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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15]미국 경찰, 군사작전하듯 ‘국민과 전쟁’(2015.05.19ㅣ주간경향 1126호)

지난 4월 말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에 구금 중이던 흑인 청년의 의문사에 항의해 일어난 폭동에 맞선 당국의 대응은 전장에서 군사작전을 하는 군대를 방불케 했다. 볼티모어 시와 경찰당국은 감시용 무인비행기(드론)에서부터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찰 특수기동대(SWAT), 산탄총과 연막탄, 최루탄 발사기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병력과 장비를 배치했다. 적의 무선 통신장비를 도·감청하는 군 장비인 ‘헤일스톰’과 ‘스팅레이’도 동원했다. 헤일스톰은 스팅레이보다 진화된 최신 감청장비로, 1마일 안에서 이뤄지는 모바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볼티모어 경찰국이 연방수사국(FBI)과 손잡고 헤일스톰을 활용해 지난 8년간 시민의 휴대전화를 4300여건이나 도·감청한 사실이 지난달 초 AP통신의 보도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군사작전을 하는 듯한 경찰의 시위 대응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멀게는 2011년 가을 뉴욕 ‘월가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 때도 본 익숙한 장면이다. 인구 2만여명의 소도시 퍼거슨에서 10대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때 일어난 항의시위에 경찰은 보통 인질극이나 총격전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투입되는 중무장한 SWAT를 배치해 시위대를 자극했다. 시위대는 미 정부가 2001년 9·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처럼 자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위대에 경찰은 더 이상 시민의 보호자가 아니라 ‘점령군’이었을 뿐이다.

2014년 8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관의 10대 흑인 총격 살해사건으로 일어난 소요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파견된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국 소속 특수경찰이 경장갑차 위에서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 웹사이트 캡처


군대처럼 중무장한 경찰을 일컫는 ‘경찰의 군대화’에 바탕을 둔 시위 대응책은 볼티모어 폭동을 계기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론적으로는 전통적인 경찰의 치안 전략과 달리 ‘무질서’를 범죄의 시발점으로 보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무질서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깨어진 창문(Broken Window)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마약과의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활용되던 무기와 장비를 경찰에 배치한 것과 관련이 있다. 바로 국방부가 1997년에 도입한 ‘1033 프로그램’이다. 이후 국토안보부와 법무부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 정부가 도입한 것은 군 무기와 장비만이 아니었다. 시위자를 시민이 아닌 타도해야 하는 테러리스트나 적군으로 보는 인식도 함께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도 경찰의 시위 대응 수법들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날로 발전하는 경찰의 무장화 실태는 2011년 벌어진 월가 점령시위에 관한 책을 쓴 마이클 굴드-워토프스키(뉴욕대 사회학 박사과정)가 지난 5일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 ‘집으로 다가오는 전쟁’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최근 미국 경찰이 시위대를 대하는 상황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미국 시카고 사회주의자노동자 회원들이 과거 경찰의 고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회주의자노동자 웹사이트 캡처

경찰은 시민의 보호자 아닌 ‘점령군’
첫째, 시위자를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이후 사법·정보당국은 시위를 테러리즘과 결부시켜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8월 퍼거슨 사태 때의 국토안보부 정보분석국의 메모다. 메모에 따르면 “퍼거슨 폭력사태는 거의 진압됐지만 과격 이슬람주의자는 사람들을 지하드(성전)로 이끌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왔다”며 시위를 이슬람국가(IS)의 조직원 충원 활동과 연계했다.

둘째, 경찰을 ‘비살상 무기’로 무장하는 것이다. 국방부의 ‘1033 프로그램’에 따라 경찰당국에 제공된 군 무기와 장비는 46만종이 넘는다. 이 가운데 7만8000종은 2013년에 지원됐다. 국토안보부도 ‘국토안보 보조금 프로그램’에 따라 경찰에 군 장비를 지급했는데, 2014년에 지금된 보조금은 10억 달러가 넘는다. 법무부도 매년 수억 달러를 전국 경찰에 지원했다. 이 가운데 10%는 최루탄과 테이저건과 같은 비살상 무기를 구입하는 데 활용됐다. 경찰이 비상살 무기로 무장하자 이를 생산하는 기업의 매출액도 덩달아 늘어났다. 한 예로 테이저건을 생산하는 테이저인터내셔널은 향후 5년 안에 매출액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체 국토안보산업의 규모는 2020년까지 10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각각 전망되고 있다. 또 장비가 치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경찰이 쉽게 무기를 꺼내 시위대를 조준하게 만드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굴드-워토프스키는 지적했다.

셋째, ‘전파전’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소음이나 고약한 냄새를 유발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장비가 ‘대포음’으로 불리는 LRAD이다. 당초 군사용으로 개발됐지만 지난해 퍼거슨 시위 때 시위대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인간의 청력을 영구히 손상시킬 수 있는 157㏈까지 소음을 높이는 식이다. 스컹크로 불리는 냄새폭탄도 있다. 죽은 동물이나 인간의 대변을 활용해 만든 것으로, 고약한 냄새로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는 무기다. 이 또한 퍼거슨 사태 때 활용됐다.

넷째, 경찰 인력을 로봇이나 예방기술로 대체하는 것이다. 로봇 활용의 대표 사례는 시위대 감시와 페퍼 스프레이 살포를 위한 무인비행기 활용이다. 예방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DAS로 불리는 최첨단 범죄감시시스템이다. 2012년 뉴욕 경찰청이 빅데이터 기술로 범죄를 막겠다는 구상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 공동 개발했다. 개발 비용으로 4000만 달러가 들어갔다. DAS는 뉴욕시 경찰국이 관할하는 CCTV 3000개와 자동차 번호판 인식기 2600개, 911 신고 전화, 차량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종합 분석해 범죄 발생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용의자나 차량을 추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순분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 올라온 글 등을 통해 정보수집을 하는 공개정보수집(OSINT)을 활용해 시위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는 방식이다. 현재 시작 단계여서 앞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굴드-워토프스키는 “새로운 시위진압 시대의 첨단을 보고 있다”면서 “경찰의 시위진압 프로그램은 놀라운 속도와 정교한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카고 시의회, 고문 피해자에 배상금
볼티모어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적인 시위 대응 관행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낭보’가 날아들었다. 시카고 시의회가 지난 6일 과거 경찰의 악명 높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은 생존 피해자들에게 개인당 약 10만 달러를 지급하는 등 550만 달러에 이르는 배상안을 담은 법령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이다. 미 자치단체가 경찰의 고문 피해 생존자에게 배상을 한 사례는 처음이다. “시카고 모델은 미 모든 도시가 조직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경찰의 잔학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청사진”(시카고 활동가 조이 모굴), “시카고는 미국과 세계에 고문과 같은 악랄한 범죄에 대한 배상에는 만기시한이 없음을 보여줬다”(국제엠네스티 미국지부 스티븐 호킨스 사무총장)와 같은 찬사가 잇따랐다. 시카고 시 당국의 조치는 경찰의 폭압에 죽어간 많은 흑인들의 희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경찰의 가혹행위나 강경 시위 대응에 경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를 이끌어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람 이매뉴얼 시장이 시장에 당선된 지 꼭 1년이 지난 2012년 5월 시카고에서 일어난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반대 시위에서 한 대응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시위자 9명은 경찰에 체포된 뒤 경찰서가 아닌 블랙 사이트(창고)에 감금됐다. 이 가운데 3명은 24시간 동안 벤치에 묶이고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채 감금됐다가 테러 음모 및 장비 지원, 화염병 소지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화염병 소지 혐의는 경찰의 함정수사 결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반대시위보다 더 큰 반발을 샀다. 경찰의 시위 대응 정책의 진화와 별도로 시위자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와 인식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