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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56]‘가습기 살균제 참사 달력’을 만들며(2016.09.06ㅣ주간경향 1192호)

자료에는 피해자 성명과 생년월, 사망연월, 성별, 사용제품 등 5가지 정보가 들어 있었다. 비록 개인 정보보호를 위해 이름과 생일, 사망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망할 당시 나이를 파악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생후 1개월도 안 된 영아에서부터 산모로 짐작되는 여성들, 그리고 9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사에는 남녀노소 예외가 없었다. 처음 이 명단을 접하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직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어두운 바닷속에 갇혀 있는 세월호 희생자 9명이 겹쳐져서만은 아니다. 그 이름들은 나와 무관했지만 결코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 이웃이었다. 어쩌면 내 아이 대신 고통 속에 숨졌을지도 모른다.

<주간경향>은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인 중 사망자 875명의 자료를 분석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 달력’을 만들었다. 875명은 2011년 이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신청한 가습기 살균제 1~4차 피해자 4000여명 중 사망자 숫자(7월 말 기준)다. 첫 사망자는 1996년에 발생했다. 안타까운 점은 1세 미만 영아가 56명이며, 이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는 2011년 이전에 사망한 사실이었다. 2세 미만까지 확대하면 83명으로,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다. 2011년은 가습기 살균제가 첫 출시된 1994년 이후 피해자가 늘자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가능성을 제기한 해다. 만시지탄이지만 그 후 영유아와 산모 피해자가 급격히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좀 더 빨리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피해 신청인 가운데 사망자 비율을 단순히 계산하면 사망률은 약 20%나 된다. 피해 신청인 5명당 1명꼴이다. 하지만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는 113명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해 장례비나 치료비를 주는 1~2단계 사망자 숫자다. 정부는 피해 신청인을 조사해 ‘거의 확실’ ‘높음’ ‘낮음’ ‘거의 없음’ ‘판단 불가’ 5단계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 1~2단계 해당자를 공식 피해자로 인정해 보상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여론화하는 일에 앞장서 온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 결과(2010년) 전체 인구(4941만명) 중 894만~1087만명이 가습기 세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옥시 측이 호서대에 의뢰한 노출실험과 서울대 여론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중 29만~227만명이 잠재적 피해자로 추산된다. 이를 종합하면 4차까지 신청한 피해자는 잠재적 피해자의 약 0.2~1.5%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사를 할수록 피해자는 부지기수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간경향>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번 호부터 ‘엄마, 숨이 안 쉬어져’ 기획기사를 매주 3쪽씩 1년간 연재한다. 거기에는 수많은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분노의 목소리,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담길 것이다. 비록 소명으로 기록을 남기지만 희생자 가족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할 것임을 안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길은 정부의 사과와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뿐이다. 3~4단계 해당자도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할 것이다. 이 기획이 그 길을 찾는 데 미력이나마 보탰으면 좋겠다. 그러면 남은 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억울한 원혼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