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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헤즈볼라 지도자 아랍영웅 반열에(2006-08-04)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지 50주년을 맞아 이집트의 일부 야당 지도자들과 야당 성향의 신문들이 레바논의 무장단체이자 정치조직인 헤즈볼라 최고지도자(공식직함은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46)를 영웅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7월 25일 보도했다. 나세르 전 대통령(1918~1970)은 이집트 왕정을 타파한 뒤 이집트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인물로 수에즈 운하 국유화와 아랍연합 창설을 통해 아랍민족주의를 서방 세계에 과시한 20세기 최대의 아랍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나스랄라는 주지하다시피 6월 12일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빌미를 제공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이다.

이집트가 그런 나스랄라를 나세르 전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이끌고 있는 하산 나스랄라.

반 서방정책으로 전쟁까지 촉발

우선 나세르 전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50주년을 하루 앞두고 AP통신이 보도한 이집트 언론의 ‘나스랄라 찬양론’을 살펴보자.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창한 아랍민족주의인 ‘나세르주의’를 표방하는 주간지 ‘알 카라마’는 ‘나스랄라, 나세르의 발자취 속에’라는 제목과 함께 나스랄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실었다. 야당 주간지 ‘알 아라비’도 ‘나세르 1956-나스라하 2006 : 우리는 싸울 것이며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하의 별지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집트 언론들이 두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게 된 것은 두 사람이 서방에 맞서 펼친 정책과 그 결과가 일치한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의 반 서방정책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아랍민족주의를 만천하에 과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세르는 1956년 7월26일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장악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전격 국유화함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급기야 이스라엘과의 전쟁(수에즈 전쟁 또는 2차 중동전쟁)을 촉발시켜 중동전역에 범아랍민족주의 물결이 넘치게 만들었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이스라엘과 프랑스, 영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시나이 반도 등 이집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 수에즈 운하를 11월 6일 재점령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듬해인 1957년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군대를 철수시켰다. 반면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자국병사 2명을 납치한 데 대한 보복으로 헤즈볼라와 그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레바논에 대규모 군사공세 속에서 강력한 저항을 펼침으로써 아랍인들 사이에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국제적인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알 아라비’의 논설위원 모하메드 알 바즈는 “압델 나세르는 끝까지 국가해방을 위해 싸웠고 나스랄라도 마찬가지”라며 “나스랄라는 협상을 거부한 채 상실된 국가적 자부심 회복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알 아라비’의 다른 논설위원인 사이드 알 수웨이크리는 “이집트에 대한 삼중 공격이 있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용감한 아랍인인 나스랄라는 악의 세력과 점령자들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며 나스랄라의 대 이스라엘 투쟁에 찬사를 보냈다. 이집트의 주요 야당인 무슬림 형제당의 고위 간부 압델 모네임 압둘 푸트흐도 “나세르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시온주의자들에 맞서 싸웠고 오늘날 나스랄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물론 나세르와 나스랄라를 동일시하는 움직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나세르주의 정당의 사예드 사반은 “나세르는 모든 식민주의 세력과 맞서 싸웠으며, 그 지역에 있던 혁명세력을 지원했다”면서 “나스랄라의 역할은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저항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나스랄라가 나세르에 비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케파야운동’의 조지 이스라크 대변인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두 사람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처사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국가의 독립과 자부심을 지키는 영웅을 절박하게 찾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꺼져가는 아랍민족주의에 새롭게 불을 지를 지도자가 나스랄라라는 분석이다.

도대체 나스랄라는 어떤 인물이기에 나세르에 비견되는 것일까.


국제사회 압력에 맞서 나홀로 싸움

20세기 아랍 최고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나스랄라는 1960년 8월 31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1975년 레바논 내전 당시 조상들의 고향인 레바논 남부의 알 바주리야로 옮긴 뒤 당시 시아파 정치조직인 ‘아말운동’에 가입했다. 그는 이란에서 이슬람 공부를 한 뒤 당시 헤즈볼라 지도자였던 아바스 알 무사위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자 나스랄라는 22살의 나이에 헤즈볼라에 가입해 레바논 남부지역과 베카계곡에서 항전을 벌였다. 그는 10년 뒤인 1992년 알 무사위에 이어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의 지도하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00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로부터 철수케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나스랄라는 레바논은 물론 아랍국가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또 2004년 이스라엘 기업인과 사망한 병사 3명을 430명의 헤즈볼라 및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맞교환한 일은 그가 투쟁력뿐만 아니라 협상력도 갖춘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리엘 샤론 및 베냐민 네타냐휴 전 이스라엘 총리의 자서전을 읽었다고 한 적이 있다. 이유는 ‘적’을 알기 위해서였다. 파티마 야신과 혼인해 5명의 자녀를 둔 그는 장남 무하마드 자와드를 1997년 이스라엘과 전투 중 잃었다. 그의 사무실과 집은 지난 7월 14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스랄라는 지난 7월 26일 헤즈볼라 자체 방송인 알 마나르 TV를 통해 “미국과 시온주의의 시각은 ‘신 중동’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며 신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은 퇴출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신 중동’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수 차례 쓴 용어이다. 나스랄라는 “신 중동에서는 어떤 저항도 있을 수 없으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의 저항운동이 제거돼야 하는 것”이라며 항전의 확대를 선언했다.

나스랄라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국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라는 적과 맞서 4주째 홀로 싸우고 있다. 국제사회도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정확히는 레바논 남부에서 레바논군을 제외한 모든 세력의 무장해제)를 요구한 2004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59호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유엔 주도하의 다국적군 파견 문제도 사태 해결의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태 해결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나세르 전 대통령이 50년 전 영국·프랑스·이스라엘과 제2차 중동전쟁을 치를 때에는 미국이라는 중재자가 있지만 지금의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고 지지자다. 미국의 주장대로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시리아와 이란만이 사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