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0 단어(A4 용지 15장 분량)에 이르는 이 기사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파키스탄과 예멘, 소말리아에서 무인비행기(드론)로 테러 용의자 누구를 제거할 것인지를 정하는 살생부(Kill List) 제작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관여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무인비행기 프레데터가 2010년 1월 30일 작전수행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칸다하르 공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칸다하르 | AP연합뉴스

“이것은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적에 관한, 예멘에서 활동하는 서방과 관련된 알 카에다 요원 15명의 자료다. 얼굴사진과 약력은 고교 졸업앨범과 닮았다. 몇 명은 미국인이다. 17세 미만으로 보이는 여성을 포함해 두 명은 10대다.”

지난 5월 29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오바마의 원칙과 의지를 시험하는 비밀스런 살생부’라는 제목으로 실은 장문의 탐사보도 기사의 시작 부분이다. 6600단어(A4 용지 15장 분량)에 이르는 이 기사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파키스탄과 예멘, 소말리아에서 무인비행기(드론)로 테러 용의자 누구를 제거할 것인지를 정하는 살생부(Kill List) 제작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관여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공격 빈도, 오바마 정부 출범 뒤 늘어


30여명의 전·현직 미 안보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기사에 따르면 오바마와 안보 실무자 20여명은 매주 화요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살생부를 만든다. 미 국방부와 CIA가 정한 암살 대상자를 토대로 테러 용의자를 사살할 것인지, 생포할 것인지 오바마 대통령이 정한다는 것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담당 보좌관은 “이 같은 행동(살생부 작성)은 미국인에 대한 위협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우리 모두 사람이 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회의에선 생포 가능성, 정보의 정확성, 위협의 긴박성이라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사살 대상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살생부 작성에 직접 관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CIA가 테러 대상자를 더 쉽게 제거하는 방안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징후 타격(signature strikes)’이다. 이는 테러 용의자라고 의심받는 행동만으로도 공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세 남자가 낙하 모의훈련을 하는 모습을 본다면 CIA는 테러범들의 훈련캠프로 여길 것이라는 농담이 있다.

CIA는 남자들이 비료를 트럭에 싣고 간다면 그들이 진짜 농부일 수 있는데도 폭탄제조자로 여길 것”이라면서 미 국무부 관계자들이 CIA가 테러 용의자들의 징후 기준을 너무나 느슨하게 정의하고 있다는 데 불만을 보였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뷰에 응한 전·현직 안보 관계자들이 오바마를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에 필요한 법적 절차는 피하면서 위험한 작전은 두려움 없이 승인하는 ‘역설적인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오바마는 이라크전쟁과 고문 반대와 같은 자신의 원칙을 버리고 테러 용의자를 상대로 한 비정규적 전투의 실용주의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9·11 테러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전쟁이라면 무인비행기 공격을 통한 대테러전은 오바마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무인비행기 공격은 2001년 9월 테러와의 전쟁을 이끈 부시 전 대통령이 2004년 시작했지만 2009년 1월 오바마 행정부 출범 뒤 급증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2년 동안 파키스탄에서 이뤄진 무인비행기 공격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 런던의 시티대학교 탐사보도과의 집계에 따르면 2004년부터 파키스탄에서 이뤄진 미국 중앙정보국(CIA) 주도의 무인비행기 공격은 327회였다. 그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공격은 275회에 이른다.

파키스탄 국민들이 지난 5월 8일 페샤와르에서 사흘 전 미국의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10명이 사망한 데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페샤와르 | 신화연합뉴스


미국이 무인비행기 공격을 하는 이유는 미군 병사의 인명피해 없이 목표물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예찬론자들은 미국 네바다주 사령부에서 원격으로 이뤄지는 무인비행기 공격이 정교한 정확성과 철저한 정찰활동을 자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폭이나 민간인 사망이라는 부작용이 일어남에 따라 국가간 외교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키스탄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무인비행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자국 병사 2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보급로를 차단했다. 런던 시티대학에 따르면 2004년 이후 파키스탄에서 무인비행기 공격으로 사망한 숫자는 2464~3145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민간인은 어린이 175명을 포함해 828명이나 된다.

‘무인비행기 공격은 잠재적인 전쟁 범죄’


미국의 무인비행기 활용 전략에 관한 논란 가운데 하나는 무인비행기 공격이 살인이나 전쟁범죄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유엔의 법적절차 없는 살인행위에 관한 유엔 조사관인 필립 알스톤을 포함한 국제법 변호사들은 무인비행기 공격에 의한 살인은 잠재적인 전쟁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CIA에서 무인비행기 공격을 승인한 존 리조는 스스로 살인에 관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 법무부 법률고문으로 오바마에게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한국계 해럴드 고(한국이름 고홍주)는 미국의 무인비행기 공격은 자위권에 따른 것이어서 국제법상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력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한 자위권은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반론이 따른다.

무인비행기를 활용한 대테러 작전은 급진적 테러리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탐사보도 기사에서 무인비행기 공격으로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파키스탄과 예멘에서 주권을 침해하고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도발자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뉴욕타임스 보도 다음날 ‘무인비행기는 예멘에서 반발심을 자극한다’라는 기사에서 미군 공격이 주민들을 과격하게 하고 알 카에다 연계세력에 동조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담당 보좌관은 지난 4월 무인비행기 공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는 ‘정밀 타격’인 만큼 민간인 희생자는 “극히 예외”라고 말했다.

ABC방송은 뉴욕타임스 보도 다음날인 5월 30일 ‘노벨평화상 수상자, 드론 최고사령관 되다’라는 기사를 소개했다. 오바마가 2008년 대선 유세 당시 이라크전쟁 반대와 절차적 헌법 준수를 옹호한 점과 취임 첫해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 금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및 수감자의 민간재판 등의 조치를 해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점을 들어 그의 변신을 꼬집은 것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주축이 돼 만든 반전평화단체 ‘코드 핑크’(Code Pink) 공동설립자 메데아 벤저민은 5월 30일 디시던트 보이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 정보기관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테러 용의자 명단 정보를 마치 야구선수 명단처럼 제공해 살생부로 활용하게 하는 것은 CIA가 관타나모 수용소에 테러 용의자를 수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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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는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MEK에 비밀 자금을 댔으며, MEK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미국 측에 제공했다. 이 같은 미국의 이란 비밀작전은 요즘도 진행되고 있다고 허시는 전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의 환락도시 라스베이거스 북서쪽 약 100㎞ 떨어진 척박한 고원지대에는 미 에너지부 산하의 네바다국가보안구역이 있다. 과거 핵실험이 이뤄진 곳이지만 지금은 방첩부대 훈련시설과 보잉737 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시설이 있다. 민간인 접근이 금지된 지역으로, 이곳을 지키는 보안요원들은 불법 침입자가 있을 경우 총기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지난 1월11일 경찰이 폭탄테러로 숨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의 자동차를 견인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로샨의 암살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도움을 받은 이란 반체제 단체 무자헤딘 이 칼크(MEK) 조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테헤란|AFP연합뉴스

 

 

미군이 이곳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대이란 공작활동을 위해 이란 반체제 단체 인사들을 훈련시켜왔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이 주장을 펼친 이는 주간지 뉴요커의 저명한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모어 허시(75)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은폐한 밀라이 사건(1969년)과 이라크 주둔 미군의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 이라크군 포로 인권유린 사건(2004년) 등 수많은 특종이 그의 취재 끝에 빛을 보게 됐다.

허시는 지난 4월 6일 뉴요커 인터넷판에 미군 특수전을 총괄하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가 2005년부터 네바다국가보안구역에서 이란 반체제 단체인 ‘무자헤딘 이 칼크(MEK)’ 회원들을 훈련시켜왔다고 전·현직 정보관리 및 군사고문들의 말을 인용해 폭로했다. 이란 인민무자헤딘기구(PMOI)로도 불리는 MEK는 1960년 중반 마르크스주의-이슬람주의자 학생 조직으로 출범했지만 현재는 이란의 대표적인 반체제 단체가 됐다. 프랑스 파리와 이라크 캠프 아쉬라프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조직원은 최소 3000명에서 최대 1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MEK는 1979년 리자 샤 팔레비 국왕을 축출한 이란혁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혁명 후 보수 이슬람 성직자들과의 갈등 탓에 내부투쟁의 길을 걸었다. 특히 미국인 6명 암살사건과 연루됐다는 이유로 1997년엔 미 국무부로부터 테러단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2002년 이란이 지하 장소에서 우리늄 농축을 시작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제적인 신뢰를 얻었다.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나중에 MEK가 공개한 이란 핵정보는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제공한 것이라고 털어놨다고 허시는 기사에서 밝혔다.

이란 반체제단체 MEK, 미군 지원받아


MEK가 서방 정보기관과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JSOC는 이란이 지하 비밀장소에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우려를 확인하기 위해 이란 내 작전에 돌입했다. 미 정부는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MEK에 비밀 자금을 댔으며, MEK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미국 측에 제공했다. 이 같은 미국의 이란 비밀작전은 요즘도 진행되고 있다고 허시는 전했다.

MEK의 문장

미군이 이란 내부 정보를 캐내기 위해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단체에 비밀 훈련을 시키고 자금을 댔다는 폭로는 충격적이다. 현재 이란과 서방은 이란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는 MEK를 테러단체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네바다 훈련을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허시는 지적했다.

 

한 전직 정보관리는 “우리는 그들을 이곳에서 훈련시켰고 에너지부를 통해 그들의 신분을 세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을 멀리 떨어진 사막이나 산악지대에 배치해 통신능력을 배양시켰다”면서 MEK 조직원 훈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중단됐다고 말했다. 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관련 자문을 해온 퇴역 4성 장군은 2005년에 MEK와 관련된 이란인들이 네바다에서 미군이 개입한 훈련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6개월 동안 통신훈련, 암호해독, 소규모 전술, 무기와 같은 표준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1996년까지 MEK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탈퇴한 뒤 영국에서 탈퇴자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수드 코다반데도 최근 탈퇴자로부터 네바다 훈련에 대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네바다에서 하는 통신훈련은 공격을 받는 동안 통신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통신감청을 배운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MEK 훈련을 주도한 JSOC의 대변인은 “미 특수전부대는 MEK 조직원을 알지도 못하고 훈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허시는 전했다,

이란 핵과학자 암살 주범으로 드러나


MEK 측도 부인했다. MEK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앨런 거슨은 MEK는 공식적으로 반복해 폭력을 포기했다면서 네바다 훈련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만약 이 같은 훈련이 사실이라면 “MEK를 테러단체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겠다는 국무부의 결정과 맞지 않다”면서 “테러조직에 자금을 댈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외국 테러단체 명단에 오른 조직원을 어떻게 미국이 훈련시킬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MEK는 또 지난 1월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이던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 암살을 비롯해 2007년 이후 5명의 핵과학자 사망의 주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 NBC방송은 지난 3월 오바마 행정부 관리 2명의 말을 인용해 5건의 이란 핵과학자 암살을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로부터 자금과 훈련을 지원받은 MEK 조직원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관리들은 MEK 활동과 미국의 개입은 부인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허시는 이란 핵과학자 사망 배후에 모사드가 미국의 정보를 토대로 MEK와 함께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특수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란 안에서의 미국과 MEK의 연계는 오랫동안 이뤄져왔다”면서 “현재 이란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MEK 대리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시 기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MEK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공작을 하기 위해 활용해온 ‘비밀병기’인 셈이다.

 

MEK를 이란 체제 변화를 위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의 이란 핵정책에 비판적인 폭스뉴스 인터넷판은 4월 16일 MEK를 적극 활용할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충고하는 내용을 담은 톰 리지 초대 국토안보부 장관의 기고문을 실었다. 리지 전 장관은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개발 야망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투쟁해왔지만 미국이 지금 배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외교를 통한 제재나 미사일을 이용한 전쟁이 아니라 이란의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야권은 탄압을 받아 지리멸렬하고 이란 신정체제 타도를 목표로 활동해온 MEK도 쫓겨나는 등 박해를 받아왔지만 이란 당국은 MEK를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 국무부가 MEK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란 당국에 살인면허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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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러시아 대통령 3선에 성공… 민심 잃은 ‘차르’의 앞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60)가 지난 3월 4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3선에 성공함으로써 러시아에 ‘현대판 차르’가 탄생하게 됐다. 2000~2008년 두 차례에 걸쳐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푸틴은 이번 당선으로 2018년까지 6년간 대통령직을 보장받았다. 헌법상 연임이 가능해 2024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이 경우 푸틴이 대통령으로서 러시아를 통치하는 기간은 14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다. 총리로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47) 위에 군림해 ‘상왕통치’를 한 4년을 포함하면 푸틴의 통치기간은 24년으로 늘어난다. 1964~1982년까지 18년 동안 옛 소련을 통치한 브레즈네프를 넘어, 1929~1953년까지 24년 동안 통치한 독재자 스탈린에 버금가는 최고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3월 4일 밤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선거 승리 선포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철권통치자로서의 푸틴의 면모

러시아의 강력한 지도자 푸틴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스파이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푸틴은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안보국(FSB) 국장 시절인 1999년 8월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됐다. 스파이 수장에서 현대판 차르가 탄생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푸틴은 옐친 대통령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 직무대행을 거쳐 이듬해 3월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푸틴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철권통치로 강한 러시아 시대를 열었다. 푸틴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은사이자 정치적 대부인 아나톨리 소바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조차 푸틴을 ‘새로운 스탈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철권통치자로서의 푸틴의 면모는 러시아 작가이자 언론인 마샤 게센(45)이 최근 펴낸 <얼굴없는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예상 밖의 부상>에 샅샅이 드러나 있다. 게센은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세상을 가둔 천재 페렐만>으로 알려진 작가로, <얼굴없는 남자>를 통해 살아있는 권력 푸틴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얼굴없는 남자>를 분석한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게센이 푸틴을 인신공격하고 비난하지만 믿을 만한 사실들과 통찰력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푸틴의 탐욕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프로풋볼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인 로버트 크래프트(71)는 2005년 러시아 방문 때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 해 패트리어츠는 슈퍼볼 우승컵을 안았다. 푸틴은 크래프트가 내민 우승반지를 보며 크래프트에게 “한 번 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반지를 낀 푸틴은 “이것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겠군” 하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푸틴은 처음엔 반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지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가버렸다. 크래프트는 “돌려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반지는 푸틴의 것이 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크래프트는 반지를 제작한 회사에 부탁해 다시 하나 만들었다. 게센은 푸틴의 탐욕이 병적 도벽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공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의 착복과 선거부정 등을 통해 벌어들인 푸틴의 개인 자산이 40억 달러(약 4조4628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게센은 푸틴의 철권통치 시작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사례로 1999년 모스크바 아파트 연쇄 폭탄테러 사건을 꼽았다. 러시아는 당시 수백명이 숨진 이 사건의 범인을 독립을 요구하던 체첸 자치공화국 반군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게센은 푸틴이 당시 수장으로 있던 FSB가 사건의 배후라고 단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푸틴은 옐친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게 되고, 러시아는 체첸 반군과의 전쟁을 정당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게센은 2002년 모스크바 극장 및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강경진압도 분리독립을 꿈꾸는 체첸과 북오세티야 공화국에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푸틴이 보낸 경고로 해석했다. 2000년 118명이 숨진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참사에 대해서도 비록 크렘린의 소행으로 보진 않지만 소극적으로 다뤘다고 꼬집었다. 잇단 언론인 독살 및 암살사건도 푸틴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언론인을 처단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찰이 지난 3월 5일 전날 치러진 대선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연합뉴스

이같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푸틴이 지난 4일 대선 당일 밤 눈물을 보였다. 출구조사 결과 당선을 자신한 푸틴은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서 10만여명의 지지자가 운집한 가운데 ‘완전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연설 도중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강한 카리스마의 지도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푸틴이 흘린 눈물의 정체에 대해 푸틴 반대파들은 쇼라는 반응을 보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블로거인 슬라빅 체너는 트위터에서 옛 소련 시대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인용해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며 푸틴이 보인 눈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1981년 제53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푸틴이 눈물을 보인 이후 반푸틴 세력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모스크바 시내에 내걸었다.

경제 위기로 조기 사임 가능성 제기

푸틴의 눈물이 쇼이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표심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푸틴의 전국 득표율은 63.6%이지만 모스크바 득표율은 47%로, 약 16%포인트나 뒤졌다.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선거부정이 이뤄진 점과 이번 대선을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에 맞서 승리한 나폴레옹 전쟁에 비유하며 막판에 모스크바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한 그로서는 참패나 다름없다.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대선 2주 전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러시아의 대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가 나폴레옹 전쟁을 노래한 시 <보로지노>(1838)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나폴레옹 전쟁 직전 조국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조국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영웅들을 노래한 레르몬토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구애를 폈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베도모스티의 타냐나 리소바 편집국장은 “푸틴은 모스크바에서 영웅이 아니다”라면서 “모스크바는 푸틴으로부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3선에 성공한 푸틴의 향후 통치체제를 두고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처럼 야권을 강하게 탄압하거나, 기존 통치노선을 밀고 나가거나,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로존 위기와 중국 성장세 둔화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과 같은 경제적 변수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경우 고유가 덕택에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푸틴으로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조기 사임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 싱크탱크 전략개발센터의 미하일 드미트리예프 소장(51)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러시아가 경제난이 가중되고 푸틴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급속히 추락하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처럼 푸틴도 대통령직에서 조기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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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가 시리아 국민을 지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잘못된 생각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시리아 사태 종식 결의안 채택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안보리가 채택하려 한 결의안은 모로코가 제안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권력 이양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 종식을 담고 있다. 군사개입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나오는 “왜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수 있다. 시리아 사태에 무력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아랍연맹 등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다.


 

1월 26일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에 합류한 탈영병들이 시위대와 함께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엔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사태로 민간인 54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어린이만 34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리아 정부는 정부군도 24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참상을 감안하면 국제사회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더욱이 지난해 3월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주도해 리비아 무력개입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한 것과 비교하면 ‘왜 시리아 사태엔 손을 놓고 있느냐’는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부동항인 시리아 타르투스 항 잃을까 두려워해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왜 시리아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시라아 군사개입에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국제사회가 무력으로 개입할 경우 내전과 같은 장기적인 무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변 아랍국가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러시아, 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섣부르게 군사개입을 했다가는 아랍 민족주의 국가들과의 분쟁을 불러 또다른 중동전쟁을 낳을 위험도 있다. 시리아는 또 정규군 32만여명과 예비군 20만명을 둔 군사강국이자 세계 최대의 화학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시리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꿈쩍도 않고 있다.

도대체 러시아는 왜 시리아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는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것일까. 1970년대 이후 알 아사드 가문을 지지해온 관계 때문인가. 아니면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시리아에 무기 수출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 때문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일 러시아가 6년 전 시리아 빚 100억 달러를 탕감해준 사실을 들며 알 아사드 정권과의 관계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 발발 이후에도 활발한 무기계약을 맺어왔다. 지난해 12월엔 야크 130 제트 훈련기 36대(5억 달러)를 파는 계약을 시리아 정부와 체결했다. 2007년에 체결한 SS-N-26 대함 순항미사일 72기도 시리아에 넘겼다. 3억 달러 규모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유엔 제재가 단행돼 러시아가 시리아에 무기 공급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피해규모가 50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무기 생산과 수출을 지원하는 국영기업 ‘로스테흐놀로기이’ 세르게이 체메조프 사장은 1월 25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과의 군사계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항공모함 쿠즈네초프호가 지난 1월 8일 시리아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정박해 있다.                                 타르투스/AFP연합뉴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지중해 연안에 있는 시리아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를 잃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러시아는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 타르투스항 임차계약을 맺었다. 러시아로서는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타르투스항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중해의 중요한 전략기지를 잃게 된다. 러시아에 타르투스 기지는 단순한 항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러시아가 18세기 후반부터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온 부동항 확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러시아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부동항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후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부동항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예카테리나 2세는 “부동항을 얻지 못하면 대국의 지위를 잃을 것”이라며 부동항 확보를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예카테리나 2세는 1774년 오스만 제국과 싸워 흑해로 나가는 통로를 확보했으며, 결국 지중해로 나가는 길을 열게 됐다.

지중해 다른 국가가 군기지 제공할까
러시아는 그 뒤 이집트와 아드리아해의 유고연방에도 해군기지를 두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패하고,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부동항 두 곳을 잃었다. 당연히 시리아 타르투스항은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으로서 그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아졌다. 러시아는 타르투스 내 기지 현대화에도 상당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알 아사드 정권이 끝나면 타르투스항을 사용하는 것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이 러시아의 인식이다. 러시아는 지난달 항공모함 쿠즈네초프호를 타르투스항에 입항시켰으며,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국제사회가 부동항 확보에 안달이 난 러시아를 달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은 있을까. 지중해 다른 국가가 러시아 군기지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미국 워싱턴에 있는 근동정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소네르 차이아프타이는 지난 1월 30일 터키 일간 후리예트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스령 키프로스를 비롯해 어느 나라도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 기지 두 곳을 두고 있는 그리스령 키프로스의 경우 러시아 기지 허용은 곧바로 터키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뾰족한 수는 없을까. 차이아프타이는 시리아 야권이 러시아에 알 아사드 퇴출 이후에도 타르타스항 사용권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무력개입을 피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서도 손해가 되지 않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시리아 야권과 국제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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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국의 경제제재 맞서 원유 수송 요충지 봉쇄 경고

이란이 2011년 말 서방에서 자국 원유 수출을 막을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란 공격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란 공격론은 이란 핵개발 저지를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미리 공격한다는 것으로, 2012년을 달굴 국제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미국 등 서방이 이란 핵개발을 막기 위해 내린 경제제재 조치에 있다. 서방은 이란의 핵개발이 중동 평화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각종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특히 미국 상원은 12월 15일 이란산 원유 수입 제한 및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의 추가 제재가 이뤄질 경우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벼랑 끝 전략’의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을 취한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가 허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지만, 이란과 미국은 1980년대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한 전례가 있어 미국으로서도 무시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대이란 추가 제재를 시행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미국 군사개입의 ‘방아쇠’가 돼 국제사회는 또 하나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이 2011년 12월 22일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4일부터 열흘간 일정으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실시될 군사훈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위협에 서방 사회 반발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서방세계에 경고한 것은 12월 27일이다. 모하마드 레자 라히미 이란 부통령은 “이란 석유에 대한 제재조치가 채택될 경우 한 방울의 원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이란 IRNA통신을 인용해 전했다. 라히미 부통령은 “우리는 적대행위나 폭력을 원하지 않지만 서방권은 (이란 원유에 대한) 제재 방침의 철회를 원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가 그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만 제재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의 봉쇄 경고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하비볼라 사야리 이란 해군 사령관은 28일 이란 국영 프레스TV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해군이 “오만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물 마시듯 쉽다”고 말했다. 사야리 사령관은 또 이란 해군이 필요한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의 이 같은 경고는 서방권이 자국을 공격하거나 경제제재 조치를 취할 경우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설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해군은 이 경고가 나오기 사흘 전인 12월 24일부터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열흘간 일정으로 해군과 공군이 참가한 가운데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해 있다.

해협 봉쇄되면 국제유가 급등

이란의 이 같은 위협에 미국 등 서방은 반발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2월 2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는 이란 정부가 핵의무 불이행이라는 실제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내놓은 또다른 시도”라면서 “일종의 엄포”라고 말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마이클 맨 대변인은 28일 성명을 내고 “EU는 이란에 대한 일련의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며 (이란 제재) 논의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맨 대변인은 “오는 1월 30일 EU 외무장관 회의에 때맞춰 추가 제재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EU가 추가 금수를 결정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이란산 석유 금수에 대해 EU 회원국 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27개국 외교·국방장관들은 지난 12월 1일 브뤼셀에서 이란 핵프로그램과 관련한 추가 제재조치로 석유 금수를 논의했으나 그리스, 이탈리아 등 이란산 석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란 해군 소속 잠수함 승무원이 2011년 12월 27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시 중인 군사훈련 도중 물 밖으로 나온 잠수함에 이란 국기를 세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08년에 있었다. 당시 이란은 만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미 해군과 걸프 국가들은 그럴 경우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맞대응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1980~1988년)로 거슬러간다. 1984년 이라크가 이란 유조선을 공격해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게릴라 전이 일어났다. 1988년 미 전함 새무얼 로버츠호가 이란의 어뢰공격을 받아 파괴되자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원해 이란의 원유시설과 해군기지를 공격했다. 이후 미 해군은 제5함대 본거지를 바레인에 두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비해 왔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유조선의 3분의 1 이상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 에너지정보국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1500만 배럴에 달한다. 이는 2010년 세계 하루 평균 석유소비량 8740만 배럴의 6분의 1이 넘는 양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국제유가 급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글로벌리스크매니지먼트의 토르비요른 옌센은 로이터통신에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위협은 첫날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쳤지만 곧바로 안정됐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으로 이란의 봉쇄조치를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란 해군들이 2011년 1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소형 선박에 승선해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로이터연합뉴스

관심거리는 과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CNN방송은 이란이 서방의 오랜 제재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만큼 해군력이나 공군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이 소규모
잠수함이나 군함을 동원하거나 어뢰를 이용해 공격하는 ‘비대칭 전쟁’은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11월 이란이 소형 잠수함 3척을 진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고 해서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도 또다른 관심거리다. 두바이에 있는 근동 및 걸프군사연구소의 시어도어 카라식은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은 물리적 공격을 통해 그 지역을 장악할 수 있으며 주변국은 모두 이란의 행위를 중단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의 기준과 관련해 눈에 띄는 보도가 세밑에 나왔다. 미국의 온라인매체인 데일리비스트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한 ‘금지선(red lines)’ 설정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이란이 만약 금지선을 넘을 경우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논의 중인 금지선에 포함될 수 있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금지선에 포함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이란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쟁을 실제로 할 것인지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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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후보 추문, 말실수에 상대적 지지 상승...약점 많아 초반 인기 그칠 수도


   ‘컴백 키드’ ‘와일드 카드’.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68)에게 미 언론들이 붙인 이름들이다. 컴백 키드는 199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으로 공화당 혁명을 일으켜 총선 승리를 이끌고 이듬해 40년 만에 공화당 출신의 하원의장이 된 깅리치의 부활을 의미한다. 와일드 카드는 그가 내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64)를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10월 17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잭슨빌/AP연합뉴스
 
  두 용어가 보여주듯 깅리치 전 의장이 최근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깅리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력 후보인 롬니 전 주지사를 제치고 선두로 나서면서 미국의 정치분석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깅리치의 급부상은 경쟁자인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61)와 허먼 케인 전 피자체인 최고경영자(66)가 잇단 추문으로 추락하는 사이에 얻은 반사이익 덕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깅리치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깅리치가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가 고꾸라진 다른 후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깅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 승리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깅리치의 급부상은 무엇보다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지지율에서 드러난다. 깅리치는 10월 22일 공개된 퀴니피액대학의 여론조사에서 라이벌 롬니 전 주지사를 앞섰다. 깅리치는 공화당 선호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6%의 지지를 얻어 22%를 얻은 롬니를 따돌렸다. 두 사람 간 맞대결에서도 깅리치는 49%를 얻어 39%에 그친 롬니를 10%포인트나 앞섰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 깅리치가 롬니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꺾을 수 있는 후보로 깅리치(23%)보다 롬니(38%)를 선호했다. 두 사람은 오바마와 맞대결을 벌일 경우 모두 지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그 격차는 롬니(1%포인트)보다 깅리치(9%포인트)가 컸다. 
  
 공화당이지만 불법체류자 이민에 긍정적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인지 깅리치는 11월 22일 CNN 주최로 열린 공화당 경선 후보의 TV토론회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깅리치는 이날 토론회에서 민감한 불법이민 문제에 대해 차별화된 의견을 밝히면서 토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5년 동안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아들·딸·손자와 함께 살아온 이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깅리치를 비판했다. 깅리치는 공화당의 다른 후보와는 달리 불법체류자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입장을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이 당내 대선 주자로 부상하기 위한 도박인지,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포석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공화당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깅리치의 갑작스런 부상의 원인과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깅리치는 5개월 전인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선거캠프 참모들이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사실상 당내 경선 후보에서도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다. 당시 이 사실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깅리치 캠프의 핵심 전략가인 데이브 카니, 언론홍보 책임자인 릭 타일러 등 참모진 16명이 캠프에서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다른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대반전을 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가운데)이 10월 22일 열린 CNN방송 주관 TV토론에서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와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살롱은 11월 15일 깅리치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많은 공화당원들이 미트 롬니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 허먼과 페리가 스스로 위신을 실추시킨 점, 그리고 깅리치는 TV토론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실제로 깅리치는 경쟁자들의 잇단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다. 케인은 잇단 성추문으로, 페리는 잦은 말실수로 스스로 추락했다. 깅리치는 또 이들과 달리 지금까지 진행된 TV토론에서 아무런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깅리치는 대권 후보로서는 뼈아픈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치전문 주간지인 <내셔널저널>은 10월 16일 깅리치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 5가지를 들었다. 대표적인 약점은 그가 대통령직에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그의 캠프 참모들이 떠난 이유도 그가 대통령이 되기보다 자신의 책이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선거에 나섰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 번의 이혼과 그 과정도 약점으로 꼽았다. 깅리치는 의회에서 자신의 보좌관인 정부와의 결혼을 위해 암투병 중인 부인마저 차버린 과거가 있다. 그는 이를 의식해서인지 10월 1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 역사상 재임 중 윤리규정을 위반한 유일한 하원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는 1998년 자신이 세운 세금이 면제되는 재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한 것이 발각돼 30만 달러라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그가 1999년 초 정계를 은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깅리치가 세운 회사들이 거둔 엄청난 이득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은 깅리치가 세운 두 회사가 2001년부터 2010까지 10년 동안 5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에 있는 정치자금 및 로비자금 감시기구인 공직청렴센터(CPI)는 이와 별도로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깅리치의 정치조직인 ‘미래승리를 위한 미국의 해법’이라는 단체가 5000만 달러를 모금했다면서 깅리치는 2001년 이후 모두 1억500만 달러를 모았다고 전했다. 이 자금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깅리치는 대선 고지 점령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자금을 엄청나게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깅리치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당장 롬니라는 최대 라이벌을 넘어야 한다. 롬니는 높은 지명도와 탄탄한 재정·조직을 배경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내년 초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까지 돌풍을 이어갈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롬니를 넘는다 하더라도 오바마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경제위기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 한 재선은 불문가지라고 전망하고 있어 요행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살롱의 스티브 코나키 편집장은 깅리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셸 바크먼, 릭 페리, 허먼 케인 등과 같은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초반 돌풍의 주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깅리치의 부상은 돌풍으로 끝날 것이며, 그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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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달러 이상 가진 2970만명 전세계 부 총액 38.5% 차지

  전세계 곳곳에서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들끓고 있다.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 17일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시작한 이들은 자신들을 99%의 일반인이라 부르며 나머지 1% 부자를 규탄하고 있다. 월가 시위는 뉴욕의 월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도 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도대체 세계 1% 부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기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
 
 세계 1% 부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스위스의 금융기관인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이 10월 19일 발표한 ‘세계 부 보고서(Global Wealth Report)’를 보면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에 전 세계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2970만명으로 조사됐다. 세계 인구를 60억명이라고 가정하면 1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부자는 전체의 0.5% 안에 속한다. 이들이 가진 부의 총액은 89조 달러로, 세계 전체의 38.5%를 차지한다. 


 미국내 금융자산 절반 상위 1%가 소유

 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부자들 사이에도 등급이 있다. 주거하는 부동산을 제외하고 5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는 초슈퍼부자(UHNWIs)로, 3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자는 슈퍼부자((HNWIs)로 부른다. 이들 0.5% 부자들 가운데 초슈퍼부자에 속하는 사람은 8만4700명으로 조사됐다. 국가별로는 미국인이 42%인 3만54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 5400명(6.4%), 독일 4135명(4.9%), 스위스 3820명(4.5%), 일본 3400명(4%) 순으로 많았다. 신흥경제국인 브릭스(BRICs) 국가의 경우 러시아 1970명, 인도 1840명, 브라질 1520명이었다. 특히 1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는 2만9000명, 5억 달러 이상 자산가는 2700명으로 조사됐다. 향후 5년간 100만 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부자 숫자가 가장 빨리 증가할 국가로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이 꼽혔다. 현재 중국의 100만 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부자는 100만명에 이른다.

 캐나다 토론토 시민이 10월 15일 열린 ‘토론토 점령’ 시위 도중 ‘1%를 체포하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          토론토/블룸버그연합뉴스

 세계 부 보고서에서도 보듯 세계에서 초슈퍼부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1%는 어떤 사람들이며, 이들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미국의 1% 부자에 관한 각종 통계를 보면 상위 1%에 집중된 부와 이로 인한 경제 양극화의 진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미국의 상위 1%는 미국 전체 부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산출한 계산법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소유하고 있는 국가 전체의 부는 40%에 이른다. 사회학자 윌리엄 돔호프가 2007년 기준의 통계를 갖고 작성한 결과에서도 상위 1%는 전체의 42%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상위 1%는 국가 전체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24%를 가져간다. 1976년 미국의 상위 1%가 가져가는 국가수입은 9%뿐이었지만, 약 30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또 주식, 본드, 뮤추얼펀드 등 금융자산의 경우 양극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 내 전체 금융자산 중 50.9%는 상위 1%의 소유다.
 반면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상위 50% 이하가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0.5%에 불과하다. 개인별 부채의 경우도 상위 1%가 갖고 있는 비율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돔호프는 “2007년 현재 미국민의 개인별 부채 중 70%는 하위 10%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99%에게 기회다’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든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대가 10월 15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연방준비은행 밖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미국의 부자를 살펴보자. 미국에서 가장 부자가 많이 사는 동네는 어디일까. 미국의 부 연구회사인 웰스X의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월가 점령 시위가 일어나는 지역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웰스X에 따르면 미국에서 3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슈퍼부자가 가장 많은 10대 도시 가운데 1위는 단연 뉴욕으로, 7720명이나 살고 있다. 이어 로스앤젤레스 4350명, 샌프란시스코 4230명, 시카고는 2550명, 워싱턴 2300명, 휴스턴 2250명, 댈러스 1855명, 애틀랜타 960명, 보스턴 890명, 시애틀 885명 순이다. 같은 슈퍼부자지만 이들에게도 부익부빈익빈이 존재한다. 또 금융부문이 부자 숫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욕에 슈퍼부자가 가장 많이 사는 것은 뉴욕이 은행가와 펀드매니저, 개인투자자 등 금융인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웰스X의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시대에 따라 부를 위한 특별한 기술들이 있다”면서 “지금은 금융서비스의 시대로 금융시장 분석가이거나 수학을 잘하거나 도박가 기질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부자가 가장 많은 미국에서 땅부자는 누구일까. 미국의 땅부자 순위를 매기는 ‘2011 랜드리포트 100’에 따르면 디스커버리채널 등을 거느린 케이블 방송의 선구자이자 미국 리버티미디어그룹의 존 멀론 회장(70)인 것으로 나타났다. 멀론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 내 부동산 규모는 220만 에이커(약 8903㎢)에 달한다. 이는 남한 면적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미국 제1의 땅부자였던 CNN방송 창립자이자 AOL타임터너의 테드 터너 부회장(73)도 200만 에이커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있지만 멀론 회장이 메인주와 뉴햄프셔주에서 100만 에이커의 땅을 구입하면서 타이틀을 내줬다. 


부정적인 경제 전망이 가장 두려워

 그렇다면 미국의 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다. 미국의 피닉스마케팅인터내셔널이 100만 달러 이상 자산가를 대상으로 지난 9월 향후 3개월 동안 미국 경제에 관한 전망을 물은 결과 62%가 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았던 73%를 기록한 2009년 2월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2010년 4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부자들은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부자의 절반 이상은 현재 하고 있는 투자를 변경할 계획이 없으며, 8%는 투자를 줄이려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닉스마케팅의 데이비드 톰슨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부자들 가운데 주요 자산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공황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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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일 27세의 나이에 쿠데타에 성공해 42년간 철권통치를 해오다 국민들에 의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69)만큼 다양하면서도 상반된 평가를 받는 현대 지도자도 드물다. 카다피는 야누스의 이미지를 지닌 독특한 지도자로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는 제3세계에서 반미·반식민주의의 상징이었다. 카다피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대내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와 이슬람적 요소를 결합한 ‘인민권력’이라는 독특한 체제 실험을 통해 다양한 개혁정책을 펼치고, 대외적으로는 반식민주의·반서방 노선을 걸으면서 제3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반면 서방세계로부터는 테러 후원자이자 잔인한 독재자로 지탄받았다.
 카다피의 트레이드 마크는 장황한 연설과 여성에 대한 편력, 독특한 복장과 베두인 텐트로 대표되는 기행 등이다. 이 같은 그의 특징은 다분히 자신의 성격과 경험에 의한 피해의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소품이 됐다.

기행과 독특한 복장, 부정적 이미지 키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4월 10일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내전 종식에 대한 논의를 마친 뒤 거주지인 바브 알 아지지야 밖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트리폴리/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출신의 망명작가이자 보수 논객인 아미르 타헤리(69)는 1970년 9월 이집트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의 장례식에서 직접 본 카다피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했다. 2009년 더 타임스에 쓴 글을 가디언이 8월 23일 소개한 것이다. “카이로에 있는 대통령궁에서 나는 리비아 장교들과 웅크리고 있는 카다피를 보았다. 그들은 TV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가슴을 치거나 억제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카메라가 멈추자 눈물은 사라졌다. 대령(카다피)과 그의 수행단은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우리와 악수를 나눴다.” 당시 카다피는 28살로, 쿠데타에 성공한 지 불과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카다피는 나세르의 범아랍주의와 반식민주의 노선을 추종했으며, 스스로 그의 분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세르 장례식에서 보인 그의 행동은 전형적인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다피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카다피는 자신을 프랑스 절대왕정의 대표적인 군주인 루이 14세의 찬미자로 소개하고, 2005년 11월 이슬람 이민자들이 일으킨 파리 폭동에 대한 프랑스의 잘못된 대응을 꼬집었다. 카다피는 “그들(프랑스)은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소처럼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우리를 외곽에 살도록 내버려뒀으며 우리가 권리를 요구하자 경찰이 때렸다”고 말한 것으로 가디언은 전했다.

 2009년 유엔총회 연설은 그의 기행의 종결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96분간의 연설을 통해 뉴욕까지 오면서 겪은 비행시차에 대한 불만과 같은 사사로운 일로부터 당시 만연하던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은 물론 유엔본부를 리비아로 옮겨야 한다는 등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단연 압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카다피는 안보리를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헌장 사본을 찢어버렸다.

전통 복장 차림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009년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에서 연설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카다피의 살인적이고 소름 끼치게 하고 오만한 측면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카다피는 2003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 당시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미국의 팬암기 폭파사건으로 270명이 죽은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카다피는 처음엔 과거 일은 묻어야 할 때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집요한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그는 테이블을 치면서 리비아도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적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길 희망한다. 그 합의는 리비아와 미국이 동시에 보상기금 마련에 기여하는 것”이라면서, 그 이유로 1986년 미국의 카다피 근거지에 대한 공습으로 숨진 리비아인에 대한 보상을 들었다. 당시 공습으로 카다피의 어린 딸을 비롯해 100여명이 숨졌다. 카다피는 “딸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으로 얼마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미국인 희생자가 100만 달러를 받는다면 딸은 수억 달러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독자위성통신체제 구축 

 하지만 카다피의 이 같은 모습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카메룬의 언론인 장 폴 푸갈라가 8월 21일 디시던트보이스에 기고한 글 ‘왜 서방은 카다피의 몰락을 원하는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푸갈라의 글은 제3세계가 카다피를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한다.
 우선 카다피가 추진한 독자적 위성 커뮤니케이션 구축작업이다. 아프리카를 서방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카다피가 추진한 대표 사례다. 카디피는 1992년 아프리카 45개 국가와 연합해 RASCOM이라는 독자적인 위성통신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해 2007년 12월 26일 완성했다. 구축 비용은 약 4억 달러가 들었다. 리비아가 3억 달러를 충당하고, 아프리카개발은행이 5000만 달러를, 서아프리카개발은행이 2700만 달러를 각각 투입했다. 그 결과 매년 5억 달러에 달하는 유럽의 정보통신위성 인텔샛 사용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

만델라, 인종주의자 백인정권 항거 투장 지원 보답 방문

 또 하나는 유엔의 리비아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를 거부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다. 남아공의 인종주의자 백인정권에 대한 투쟁 때문에 27년 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난 만델라는 유엔의 여행제한 조치를 무시하고 1997년 10월 23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로 날아갔다. 카다피가 자신의 투쟁을 적극 지원해준 보답이었다. 당시는 유엔이 내린 리비아에 대한 여행제한 조치가 적용되던 때로 5년 동안 아무도 직접 리비아로 날아갈 수 없었다. 대부분 튀니지의 제르바까지 항공편으로 온 뒤 8시간이나 자동차를 이용해 트리폴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은 몰타에서 배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환영받지 못하는 여행이라고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리비아행을 강행했다. 어느 누구도 다른 나라에 무엇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어제까지 우리 적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뻔뻔스럽게도 나의 형제 카다피를 방문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과거의 우리 친구를 잊고 배은망덕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서방국가에겐 보호해야 할 형제였지만 만델라는 이 때문에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혔다. 미 의회가 만델라를 테러리스트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2008년 7월 2일이었다. 푸갈라는 미국이 테러리스트 명단이 멍청한 짓이라고 깨달아서가 아니라 만델라의 90번째 생일(7월18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군복 차림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1999년 9월 7일 트리폴리에서 열린 군사퍼레이드 도중 군인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트리폴리/로이터연합뉴스
 

 많은 혁명가들이 독재자로 전락하듯 카다피도 그렇게 변했으며, 독재자들과 비슷한 말로를 걷고 있다. 결사항전을 주장하고 있는 카다피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같은 최후를 맞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카다피 42년 통치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점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북아프리카 전문가인 사드 제바르는 카다피의 42년 통치를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8월 22일 AP통신에 “카다피는 이상국가를 건설하기를 갈망했다”면서 “그는 보통국가의 요소조차 하나도 구현하지 못한 채 끝났다. 그가 주창한 ‘인민권력’ 개념은 혁명가를 부의 축재자로 전락하게 만든, 가장 쓸데없는 시스템으로 판명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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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62)의 성추문 사건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스트로스 칸 총재의 성폭행 사건이 갈수록 의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5월14일 사건 발생 직후 스트로스 칸이 호텔 여직원(32)을 성폭행한 증거가 명백히 드러남에 따라 유죄 선고 가능성이 높았지만, 7월로 들어서면서 대반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측이 스트로스 칸에 대한 공소를 취하할 것이라는 기대는 검찰의 반발로 사그라지고, 그가 프랑스에서 정치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프랑스에서 또 다른 성추문과 관련한 고소가 제기되면서 곧바로 묻혔다. 남녀 치정 드라마처럼 얽히고설킨 스트로스 칸 성추문 사건이란 대반전 드라마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7월 6일 부인 앤 싱클레어와 외출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를 나서며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스트로스 칸 성추문 사건이 7월 대반전을 맞은 단초는 검찰 측이 밝힌 피해자의 거짓 진술이다. 피해자를 조사해온 뉴욕 맨해튼 검찰은 지난 6월 말 피해자 측 진술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사건을 사전에 공모했음을 보여주는 남자친구와의 전화 통화 내용, 마약 거래에 연루된 혐의, 거짓 내용을 기술한 망명 신청서 등 피해자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는 결격사유가 드러난 것이다.
 검찰 측은 지난 6월 30일 스트로스 칸 변호인단을 만나 이 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다음날인 7월 1일 스트로스 칸에 대한 보석 완화를 위한 재판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으며,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스트로스 칸에게 취해진 가택연금 조치를 해제했다. 스트로스 칸은 이 조치로 미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미국 언론들은 법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실상 검찰이 공소 유지에 실패해 조만간 공소 취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은 물질적 증거와는 별개다. 스트로스 칸이 성폭행했다는 증거는 드러난 상태다. 하지만 배심제인 미국의 사법체계에서는 피해자의 진술과 성장 배경 등이 무·유죄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검찰 측이 아무리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더라도 배심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죄 평결이 난다. 최근 두 살난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파티맘’ 케이시 앤서니(25)에 대한 무죄 평결이나 과거 미국 프로풋볼(NFL) 스타 OJ 심슨(64)의 살인사건의 경우가 그러했다.
 스트로스 칸 사건은 이때부터 주객이 전도됐다. 원고(호텔 여직원)와 피고(스트로스 칸)의 처지가 바뀐 것이다. 실제로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피해자의 ‘신상캐기’에 들어갔다. 뉴욕포스트는 지난 7월 2~4일에 걸쳐 피해자가 호텔에서 남자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했다면서 그를 ‘매춘부’라고 언급하는 등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냈다. 피해자 변호인 측은 이 신문과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반면 재판부의 가택연금 해제 조치로 자유를 되찾은 스트로스 칸은 뉴욕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신뢰성 논란은 검찰 측과 피해자 변호인 간 신뢰 싸움으로 번졌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피해자 측 변호사인 케네스 톰슨은 지난 6일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사이러스 밴스 뉴욕 맨해튼 지방검사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건에서 손을 떼고 특별검사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톰슨 변호사는 그 근거로 4가지를 들었다. 우선 밴스 검사의 보조검사가 지난 6월 30일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수감 중인 남자친구에게 한 대화 내용(“걱정 마. 스트로스 칸은 돈이 많아.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이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그대로 난 점을 들어 검사가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 고위 검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창녀’라고 주장한 뉴욕포스트의 보도 내용을 부인하길 거부했다면서 “이는 당신 사무실의 검사는 피해자가 창녀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톰슨은 이어 검찰 관계자가 스트로스 칸 사건 담당 변호사와 배우자 관계인 점을 들어 잠재적인 이해 충돌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피해자를 조사하는 동안 고함을 지르고 존중하지 않았던 검사가 여전히 사건을 맡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검찰 측은 이 같은 피해자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반전 드라마는 프랑스 정가는 물론 뉴욕 검찰,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등에 영향을 미쳤다. 스트로스 칸이 소속된 프랑스 사회당은 내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인 스트로스 칸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며 환영했다. 13일로 예정된 대선 후보 등록 시한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공연하게 나왔다. 사회당의 브누아 아농 대변인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수백만 프랑스 국민이 알고 있는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을 조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 이후 스트로스 칸이 후보 등록을 원하면 일정을 빌미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중에 혐의가 벗겨지면 등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가까이는 스트로스 칸의 프랑스 정계 복귀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사법체제와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과 울분도 폭발했다. 스트로스 칸의 성추문은 프랑스인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한때 자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인물을 타블로이드 신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당 출신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미국의 사법체계를 비판하며 “스트로스 칸이 늑대떼에 던져졌다”고 말했으며, 로베르 바텡데르 전 법무장관은 스트로스 칸에 대한 미국의 처우를 “언론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스트로스 칸에 대한 미국의 처우를 ‘포르노그래피’에 비유했다. 뉴욕 맨해튼 검찰도 스트로스 칸 사건의 피해자다. 미국 내에서는 공소 유지를 해야 할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7월 5일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대해 성추행 혐의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프랑스 작가 트리스탄 바농이 파리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파리/AP연합뉴스

 하지만 스트로스 칸의 부활은 잠깐이었다. 2003년 스트로스 칸을 인터뷰하려다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해온 여성작가 트리스탄 바농(31)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를 벗어난다 해도 프랑스에서 또 다른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바농의 고소가 스트로스 칸 성추문의 ‘시즌 2’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트로스 칸 측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기된 성폭행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명예회복은 물론 정계 복귀를 노리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스트로스 칸의 사생활과 여성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는 분석이 많다. 파리 정치학연구소의 파스칼 페리니우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스트로스 칸이 모든 혐의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의 행실에 대한 강한 의혹이 이어진다면 프랑스 정계 복귀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6일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5가지를 꼽았다. 프랑스 여성계와 망명 신청자, 미국 언론,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 그리고 스트로스 칸이다. 포린폴리시의 지적처럼 어쩌면 이번 사건은 승자가 한 명도 없는,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게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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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55)은 서방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국가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곧바로 대서특필된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가시돋친 아마디네자드의 발언은 서방 언론들이 다루는 단골 메뉴다.
 이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 있다. 정치지도자인 아마디네자드와 종교지도자이자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72) 간 권력투쟁이나 갈등이다. 음모론적 시각을 가지고 이란을 지켜보는 서방 언론에 이보다 더 좋은 기삿거리는 없을 정도지만, 이란의 복잡한 내부 권력투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4월 내부 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서방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오른쪽)가 6월 4일 테헤란 외곽에 있는 이란 혁명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무덤에서 열린 22주기 행사 도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테헤란/AFP연합뉴스

 아마디네자드와 하메네이 간 불화는 막강한 정보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의 경질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모슬레히 장관은 지난 4월 17일 아마디네자드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차관을 경질했다가 오히려 사임 압력에 직면해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란 IRNA통신은 모슬레히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캐나다 최대 온라인 뉴스사이트인 더스타닷컴(thestar.com)은 아마디네자드가 모슬레히를 해임한 이유에 대해 하메네이가 아마디네자드의 친척이자 심복인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에 비서실장을 사찰하도록 명령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모슬레히 장관을 곧바로 원직에 복직시켰다. AP통신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이를 두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이슬람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를 양축으로 하는 이란 보수파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했다. 주요 정책 결정의 최종 승인권자인 하메네이가 그동안 지지를 보내온 아마디네자드에게 제동을 건 모습으로 비춰져서다.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외무·정보·국방·내무장관 등의 임명을 승인하는 전통이 있다. 하메네이는 지난해 12월 아마디네자드가 마누체르 모타키 외무장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했을 때는 반대하지 않았다.
 아마디네자드는 곧바로 두 차례의 내각회의에 불참하는 등 11일 동안 업무를 거부하는 식으로 하메네이의 조처에 무언의 불만을 보이며 항의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지난 5월 1일 주례 내각회의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관영 IRNA통신은 아마디네자드가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마디네자드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 뒤인 지난 5월 8일 8개 정부 부처를 4개로 통폐합하는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보수파 성직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란의 최고재판소인 헌법수호위원회는 5월 11일 아마디네자드의 정부 통폐합 조치를 위헌으로 판정했다. AP통신은 당시 위원회 위원장인 아야톨라 아마드 자나티가 친 아마디네자드 인사로 분류돼 아마디네자드의 또다른 정치적 패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의회에서도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탄핵 운운하면서 그를 압박했다. 결국 아마디네자드는 지난 2일 자신이 겸직하고 있던 석유장관직에서도 물러났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침묵을 지켜온 아마디네자드는 지난 6월 7일 처음으로 보수파 성직자들과의 갈등을 시인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는 이날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가 그들로부터 ‘180도 상황’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사실상 정반대에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들은 보수 성직자들이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는 보수 성직자를 비난하면서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우리의 입장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며, 침묵의 단합을 고무하는 것”이라면서 권력투쟁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을 거부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란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22주기 하루 전인 6월 3일 테헤란 외곽에 있는 그의 묘소에서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테헤란/AP연합뉴스 

 아마디네자드가 보수 성직자들과의 갈등설을 시인한 것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일탈’ 또는 ‘간첩’이라고 계속 비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에 따르면 혁명수비대 부책임자인 호자톨레슬람 모즈타바 졸누르는 바로 전날인 지난 6일 “‘일탈의 조류’가 이슬람 기관의 근본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나는 이 같은 움직임은 시아파 이슬람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일탈의 조류’라는 말은 아마디네자드 반대파들이 만든 것으로, 자신들이 보기에 너무 자유롭고 민족주의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아 집권 보수파와 공존할 수 없는 이념적인 움직임을 가리킨다. 보수 성직자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아마디네자드의 비서실장인 마샤이에가 선도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하메네이는 지난 4일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22주기를 맞아 이란 정권 내부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존중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위기상황을 끝내줄 것을 보수파들에게 요청했다. 하메네이는 이날 “만약 누가 이슬람 체제와 이슬람을 충실히 신봉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형제들을 모욕한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이란 전문가들 분석도 서방 언론들의 보도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번 갈등의 배경엔 단순히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정치·경제·이념·종교적 현안이 걸려 있다고 보고 있다. 아마디네자드와 그의 지지자들이 집권 성직자 세력에 의한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근동정책연구소의 메흐디 칼라지는 더스타닷컴에 “아마디네자드는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범했던 같은 실수, 즉 자기들이 성직자를 자신들의 어젠다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서 “아마디네자드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영국 더램대학의 아누쉬 에테샤미 국제관계학 교수는 “아마디네자드는 성직자들을 이자 생활자로 보고 있다”면서 “이는 이슬람 국가를 향한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미국 시라큐스대학의 중동연구소 메르자드 보루제르디 소장은 “성직자들은 아미디네자드의 행위를 폭동으로 여기고 있다”면서 “하지만 잠깐 동안의 주목을 갈망하고 있는 아마디네자드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메네이 입장에서도 아마디네자드를 제거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인데, 이는 그가 너무나 많은 정치적 자산을 아마디네자드를 지지하는 데 썼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이란 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포탄을 가지고 있고, 신도 가장 큰 부대를 가진 자의 편”이라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는 2년 전  6월 12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 끝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당시 부정선거 논란은 개혁파의 ‘그린혁명’으로까지 번지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아마디네자드는 하메네이가 그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란에서 파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Posted by emu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