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제 국제부장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말리에 대한 군사개입을 개시하자 이슬람 무장세력은 그가 “지옥문을 열었다”고 했다. 올랑드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을 법하다. 하지만 말리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알제리 인질극은 그가 지옥문을 열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인질극은 사흘 만에 끝났지만 이는 불길한 예언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올랑드의 말리 작전은 겨우 문턱을 넘어섰을 뿐이다. 그 문 뒤엔 알제리 인질극보다 더 깊은 수렁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올랑드의 말리 개입은 결말을 알고도 헤어나지 못하는 숙명의 게임과 같다. 자신의 운명은 물론 국민의 꿈마저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법칙이다. 올랑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프리카는 다시 한번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올랑드는 왜 지옥문을 열었을까. 겉으로는 말리 내 자국민 보호와 말리의 급진 이슬람 국가화 우려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웠지만 뒤에는 정치적 잇속이 작용했을 터이다. 올랑드가 말리에 개입하기 직전 프랑스 상황은 어느 하나 좋은 게 없었다. 지지율도 바닥이었다. 공약으로 내건 동성결혼법안은 반대자 35만명을 거리로 내몰았다. 야심차게 추진한 ‘부자증세’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았다. 경제 성적표도 좋지 않다. 이럴 때 집권자들이 흔히 활용하는 카드가 내부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다. 이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설파한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이다. 올랑드는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프랑스가 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신식민주의’적 시각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리의 풍부한 자원을 노린 개입이라는 것이다. 개입 목적이 무엇이든 말리 작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올랑드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까. 대외정책이 국민 지지도를 올린 경우는 드물다. 멀리서 답을 찾을 것도 없다. 2011년 3월 리비아 군사개입 결과 재선에 실패한 그의 전임자 니콜라 사르코지가 그 답이다.
올랑드가 지옥문을 열었음에도 프랑스 국민들과 국제사회는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곧바로 상황은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말리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제2의 소말리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슬람 반군들이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비해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어린이들을 전사로 활용하는 전략을 전개함으로써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전략의 노림수는 뻔하다. 프랑스의 공격을 저지하되 안되면 민간인 사망에 따른 반프랑스 감정을 부추겨 성전의 명분을 강화해 프랑스를 진퇴양난 상황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쩌면 ‘아프리카의 서벌고양이’라는 작전명처럼 올랑드는 말리 개입을 ‘고양이 몰이’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벌고양이는 집고양이가 아니었다. 사막을 자기 집으로 여기며 자유롭게 사는 사막의 지배자였다.
올랑드가 몰랐던 것은 이뿐이 아니다. 말리 사태는 프랑스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말리 사태는 아랍의 봄이 낳은, 예고된 결과물이다. 잉태자는 리비아 사태였다. 사르코지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1년 리비아 사태에 개입함으로써 추가 군사개입이라는 악순환의 씨앗을 심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은 말리 내전의 당사자인 투아레그족 전사들을 용병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카다피가 무너지자 말리로 돌아가 북부 지역에서 독립투쟁을 벌여온 세력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들도 안사르딘이나 알카에다 마그레브지부 같은 급진 이슬람 세력에 밀렸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인류의 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것처럼 팀북투의 교회 유적들을 파괴했다. 간통자는 투석형으로 처단하고 강도들은 손이 잘려나갔다. 지난해 3월 쿠데타를 일으켜 말리를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 아마두 사노고 대위는 미국 본토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미국이 길러낸 또 한 명의 괴물이었다.
서방의 군사개입은 항상 역풍을 낳는다. 2001년 9·11테러는 조지 H W 부시가 전개한 ‘사막의 폭풍 작전’의 역풍이었다. 말리 군사개입으로 프랑스가 맞을 역풍은 무엇일까. 본국에서의 테러 가능성일 터이다. 말리 영토 통합이라는 개입의 목표도 프랑스가 자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개입 없이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말리 내전에 개입할까. 올랑드로서는 알제리 인질극을 계기로 내심 당사국들이 말리 내전에 개입해주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프랑스 국민 여론과 싸우는 올랑드의 사활을 건 대결은 이제 시작됐다. 올랑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치욕적인 철군, 아니면 말리 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둘 다 불리한 카드다. 올랑드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슬픔의 도시 속으로, 영원한 고통 속으로, 영원한 파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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