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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시리아 사태는 ‘중동 시한폭탄’(2011 4/12 주간경향 920호)

ㆍ반정부 시위 전국적으로 확산 … 반미 정권 흔들리면 중동 역학관계도 변화

중동의 반미-반이스라엘의 중심국가인 시리아가 흔들리고 있다. 아랍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시리아에 착륙한 탓이다. 지난 3월18일 시리아 남부 요르단 국경 인근의 소도시 다라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46)은 강경일변도로 대응하면서 시리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리아 사태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혁명이 이집트, 바레인, 예멘 등을 거쳐 시리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만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중동 전문가 패트릭 실은 3월28일 미국 외교전문지 폴린폴리시에 기고한 글 ‘시리아 시한폭탄’에서 “중동 전체에 불안을 야기할 국가가 있다면 리비아가 아니라 바로 시리아”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은 리비아 사태보다 시리아 사태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충고했다. 실의 표현처럼 시리아는 중동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치러지고 있는 리비아처럼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3월30일 반정부 시위 이후 처음으로 수도 다마스쿠스의 의회에서 연설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다마스쿠스 |AFP연합뉴스


 무엇보다도 알 아샤드 대통령이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반정부 시위 발생 후 강경진압과 개혁조치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온 알 아사드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기대와 달리 강경진압 쪽을 선택했다. 반정부 시위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3월30일 의회연설에서 그는 반정부 시위가 “소수 공모자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사태의 책임을 외부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또 이날 예상됐던 비상조치법 해제 발표를 하지 않았다. 1963년 제정된 비상조치법은 시리아 국민의 입과 발을 묶는 재갈이자 족쇄로, 해제 발표는 사태 해결의 시금석으로 여겨져왔다.

강압진압으로 최악의 상황 우려

알 아사드의 이 같은 태도는 반정부 시위 이후 일련의 유화책을 보여온 것과 다른 양상이다. 그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자 비상조치법 해제를 약속하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정치범을 석방하고 공무원 임금을 20∼30% 인상하겠다는 유화책도 내놓았다. 의회 연설 전날엔 내각을 해산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개혁과 강경대응의 기로에 서있던 알 아사드가 강경 쪽으로 다시 돌아선 것에 대해 국제사회는 실망감을 나타냈다.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기대에 부족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국제앰네스티도 알 아사드가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알 아사드가 앞으로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의 길을 선택할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길을 선택할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집권 이후 알 아사드의 통치기제와 그의 인식을 감안하면 당분간 강경대응 쪽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사망으로 집권한 알 아사드의 통치기제는 반미-반이스라엘 등 ‘반서방 이데올로기’였다. 그는 이를 통해 시리아 내부의 불만을 잠재워왔다. 이 같은 그의 인식은 지난 1월말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에 시달릴 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한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알 아샤드는 당시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무바라크 정권이 인기가 없는 것은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그는 자신의 정권은 이념적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리아 국민들은) 봉기를 하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저항의 이데올로기는 시리아 대외정책의 근간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알 아사드를 집권 후 최대 위기로 빠뜨린 것은 대외정책이 아니라 국내문제였다. 바트당에 의한 일당독재, 언론과 결사에 대한 자유 억압, 청년층 실업 등 사회경제 문제들이 반정부 시위의 원인이었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가 3월25일 수도 다마스쿠스의 한 모스크에서 금요시위를 마친 뒤 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다마스쿠스/AP연합뉴스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지난 40년을 통치해온 알 알사드 가문의 운명보다 시리아 사태가 향후 중동평화 구도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이는 시리아가 중동의 역학관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시리아 사태가 낳을 파장이 리비아 사태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는 중동에서 이란과 함께 반미-반이스라엘 전선의 핵심 국가다. 이란의 가장 가까운 전략적 우방인데다 주변의 이라크나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시리아의 위기는 곧 ‘이란-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 축’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 축은 오랫동안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첨병으로 자리잡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헤즈볼라를 분쇄하고 시리아를 이란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이스라엘로서는 시리아 사태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시리아 정권이 붕괴한다면 레바논(헤즈볼라)과 팔레스타인(하마스)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은 상당 수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군사개입 놓고 고민에 빠져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중동평화에 있는 미국으로서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리비아처럼 군사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쪽으로는 알 아사드 정권의 민간인에 대한 폭력행사는 비난하면서도 알 아사드에게 정치개혁을 종용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시리아의 안정이 오히려 중동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이스라엘 평화회담 재개를 위해 2005년 라피크 하라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 이후 중단된 외교관계를 재개하는 등 많은 공을 들여왔다. 시리아 정권의 붕괴는 이란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겠지만 반대로 이란의 헤즈볼라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로 결국은 잠재적인 불안요소가 될 것이라는 게 미국의 인식인 것이다.

하지만 의회연설에서 드러난 알 아사드의 태도는 미국의 기대와 반대로 가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의 개혁 요구를 무시하고 강경진압으로 일관할 경우 대량학살은 물론 잠재하고 있는 시아-수니파간 종파갈등이 표면 위로 부상할 수 있다. 시리아는 수니파가 다수지만 권력은 소수 시아파에, 그것도 알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에 집중돼 있다. 시리아 내 종파 갈등이 현실화할 경우 이는 주변 국가로까지 번질 수 있다. 중동 전체가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결장으로 불타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시리아 사태가 거기까지 갈지는 전적으로 알 아사드의 손에 달려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