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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12/위키리크스와 그 적들

위키리크스의 잇단 기밀폭로의 최대 피해자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의 비밀, 국무부 외교전문 공개로 만신창이가 됐다. 제국주의의 오만함은 물론 투명성과 열린 정부를 강조해온 오바마 행정부의 구호가 공염불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공공의 적’인 위키리크스와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입과 발을 묶으려는 미 행정부의 반격은 무차별적이다. 어산지를 미 법정에 세우기 위해 간첩법과 공공기물 절도죄를 적용하려는 법률 검토가 진행 중이다. 일반인의 위키리크스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서버 제공업체에 압력을 공공연하게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이 2010년 12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영국대사관 앞에서 해커들의 모임인 ‘어노니머스’의 가면을 쓰고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를 석방하라는 내용의 그림을 든 채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 행정부의 대응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미 행정부가 1년에 생산하는 문건 가운데 1급비밀만 1600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하기로 한 외교전문 25만여건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더욱이 1급비밀은 한 건도 없다. 간첩법과 공공기물 절도죄로 어산지를 옭아매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미 행정부가 어산지에게 국가안보를 해쳤다는 이유로 간첩법을 적용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산지가 고의적으로 미 정부에 해를 끼치기 위해 행동했다는 점, 기밀공개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 어산지가 언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대로 간첩법에 저촉된 언론인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언론의 정부 기밀보도가 헌법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도 폭로의 책임은 비밀을 지키도록 권한이 부여된 기관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공공기물 절도죄 적용도 쉽지 않다. 당초 이 죄목은 실물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빼돌린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전자정보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행정부의 대응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위키리크스와 어산지에 대한 미 주류 언론과 언론인들의 공격이다. 위키리크스의 기밀폭로 이후 일부 언론은 미 행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기득권을 앞세워 어산지는 언론인이 아니고 위키리크스도 언론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어산지의 행위가 언론의 역할에 속하는지, 그 동기가 개인의 영웅심리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통해 고발하려 한 것은 9·11 이후 강화하고 있는 미 행정부의 기밀보호 움직임에 대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이다. 미 행정부가 기밀을 공개하려는 언론에 법적 대응이라는 재갈을 물림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온 것은 사실이다. 위키리크스와 어산지는 이 같은 현실에서 언론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이다. 어산지가 지난해 국제앰네스티가 위키리크스에 주는 미디어상을 수락하면서 한 말은 이 대목에서 곱씹을 만하다. “우리는 조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한 첫걸음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통해 정치적 맥락을 제시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그것은 공공의 관심사가 된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옹호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언론 스스로가 이기주의에 파묻히거나 제구실을 못할 경우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익을 위해 정부의 거짓말을 들춰내 고발하는 일이다. 과연 ‘위키리크스의 적’은 누구인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민의 알권리를 막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는 정부와,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기존 언론들이 바로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