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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온라인

영국 진보·보수 언론, 머독에 대항해 공동전선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언론 가디언과 데일리 미러, 대표적인 중도보수 언론 데일리 텔레그라프와 데일리 메일이 손을 맞잡았다. 영국의 진보 및 보수 언론이 손을 맞잡은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들이 공동전선을 형성한 이유는 세계 최대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사진)이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기업 뉴스코퍼레이션의 영국 위성방송업체 브리티시 스카이 브로드캐스팅(B스카이B) 인수를 막기 위해서다.

가디언에 따르면 가디언 미디어 그룹의 앤드류 밀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이들 회사의 CEO들은 지난 11일 “제안된 인수는 미디어 다양성에 심각하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인수를 반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빈스 케이블 산업부 장관에게 보냈다. 뉴스코퍼레이션의 B스카이B 합병 반대에는 마크 톰슨 BBC 사장, 이언 리빙스턴 BT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에이브래엄 채널4 최고경영자도 가세했다.

머독 회장이 이끌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은 현재 B스카이B 지분 39%와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선과 뉴스 오브 더 월드, 더타임스 등 신문사와 출판사 하퍼콜린스를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기업이다. 뉴스코퍼레이션은 지난 6월 나머지 지분 61%를 인수하기 위해 80억파운드(약 14조3800억원)를 제시한 바 있으며, 영국 정부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영국 정부가 뉴스코퍼레이션의 B스카이B 인수를 승인할 경우 영국의 미디어 지형은 바뀌게 되며, 이는 향후 정치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코퍼레이션이 이미 연 매출액에서 공영방송인 BBC(48억파운드)를 크게 앞서고 있는 B스카이B(59억파운드)를 인수할 경우 총 매출액은 75억파운드로 급증하게 된다. 대중지 선과 더타임스 등으로 영국 전체 신문 시장의 5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으로서는 방송마저 장악하는 효과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머독이 보유하고 있는 언론들의 광범위한 도움을 받아 승리한 바 있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5년에 예정된 총선에서도 머독이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견지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보수당이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머독의 보수당에 대한 무한지원은 연정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머독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스코퍼레이션의 B스카이B 인수 여부는 유럽위원회와 영국 정부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유럽위원회는 뉴스코퍼레이션이 B스카이B 지분 인수가 경쟁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하면 이를 조사하게 되고, 케이블 장관은 그로부터 25일 안에 인수 거래가 미디어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산업부 장관은 유럽위원회로부터 통고받은 뒤 10일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영국 총리의 결재를 받으면 인수는 성사된다. 따라서 뉴스코퍼레이션의 B스카이B 인수 성사 여부는 조사 과정에서 인수가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해악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한편 뉴스코퍼레이션의 B스카이B 인수전으로 머독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비유돼 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소유하고 있는 언론기업 미디어셋은 보유 신문이 하나도 없고, 민영 방송사 3개만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머독의 영향력은 베를루스코니를 능가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