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67]‘머리 둘 달린 인간’을 제거하는 방법(2016.11.29ㅣ주간경향 1203호)
emugi
2016. 11. 24. 10:28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는 <뉴욕타임스>의 풍자 만평을 봤을 때 ‘머리 둘 달린 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1959년, 옛 소련 의사 블라디미르 데미호프는 작은 개 머리 부분을 잘라 큰 개 어깨에 접붙여 ‘괴물’을 만들었다. 작은 개는 큰 개의 심장에 의존해 살지만 괴물은 오래 살지 못했다. 나흘 만에 죽은 괴물은 박제가 돼 독일 박물관에 기증됐다. 데미호프는 장기이식 수술의 선구자였다. 머리 둘 달린 개 실험은 그 일환이었을 터이다. 실험 사진은 당시 <라이프>지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실험 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데미호프는 인류의 장기이식 수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대표적인 ‘배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비판 받는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에서 이를 소개한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데미호프의 실험이 결국 ‘머리 둘 달린 인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머리 둘 달린 인간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뉴욕타임스> 만평과 머리 둘 달린 개는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현실과 맞물리면서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순실과 박 대통령이 머리 둘 달린 인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상상의 끝은 이렇다. 두 사람은 안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최순실이 박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최순실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도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작은 개가 죽으면 큰 개도 죽는 법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상식을 초월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으로 여겼다. ‘배반’의 캐릭터 박 대통령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절망에 빠진 국민은 딜레마 속에 갇혔다.
그 딜레마는 괴물과 맞닥뜨렸을 때 대처법이나 제거법을 잘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예로부터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반성하지 않는 사람을 괴물이라 불렀다. 그만큼 괴물이 현실에 많이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괴물의 전형이다. 그의 주변에도 괴물투성이다. 그런데도 괴물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다. 이보다 지독한 역설과 딜레마가 있을까. 잘 알려진 영화와 소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선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괴물>을 보자. 한강에 나타난 괴물에게 딸을 빼앗겼지만 괴물을 제거하는 일은 오롯이 주인공 가족의 몫이다. 말이 안 되는 설정이다. 괴물의 탄생 배경에는 가족을 뛰어넘는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어떤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창조자가 자신으로부터 달아났기 때문이다.봉 감독과 메리 셸리는 괴물 제거 방법을 직설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게다. 우리 스스로 찾으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영화와 소설을 뒤집어서 보면 그 실마리가 보인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의 싸움은 주인공 가족만이 떠맡아야 할 일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봉 감독은 괴물 탄생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날 수 있음을 영화 말미에 여운처럼 남겨놨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싫든 좋든 자신이 만든 괴물로부터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일지도 모르는 대통령과 맞서는 국민의 자세도 그러해야 한다. 혁명의 시작은 시민이 하고 마무리는 정치가 하는 게 순리라 해도 정치인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된다. 촛불 항쟁이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것만이 이 지긋지긋하고 비상식적인 상황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다.<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611221822351#csidxa0bf14813cc9066b93662cf265c7f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