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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반 이슬람 정서는 ‘과대혐오증’ (2010 09/28ㅣ위클리경향 893호)

9·11 9주년 맞은 미국 사회 뜨거운 논란으로 번져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반감인 ‘이슬람 혐오증(Islamophobia)’이 미국과 유럽에서 만연하고 있다.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센터 건립 논란에서 촉발돼 이슬람 성전인 코란 불태우기 논란으로 번지면서 9·11 9주년을 맞은 미국 사회에는 어느 때보다 반 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9·11 테러 현장 인근에 모스크 건립을 놓고 찬반론자들이 8월25일 모스크가 들어설 미국 뉴욕 로워 맨해튼에서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라운드 제로 인근 모스크 건립 논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 현안으로 비화했다. 오바마가 무슬림이라는 주장과 맞물리면서 종파 및 이념을 초월해 범 세계적 현안으로 발전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코란 불태우기 논란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주의 작은 복음주의 교회 목사가 불을 지핀 이 논란에 대해 백악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에릭 홀더 법무장관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은 9월8일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코란 태우기 이미지를 과거 아부 그라이브 사건처럼 이용할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2004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미군의 학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 이라크 반전 분위기 및 반미 감정을 부추긴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코란 태우기를 반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슬람 세계를 불필요하게 자극해 본토의 미국인이나 해외 주둔 미국인 및 미군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 모스크 건립과 코란 태우기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이슬람센터 건립은 뉴욕시 당국이 허가를 내 준 만큼 합법적이고 정당하다. 그럼에도 논란이 커진 데는 극우파들이 ‘그라운드 제로 모스크’라고 이름 붙인 결과다. 미국인이 그라운드 제로와 모스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거부감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 이름이 ‘코르도바 하우스’인 이슬람센터는 식당과 체육관, 수영장, 예배당 등을 모두 갖춘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곳이다. 그라운드 제로와도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영국 런던의 무슬림자선단체의 공보담당인 모함마드 샤키르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설을 ‘그라운드 제로 모스크’로 부르는 것은 소름끼칠 정도로 잘못 이름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코란 불태우기도 합법적이어서 미국 정부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미국은 종교 및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엄격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폭력사태의 위험이 없는 한 미국 국기나 십자가를 태우는 것도 용인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1989년 국기 소각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 48개주에 대해 관련 법 개정 명령을 내렸다. 미 대법원은 또 2003년 버지니아주가 공공장소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를 불태우는 행위를 금지한 버지니아 주법에 대해서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정토록 했다. 다만 코란 불태우기는 플로리다주 법에는 위배돼 코란을 소각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교회가 있는 게인스빌 시당국이 소각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인스빌 시당국의 봅 우즈 대변인은 “교회에 2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내 이슬람 혐오증의 원인은 무슬림들이 미국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한다. 하지만 통계학적으로 보면 과장됐다고 할 수 있다. 미국내 무슬림 인구는 1%도 되지 않는다. 미국이슬람관계협회(CAIR)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국내 거주 무슬림은 180만명이며, 모스크는 약 1200개로 조사됐다.
 
2007년에 무슬림 실태를 조사한 퓨리서치센터는 당시 무슬림 숫자를 235만명으로 추정했다. 퓨리서치 조사에 참여한 미 켄터키대학의 이산 배그비 이슬람학 교수는 CSM에 “모스크 건립 논란은 반대주의자들이 기본적으로 모스크와 이슬람을 알카에다나 오사마 빈 라덴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슬람 혐오증은 기본적으로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유럽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반 이슬람 정서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벨기에는 지난해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했으며, 프랑스 의회도 머지 않아 이를 금지할 태세다.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모스크에 첨탑을 세우는 것을 금지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6월 총선에서 코란을 금지하고 머리스카프를 쓰면 벌금을 물리고 새 모스크 건립과 무슬림의 이민을 반대하는 ‘반 이슬람’을 슬로건으로 내건 극우주의 정당 자유당이 제3당으로 부상했다. 독일 함부르크 시당국은 지난 8월초 과격 모스크에 대해 폐쇄 조치를 내렸다. 미국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의 대니얼 루반은 CSM에 “모스크 건립 반대주의자들은 미국의 예외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들의 이념은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라면서 “그들 스스로 반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라고 하는 대부분의 비유는 유럽에서 도입됐다”고 말했다.

유럽 각국에 이슬람 혐오 정서 확산
실제로 9·11 이후 유럽과 미국 일각에 ‘유라비아’라는 말이 유포됐다. 유럽과 아라비아를 합친 이 말은 이슬람의 쓰나미가 유럽을 덮쳐 유럽이 무슬림으로 넘쳐나고, 모스크가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만큼이나 늘어나고, 이슬람 율법(샤리아)이 유럽 헌법을 대체한다는 것으로, 서구인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터키인과 무슬림을 공격하는 책을 발간하려다 독일 정부의 반대에 부딪힌 틸로 자라친은 “나는 내 손자를 비롯한 후손이 무슬림이 지배하고, 터키어나 아랍어가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고, 여성들이 머리 스카프를 쓰고, 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에 맞춰 코란을 암송하는 나라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무슬림의 실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영국 더램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투피알 초드리는 “무슬림의 관심은 신앙을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집과 교육, 이웃의 안전이며 무슬림 2세대는 기대가 적다보니 실망이 크지 않은 부모 세대에 비해 기대가 커 종종 배제되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카메룬 출신의 사이드는 “유럽은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무슬림에겐 자유의 장소”라며 “일부 종교적 신념이 강한 무슬림도 정통 이슬람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고 CSM에 말했다.

지난 8월 말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모스크 건립 논란이 한창일 때 CSM은 의미있는 분석을 내놨다. 모스크 건립 논란은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조차 이슬람과 테러리즘을 동일시하지 않았던 일련의 구분과의 결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 유럽의 무슬림에 대한 차별은 오랫동안 유럽을 지탱해온 관용, 다양성, 표현의 자유와 같은 가치들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혐오증은 미국과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갈 것인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저스틴 바이스는 “현재의 긴장은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적응과정이지 파국으로 가는 신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찬제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