈민촌 운동가 시절 활동이 부풀려졌다고 공개했다. 오바마 의원은 회고록에서 1983년 폐암 유발물질인 석면으로 만든 단열재가 공공주택에 사용돼 철거운동에 참여했으며, 이것이 지역운동에 눈을 뜨게 된 계기라고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문은 철거운동을 본 궤도에 올린 인물은 다른 여성인데도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의원 측은 다음날 “그 책은 역사 기록이 아니며 오바마 의원이 모든 걸 다 했다고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출마선언 전인 지난 1월 3일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고교시절 마약을 복용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도 이미 회고록에서 밝힌 ‘구문’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시카고의 유력 일간 시카고트리뷴이 그가 자신의 후원자이자 사기혐의로 연방대법원의 조사를 받던 사업가로와 땅 거래를 했다고 보도하자 “어리석은 일”이라고 사과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1990년대에 이미 철저한 검증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월 27일 클린턴 의원이 가족 자선재단과 관련된 사항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클린턴 의원은 2001년 12월 ‘클린턴가족재단’을 설립해 운영해왔으나, 이를 신고하지 않아 공직자윤리규정을 어겼다. 이에 대해 클린턴 의원 측은 “부주의로 신고에서 누락됐으나 즉각 정정했다”고 해명했다. 신문이 보도 전날인 26일 이 사실을 확인하자 누락 부분을 즉각 신고한 것이다.

양당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공화당의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마찬가지다.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세 번 결혼한 사실과 이로 인한 자식과의 불화가 도화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3월 3일 그의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앤드류와 딸 캐롤라인이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듀크대 골프선수인 앤드류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골프 연습을 해야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아버지의 선거운동 현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은 생모 도나 하노버와 이혼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인터뷰는 ABC·CBS 등 유력 방송과 AP통신 등을 타고 인구에 회자됐다. 오는 가을 하버드대에 입학할 예정인 딸 캐롤라인은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역시 아버지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줄리아니는 이에 대해 “내가 가정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누리면 누릴수록 어려움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의 이혼 경력과 자식과의 불화가 대선가도의 ‘복병’이 될 것이라 게 언론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상대방 비방을 목적으로 이전투구를 일삼는 한국의 검증과는 달리 미국 유력 언론들은 후보들의 자질구레한 일보다 정치적 능력과 비전 등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검증은 후보 선택의 주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인 도덕성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선의 당락을 좌우하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