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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14/1848 유럽, 2011 아랍

2011년 초부터 아랍세계가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튀니지에서 타오른 민주화 불길이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철옹성인 리비아로까지 번진 상태다. 튀니지와 이집트는 ‘혁명 이후’ 단계에 접어들었다. 바레인과 예멘, 리비아 등은 혁명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하다. 혼돈 그 자체다.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아랍 민주화 시위를 지켜보는 기자의 심경도 마찬가지다. 자유를 향한 목숨 건 투쟁을 펼치는 국민들에 대한 경의도 잠깐일뿐,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그저 먹먹할 따름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이집트는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를 이룰 것인가. 이집트 군부는 끝까지 중립을 지킬 것인가. 이집트-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사항전을 선언한 카다피의 최후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전철을 밟을까.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은 쇠퇴할 것인가. 아랍 민주화 이후 세계질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불확실성과 혼돈 속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에 사로잡혀 아랍 민주화의 현장을 좇고 있던 어느 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알렉산더의 칼은 아니었지만 복잡하게 얽힌 현 상황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해준 숫자 3개였다. 1848, 1968, 1989. 이 세 숫자는 세계사에 중대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 일어난 연도다. 세계를 뒤흔든 혁명의 해이기도 하다.


1848년은 프랑스 2월혁명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에서 절대군주제를 반대하는 시민혁명이 일어난 해다.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불리는 이 혁명은, 그러나 실패했다. 특권 귀족에 맞서 자유를 부르짖었던 프랑스 부르주아들은 결국 절대왕정 품에 안겼다. 유럽을 뒤덮었던 혁명의 기운은 잠깐, 반혁명의 바람이 대체한 것이다. 당시 뿌린 혁명의 씨앗은 수십년 뒤 근대국가의 성립으로 열매를 맺었다. 1989년은 동유럽 민주혁명의 해다. 소련 주변의 사회주의 정권들이 연속적으로 쓰러졌다. 결국 혁명은 냉전 종식과 소련의 해체를 낳으면서 성공한 혁명으로 불렸다. 1968년 혁명은 좁게는 당시 드골 정권의 실정과 사회 모순에 반기를 든 프랑스 5월혁명을 말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베트남 전쟁 반전 분위기를 타면서 전 세계에 뉴 레프트 바람을 일으켰다. 성 해방, 생태, 환경 등 당시 보수적인 가치들을 뒤집는 새 가치들이 탄생했다.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세계가 동시에 거대한 혁명의 물결로 뒤덮인 시절은 많지 않았다. 이 세 개의 혁명은 기반도, 성격도, 결과도 달랐다. 하지만 그 파장이 한 국가가 아니라 주변국에까지 미쳤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랍 민주화 시위 와중에 전문가들이 세 개의 혁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랍 민주화 운동이 세계를 뒤흔든 혁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랍 민주화 시위는 나라마다 그 배경과 진행과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세 혁명처럼 혁명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2011년 아랍 민주혁명은 1989년 동유럽의 민주혁명처럼 성공한 혁명이 될 것인가, 1848년 시민혁명처럼 실패한 혁명이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비록 실패했지만, 새 미래를 여는 씨앗을 뿌린 1848년 유럽 시민혁명의 길을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기자로서는 이들의 분석에 바탕해 아랍 혁명의 과정을 지켜볼 따름이다. 하지만 기존의 세 혁명처럼 아랍 민주혁명이 미래 역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