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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아침을 열며

아침을열며1/미국의 '그것 논쟁'과 들러리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국가와 기업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기업가 정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발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공했다. 오바마는 열흘 전인 지난 13일 버지니아주에서 유세를 했다. 그 자리에서 성공한 기업가와 그들의 성공 비결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국가와 국민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 연설 가운데 한 대목만 주목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두 문장으로 이뤄진 구절이다. “만약 당신이 기업을 운영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이룬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기업가는 물론 공화당은 발끈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특별한 개인의 놀라운 성과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전미자영업자연맹은 “엄청난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온 사람들에 대한 완전한 이해 부족”이라고 깎아내렸다. 공화당 대선 후보 미트 롬니 캠프도 거들었다. 안드레아 솔 대변인은 “우리 경제의 중추인 기업인들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는 그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름 붙인 미국의 ‘그것 논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논쟁에서 그것이 기업임은 불문가지다. 한데 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냐를 두고는 해석이 다르다.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창의력과 피나는 노력의 산물로 본다. 반면 오바마는 사회간접자본이 밑거름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성공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 풍토에서 그것 논쟁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 논쟁은 기본적으로 잘못됐다.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의 공세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 논쟁은 공화당과 롬니 캠프 측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이들은 오바마가 연설을 통해 은근히 부자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 오바마가 이를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연설 전반을 살펴보면 미국은 기업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만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논란이 된 문장 뒷구절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요점은 우리가 성공을 하는 것은 개인의 창의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협력하기 때문이다. … 미국 건국 이래 함께할 때 더 잘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우리가 중산층을 만들고, 금문교와 후버댐을 세우고, 달에 인간을 보낸 방식이다. 우리는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이유로 부침하며, 난 여전히 이 생각을 믿기 때문에 대통령에 출마했다. 혼자 할 수 없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l 출처:경향DB


 공화당과 롬니 측이 오바마 연설을 왜곡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번 논란을 ‘베인 캐피털 스캔들’에 대한 관심을 따돌리려는 위장 공격이라고 비판한 오바마 캠프 측의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베인 캐피털은 롬니가 만든 투자회사다. 롬니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999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그 이후 롬니가 계속 회사 CEO와 최대 주주로 등록돼 있고, 매년 수천만달러의 자본이득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세는 물론 국세청과 유권자를 속였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오바마 캠프의 공세로 시작된 스캔들은 롬니의 세금신고서 공개 요구로 이어지면서 가장 뜨거운 대선 현안으로 떠올랐다. 롬니가 버티기에 들어가자 그의 지지자마저 세금신고서를 공개하라고 나설 정도다. 베인 캐피털 스캔들은 롬니에 대한 오바마 캠프의 혹독한 검증이거나 후보 흠집내기일 수 있다. 또는 비리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그것 논쟁’이다. 롬니 측은 오바마가 미국을 만든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폄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상황을 역전시키고 싶은 것이다. 롬니 측의 공세는 백악관 입성을 위한 여론전의 한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와 롬니는 대선 고지를 향해 사활 건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근데 두 사람 모두 경제 문제로 발목이 잡힌 상태다. 오바마는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으로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7%대 실업률 악몽에 시달리고 있고, 롬니는 베인 캐피털 스캔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어쩌면 두 후보 측의 부자증세·감세 및 소득 재분배 방안도 승리를 위해 유권자에게 던져진 미끼인지도 모른다.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타일러 코웬 교수는 <거대한 침체>에서 이를 제대로 짚었다. 그는 “감세와 재분배에 관한 정치적 논쟁에서 국민이 선택하는 것은 ‘과장된 세금 삭감’이냐 또는 ‘과장된 재분배’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유권자에게 거짓말과 과장으로 높은 실질소득 증가를 공약함으로써 미국 정치는 거짓과 과장이 넘치는 곳이 됐다”는 것이다. 코웬 교수 글 속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으로 바꿔보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란 속에서 국민들은 표를 노리는 정당 간 싸움의 들러리가 아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조찬제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