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어느 날,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암흑가 두목들이 회합했다. 미 최대 범죄조직으로 불리는 MS-13 소속이었다. 흔히 마라 살바트루차로 불리는 이 조직은 미 당국의 감시대상이었다. 이들은 중미 엘살바도르에 수감된 조직 지도자로부터 특명을 받았다. 미국 내 수익을 늘리기 위해 조직을 확대하라는 지시였다. 동시에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차림 등에 유의하라는 지시도 하달됐다. 이 같은 내용은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포착됐다. FBI는 MS-13이 미국 내 세력을 부활하려는 시도로 봤다. 공교롭게도 이후 동부 일부 주에서 이들이 연루된 흉악범죄가 늘어났다.
MS-13은 1980년대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엘살바도르인들이 만들었다. 당초 엘살바도르인 보호가 목적이었다. LA에서 시작된 조직은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미 정부 추정 조직원은 8000~1만명. 모토는 섬뜩하다. ‘죽여라, 강간하라, 장악하라.' 이들은 총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시신을 토막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2012년 이 조직을 국제범죄조직 명단에 올렸고, FBI는 2년 뒤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범죄TF를 출범시켰다. MS-13의 부활 움직임은 이들을 뿌리 뽑을 호기였다. 인종차별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박멸해야 할 악당이나 짐승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마침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23일 MS-13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반이민 정책을 위해 이 조직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엘살바도르에서 이슬람국가(IS)에 비유될 정도로 악명을 떨친 건 맞지만 미국에서의 활동을 보면 여타 조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동네깡패로 취급할 정도다. MS-13이 극악무도한 조직이 된 것은 송환정책 탓이라는 관측이 많다. 1980년대 후반 LA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교도소가 부족할 지경이 되자 클린턴 행정부는 송환정책을 펼쳤다. 문제는 이들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엘살바도르에 가봤자 살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엘살바도르에는 흉포한 범죄조직이 생겨났고, 이들을 피해 미국으로 온 자는 살기 위해 조직원이 되는 악순환이 생겼다는 것이다.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범죄와의 전쟁’도 정치적 이유로 추진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조찬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