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에서 보낸 1년/미국 단상

연수기1-`Buying the war‘와 `Governments Lie`(2008.3.21)

*이글은 엘지상남언론재단의 제12기 해외연수펠로우에 선발돼 2007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1년 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연수하는 동안 재단 홈페이지에 실은 글임을 밝힙니다. 

해외 연수자가 누리는 특혜는 기자라는 신분을 잠시나마 잊고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 말입니다. 연수자라면 누구나 이같은 꿈을 현실에서 어느 정도 누릴 겁니다.


그러나 일상의 편린들은 꼭 그런 것만 같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지 몰라도 뉴스에서 멀어지고자 가급적 신문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멀리 하려해도 자꾸 손과 눈은 신문과 컴퓨터 자판 앞으로 가니 말입니다. TV를 보더라도 가급적 뉴스는 보지 않으려 해도 곧바로 ‘명색이 기자인데 뉴스를 안보면 되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워싱턴 시내를 걷다가 경찰차나 소방차,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태연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무슨 일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걸음은 떼지만 눈은 자꾸 지나온 발걸음 쪽을 되돌아보니 말입니다.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아 뉴스에서 잠시나마 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마음이 멀어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더욱이 이곳은 국제부 유경험자에겐 한국보다 더 많은 뉴스거리가 널려 있는 곳이니까요.


제목으로 단 ‘바잉 더 워’는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가 제작한 TV프로그램 이름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라크 전쟁과 언론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난 3월7일 밤 프로그램을 본 뒤 안 사실이지만 지난해 4월25일 첫 방영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더군요. 비록 ‘미국을 뒤흔든’ 프로그램이지만 저에겐 새삼 기자임과 언론의 막중한 역할을 준엄하게 곱씹게 된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PBS의 권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곳에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The 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교수들이나 주변의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권하는 방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TV를 볼 땐 가급적이면 제가 사는 버지니아주(페어팩스 카운티)와 워싱턴 일대를 커버하는 공영방송인 WETA(26번) 채널을 봅니다. 운전할 때는 PBS 공영라디오인 FM 88.5에 주파수를 고정시켜 놓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 하는 TV프로그램은 매일 오후 7시에 방송하는 ‘뉴스아워 위드 짐 레러(The NewsHour with Jim Lehrer)’와 매주 금요일 오후 9시에 하는 ’빌 모이어스 저널(Bill Moyers Journal), 그리고 대담 전문 프로그램인 `찰리 로즈(Charlie Rose)` 등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진행자의 원숙함에서 묻어나는 신뢰감과 더불어 깊이 있는 내용, 다양하면서도 참신한 주제, 무게감 있는 출연자 등으로 유익하고도 흥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까진 전체적으로 ‘2% 부족’하지만 대만족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3월 7일 밤이었습니다. 금요일 밤마다 하는 ‘빌 모이어스 저널’이 끝난 뒤 ‘바잉 더 워‘가 방영됐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프로그램 방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재방송이었죠. 재방의 계기는 WETA가 방송 제작 후원자 모집을 위한 프로모션 차원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WETA는 공영방송으로서 상업광고가 없습니다. 각종 재단의 후원금이나 시청자들의 쌈짓돈으로 제작됩니다. 이런 제작 환경이기에 중립적인 프로그램 공급이 가능한 가 봅니다.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 국민들에게 이라크 전쟁의 불가피성을 팔려는(홍보하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부지불식간에 야합한 언론, 특히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시 행정부는 국민들에게 전쟁을 팔려고 하는 데 언론은 적극적인 거간꾼(?) 역할을 수행한 행태를 고발한 것으로, 언론의 정부 감시 및 비판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완전 실패한 사례인 셈이죠.

이 프로그램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해 언론에 뿌린 자료를 얼마나 주류 언론들이 얼마나 검증이나 여과 없이 받아들였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이라크 침공 명분의 터무니없음을 취재한 비주류 언론이나 주류 언론 안에서도 진실을 찾고자 한 소수의 기자들의 기사가 얼마나 참담하게 외면당하는지도 보여줍니다. 제작진은 이같은 배경에 대해 언론사 간의 경쟁, 언론인들의 맹목적인 애국심, 주류 언론 중심의 여론 주도, 민주-공화당의 당파성 등을 꼽습니다.

실제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자 유력한 민주당 상원의원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2002년 9월27일 연설에서 이라크 전과 관련한 가능한 모든 의문을 제기하고 이라크전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 경고했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단 36단어로 보도하는 데 그치는 등 주류 언론은 외면으로 일관했습니다. 반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전인 2003년 3월5일 유엔 안보리에서 한 이라크가 상당한 화학무기를 저장해뒀다는 요지의 발언은 주요 방송의 톱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면서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이라크 침공 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없으며, 알카에다와의 연결고리도 찾지 못하는 등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 침공 명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저런 분위기상 쉽지 않았을 법도 합니다. 그렇지만 주류 언론들이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관급기사를 대서특필하는 데 급급해 결국 전쟁을 부추겼다는 비판과 비난은 물론 책임을 외면할 수 없겠지요. 반대로 오로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해온 소수 언론은 진정한 언론이라는 당당한 명예훈장을 받았을 테지요.

이 프로그램에는 당시 부시 행정부의 나팔수가 돼 전쟁을 국민들에게 판 저명한 언론인과 학자, 칼럼니스트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과거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할 뿐 대다수는 해명을 들으려는 제작진을 외면하면서 뻔뻔하게도(?)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있거나 신문에 기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조차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언론인임을 자처하는 현실, 이것이 제작진이 전하고자 하는 미국 주류 언론의 모습입니다.

프로그램을 보는 1시간 내내 저는 진실을 알리려고 고군분투 해온 비주류 언론 종사자들의 좌절감에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권의 나팔수(?)가 된 주류 언론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가슴을 쳤습니다. 프로그램을 본 뒤 제 머리 속에는 하나의 명제가 명쾌하게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지고지순한 역할이라는 일깨움이었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부언하겠습니다.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쓴 진보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저널리스트의 표상으로 I.F. 스톤(Isidor Feinstein Stone)을 꼽았습니다. 스톤은 탐사보도 위주의 언론활동을 한 일종의 비주류 언론인이었습니다. 진이 1994년에 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에도 언급돼 있듯 스톤은 저널리스트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단 두 단어만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Governments lie).”입니다. 스톤이 강조한 것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는 유리한 정보는 흘리고 불리한 정보(비리와 부정)는 감추려는 속성이 있으며, 반대로 언론은 이를 파헤치는 것이 임무라는 것이겠지요. 기자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펼쳤지만, 몇 년 전 진의 책을 읽으며 ‘언론의 역할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지난 2005년 9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에 있는 퓰리처상 위원회를 찾았을 때입니다. 퓰리처상은 미국 언론매체에 보도된 기사 가운데 10여개 분야에서 최고의 기사를 쓴 기자나 언론사에게 주는 상입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10여개 부문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부문이 무엇인지. 당시 위원장을 맡고 있던 노교수(이름은 잊었음)는 기자의 질문에 “퓰리처상의 경중을 가릴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정부의 역할을 감시하는 공공부문(Public Service)”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톤이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연수기 첫 머리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주제에도 어울리지 않거니와 주제 넘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굳이 소개하는 것은 두 가지 계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마침 미국의 이라크 침공 5주년(3월20일: 미국시간)도 앞두고 있어 시의적절할 것 같아서입니다. 9/11과 같은 국가적 대참극이 발생해 온 나라가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불타오를 때 건전한 비판자로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냉철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보이고 있는 한국 언론의 모습과 관련해 기자로서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같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다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