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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17]빈라덴 죽음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2015.06.02ㅣ주간경향 1128호)

허시의 폭로로 드러난 새로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파키스탄 최고위 당국자들은 미국의 빈라덴 제거작전을 사전에 알고 협조했으며,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있다는 사실은 그의 연락책들에 대한 고문이 아닌 현상금을 노리고 제 발로 걸어온 제보자 덕분에 알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 시모어 허시(78)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허시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런던리뷰오브북스에 기고한 장문의 글에서 미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200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한 빈라덴 제거작전에 관한 백악관의 발표는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허시의 폭로는 미국 사회를 들쑤셔 놓았다. 미 당국은 허시의 보도가 판타지에 근거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많은 언론들은 익명의 소수 취재원의 말에 기댄 그의 보도는 신빙성이 없다면서 오히려 허시에게 칼을 겨눴다. 하지만 허시의 폭로로 그동안 빈라덴의 죽음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빈라덴 제거작전 성공 발표 당시에도 오락가락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국(NSA)은 급기야 빈라덴 제거작전 때 확보한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지난 20일 긴급 공개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의 국가안보팀이 2011년 5월 1일(현지시간) 백악관 모니터를 통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네이비실의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 실황을 지켜보고 있다. / 타임 웹사이트 캡처


미국의 기존 발표 완전히 뒤집어
1만356 단어로 이뤄진 기사 ‘오사마 빈라덴 살해’에서 허시는 노골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빈라덴의 죽음에 대해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확하게는 “백악관의 빈라덴 살해는 루이스 캐럴에 의해 쓰여졌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루이스 캐럴은 유머와 환상으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 동화작가다. 허시의 폭로로 드러난 새로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제거작전 당시 빈라덴은 병약한 상태였고, 파키스탄 당국에 의해 365일 가택연금 상태였다. 미 정보당국은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있다는 사실을 제 발로 걸어온 제보자를 통해 알았으며, 제보자는 빈라덴 목에 걸려 있는 현상금 2500만 달러의 상당 부분을 원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작전 전에 의사인 파키스탄 정보부(ISI) 요원을 통해 빈라덴의 DNA 증거를 미 측에 제공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제거작전 시간을 사전에 파키스탄 측에 알려줬고, 파키스탄 측은 아보타바드의 전력을 차단해 미군 헬리콥터 2대에 안전한 길을 열어주고 네이비실에는 지상 안내요원을 제공했다. 빈라덴 사살 때 총격전이 없었다. 네이비실은 빈라덴을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고, 당시 빈라덴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빈라덴 거주지에서는 어떠한 중요한 정보도 수집하지 못했다. 이 작전의 결과로 검은 돈이 ISI와 군에 다시 유입됐으며, 미국은 미군을 철수하는 동안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작전 관련 발표는 최소 일주일 뒤에 하기로 했다.”

허시의 폭로는 미국의 기존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파키스탄 몰래 작전을 벌였고, 빈라덴 거주지에 관한 정보는 몇 년에 걸쳐 빈라덴 연락책을 추적한 끝에 얻었다고 주장해 왔다. 또 빈라덴을 제거한 뒤 시신을 아라비아해에 있던 항모 칼 빈슨호에 옮겨 수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 당국의 발표는 사망한 빈라덴 시신 사진과 장례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백악관의 발표가 24시간 안에 두 차례나 바뀌었다는 점 때문에 발표 후에도 논란이 가시지 않았다.

허시가 주장하는 가장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파키스탄 군참모총장과 파키스탄 정보부(ISI) 부장이 미국의 빈라덴 제거작전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시는 오히려 파키스탄 측이 빈라덴을 아보타바드에 오랫동안 감금한 채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빈라덴은 파키스탄이 관리해야 할 중요한 ‘정보 자산’이었던 것이다. 허시의 보도로 CIA가 빈라덴의 연락책들을 고문해 그의 거주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현상금을 노린 제보 덕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오바마가 파키스탄과 최소 일주일 이후에 발표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당일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의 하나는 작전 도중 헬기 한 대가 담벼락에 추락해 폭발하고 불에 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감추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팩트다.

허시의 폭로 내용이 맞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왜 빈라덴의 죽음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여기에는 오바마의 재선을 감안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오바마는 작전에 신중했다. 허시에 따르면 오바마는 빈라덴 소재에 관한 정보를 작전 약 6개월 전인 2010년 10월에 들었지만 “빈라덴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다시 말을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재선 실패는 물론 정치적 역풍이 크기 때문이다. 1980년 4월 이란 미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지미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전례도 있다. 한편으로는 빈라덴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매우 높은 자산이라는 점을 활용할 속셈도 깔려 있다. 빈라덴이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를 제거했다고 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 발표 내용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 시모어 허시. / 허핑턴포스트 웹사이트 캡처


오바마 재선을 감안한 정치적 계산?
허시의 폭로는 한편으로 빈라덴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에 불을 댕겼다. 음모론의 요지는 미 정부의 발표와 달리 빈라덴은 9·11사태 3개월 뒤인 2001년 12월 신부전증 등 병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대표 인물이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폴 크레이그 로버츠다.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운영하는 정치경제연구소 웹사이트에 올린 ‘또 다른 빈라덴 거짓이야기’에서 그 근거로 빈라덴 부음기사가 서방과 아랍 매체를 통해 많이 공개됐다는 점, 아무도 신부전증으로 10년을 살 수 없다는 점, 빈라덴이 살해된 아보타바드 거주지에서 신장투석기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이집트 언론 알와프드의 2001년 12월 26일 보도, 2002년 1월 21일 CNN 보도, 2002년 10월 16일 이스라엘 정보기관 등은 빈라덴이 2001년 12월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허시는 폭로 이후 ‘음모론자’로 취급받는 등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인신공격을 받는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오바마에 대한 공격을 일삼아 온 폭스뉴스마저 좋은 먹잇감을 버리고 허시 공격에 가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그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함으로써 기사에 신빙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허시가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면 어떻게 될까. 오바마 행정부 들어 역대 행정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떠올린다면 진실을 밝히는 대가는 감옥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식통들이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미국이 빈라덴 제거작전을 실행할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자발적 제보자 이야기는 이미 뉴욕타임스 중동 특파원 칼로타 골이 밝혀온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당시 언론은 별 관심 없이 침묵했다. 국가 안보 관련 보도에 관한 한 미국 정부와 언론 간 공생관계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등으로 증명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발표에 의혹을 품고 그 실체를 파헤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허시는 폭로를 통해 미 정부의 일방적인 정보를 맹신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있는 언론들의 실태를 비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허시에 따르면 빈라덴 시신과 관련한 자료는 CIA가 관리하고 있다. 국방부가 2013년 모든 군 컴퓨터에 있는 제거작전 관련 정보를 삭제해 CIA에 넘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정보는 정보공개법(FOIA)으로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또 빈라덴 제거작전에 참가한 네이비실 대원 25명을 비롯한 미 특수요원들이 탄 헬리콥터가 2011년 8월 6일 아프간에서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다.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언론은 침묵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빈라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