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이 민간인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군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다.
지난 4월 5일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개된 두 사건의 실체는 그동안 미군이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발생한 민간인 사망에 대해 얼마나 거짓말하고 은폐하려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미군이 민간인 사망을 감추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 내 반전 여론이 들끓어 작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은 민간인 사망을 전투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부수적 피해’라고 부르며 그 의미를 축소해 왔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임을 두 사건의 실체는 웅변한다.
아프간: 미군의 임신부와 경찰 총격 살해
2월 12일 새벽 아프간 동부 가르데즈 외곽의 카타바 마을. 미군과 아프간군이 한 집을 급습했다. 당시 집 안에서는 친척들이 모여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미군의 급습으로 임신부 2명과 10대 소녀 1명, 아프간 경찰과 그의 형제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미군은 당초 ‘테러리스트’를 죽였으며, 여성들은 습격 몇 시간 전에 이미 흉기로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군의 주장은 사건 발생 약 두 달 뒤인 4월 초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12일 미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임신부 2명과 10대 소녀 등이 묻힌 무덤. /더타임스
도대체 그날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진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한 기자의 끈질긴 취재 덕분에 드러났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제롬 스타키 기자는 이 사건의 조사 당국자와 생존자 인터뷰 등을 통해 미군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음을 폭로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조차 “여성들은 묶인 상태로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죽어 있었다”고 거짓 보고를 받았다. 미군이 사령관마저 속인 것이다.
조사단에 참여한 한 아프간 관리에 따르면 진실은 다음과 같다. 미군들은 사건 발생 뒤 현장 주위에 흩어져 있던 총탄을 수거했다. 그리고 부상자들의 상처를 알코올로 씻어 주고,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총알을 꺼냈다. 모두가 사건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날 새벽 4시부터 오전 11시까지 현장을 철저히 봉쇄했다. 현장에 도착한 아프간 조사단은 총알 7발만 찾았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이 관리는 매크리스털 사령관에게 “왜 미군은 현장에 있던 총탄들을 수거했는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따졌다.
신문은 지난달 미군의 공격을 받은 가족 대표인 하지 샤라부딘과의 인터뷰에서 군인들이 그의 친척들 몸에서 총알을 제거했다고 말했지만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4~5명이 숨진 복도에는 사건 이후 다시 페인트가 칠해지고, 벽에 난 총알 구멍들도 이미 메워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간 조사단이 사건 후 촬영한 비디오 자료에는 핏자국과 총알 구멍이 난 한 남자의 몸통과 피범벅이 된 벽 사진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조사단이 시신에서 총알이 제거됐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생존자들의 진술, 사후 조사에서 찍은 사진 자료, 현장에서 발견한 총알에 근거한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미군 공격 후 공동조사를 약속했지만 이슬람 풍습에 따라 사건 당일 시신들을 매장했기 때문에 이행하지 못했다.
더타임스는 아프간 당국의 조사와 생존자 진술 사이에는 상이한 점이 있다고 전했다. 생존자들은 숨진 아프간 경찰의 형 사란왈 자히르가 자신의 가족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소리치다가 총격을 받았으며, 그 뒤에 몸을 쭈그리고 있던 여자들도 같은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진술했다.
반면에 아프간 조사단은 자히르가 AK47 소총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생에 대한 보복을 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또 그 주위에 있던 여자들은 그의 시신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다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프간 조사단에 따르면 미군 소속의 남자가 시신들의 사진을 찍었으나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아프간 내무부는 조사보고서를 검찰총장에게 보내 민간인 살해 사건 연루자를 형사고발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길 기대하고 있다.
나토 연합군 대변인은 더타임스 보도 전날인 4월 4일 “작전의 결과에 대해 심히 후회하고 있으며,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이번 일로 가족들은 영원한 상실을 느낄 것”이라고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사망자 발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으며, 현재까지 조사 결과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사진기자 향한 헬기 기총소사 은폐
2007년 7월 12일 낮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의 거리에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서성대고 있다. 이들 위에서는 미군 아파치 헬기 두 대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군중 5~6명이 AK47 소총과 로켓추진수류탄(RPG) 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헬기 조종사는 상부에 발포명령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이윽고 상부 지시를 받은 헬기는 이들에게 기총소사한다. 일부는 쓰러지고, 피하는 이들에겐 다시 총탄이 쏟아진다. 공중을 선회하던 헬기는 부상자 한 명을 발견하고 다시 발포 준비를 한다. 이 순간 승합차 한 대가 그를 도우러 다가간다.
차 안에 어린이 두 명이 있었음에도 헬기는 이들에게 사격을 퍼붓는다. 아이 두 명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이날 헬기 공격으로 10여 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는 로이터통신 소속 이라크인 2명이 포함돼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4월 5일 공개한 미군 아파치 헬기 조종사들이 민간인들에게 기총소사하기 직전의 비디오 화면.
미군 아파치 헬기 조종사들이 부상자를 도와 주는 사람들과 승합차를 향해 기총소사하기 직전의 비디오 화면.
미국 정부와 기업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는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가 4월 5일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비디오 내용이다. 이 비디오는 약 3년 전 이라크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사건을 다룬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군 발표에 의존해 미군이 기습공격을 받고 반격해 무장세력 9명과 민간인 2명(로이터 고용인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비디오는 미군 발표가 거짓임을 보여 준다. 미군의 주장과 달리 몇 사람은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다. 미군과의 교전은 더더욱 없다. 가공할 만한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교신 내용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격으로 숨진 사람들을 보고 고소해 하고 환호한다. 승합차 안에 있는 아이들이 다친 데 대해서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른들을 나무란다. “전쟁터에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게 잘못이지.”
이 비디오는 공개 열흘 만에 유튜브 클릭 수만 600만회에 이를 정도로 파장이 크다. 미군의 행위가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인권변호사 클라이브 스태퍼드 스미스는 로이터통신에 숨진 사람들은 무장하지도 교전하지도 않았으며, 부상당한 사람과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두 가지 점이 전쟁범죄 요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사과는커녕 비디오를 제공한 내부고발자를 비난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4월 13일 “(영상을 유출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공개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추신>
미군은 아프간 사건에 대해 당초 죽은 남자는 탈레반이며 죽인 여성들은 이들에 의해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ww.tomdispatch.com/archive/175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