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국제 정치·경제의 중심 무대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아소 다로 일본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이 유럽으로 몰려든다. 4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G20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4월 3~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접경 독일 켈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 60주년 정상회의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예년보다 국제 정세 전반에 영향을 미칠 현안이 많기 때문이다.
국제 무대의 중심은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지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오바마 미 대통령이다. 세계 경제위기 해결과 새 아프가니스탄 전략 등 최대 현안의 중심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첫 국제 무대에 데뷔하는 오바마는 3월 31일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그의 일정은 G20 정상회의 및 나토 정상회의 참석,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체코(4월 5일)와 터키 방문(4월 6~7일)으로 이어진다. <로이터통신>이 3월 24일 취임 후 두 번째 TV 연설을 한 오바마를 ‘최고 판매 책임자(salesman-in-chief)’에 비유했듯이, 유럽 순방 기간 오바마의 역할은 각국 정상을 대상으로 ‘미국의 정책을 파는 일’이 될 전망이다. G20 정상회의에서는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협조를 당부해야 하며, 나토 정상회담에서는 아프간 전략 수행과 러시아와 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터키 방문도 아프간 전략 수행을 위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점에서 이번 유럽 순방은 세계 지도자로서 오바마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리> 인터넷판은 3월 24일 이번 유럽 순방의 최대 관심거리는 오바마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느냐 여부라고 전했다. 오바마는 당시 20만 명이 몰린 베를린 연설에서 “유럽은 미국의 최고 동반자”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과 유럽 사이에 이견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국제 시민의식이라는 부담을 계속 공유해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의 동반자 관계 회복을 강조했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유럽과 불편한 관계를 의식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레기나드 데일은 오바마의 첫 유럽 순방에 대해 “그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세계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보여줄 첫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부시에 비해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점은 오바마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런던 G20 정상회의다. 금융위기가 한창 때인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첫 번째 G20 정상회의에 이은 두 번째 회의다. 1차 정상회의가 급격한 세계 금융시장 붕괴에 따라 위기의 성격과 향후 대응을 논의한 자리였다면 4개월여 만에 다시 열리는 2차 회의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자리다. 반 보호무역주의와 금융시장 규제 강화 등이 핵심 의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동반 침체에 빠지면서 나라마다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일수록 무역이 줄어들어 결국 세계경제 회복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모든 나라가 반 보호무역주의에 목청을 돋우고 있지만 얼마나 실천 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계경제 위기의 주범인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방안 마련도 핵심 현안이다. EU의 경우 거부들의 탈세를 막고 책임성과 투명성 등 금융 원칙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세 피난처 블랙 리스트를 만들고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신흥경제국의 역할 강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역할 변화 등도 논의될 전망이다.
하지만 경기부양 방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원만한 합의가 나올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미국은 EU에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더 확대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EU는 미국 측 요구를 일축하고 종전의 재정확대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EU 순회 의장국을 맡고 있는 체코의 미렉 토폴라넥 총리는 이와 관련해 3월 25일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과 관련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미국 내에서도 경기부양책으로 고전하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인 셈이다.
나토 정상회의는 두 번째 관문이다. 창설 6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회의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토는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탄생했지만 냉전 종식 이후 달라진 국제정치 환경에 맞게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회의의 최대 현안은 미국의 새 아프간 전략과 러시아와 관계 개선이다. 지난달 25일 열린 오바마와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에서도 이 사안은 강조된 바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오바마에게도 이번 정상회의가 남다른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프간 전략과 러시아 관계 개선은 서로 얽혀 있다. 미국과 나토가 추진하는 나토 확대와 미사일방어(MD) 계획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사안이다. 동시에 미국과 나토는 아프간 전략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오바마는 이 두 사안 사이에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우선 아프간 추가 파병에 대한 나토 회원국들의 반응이 미온적이다. 회원국 가운데 추가 파병 입장을 밝힌 나라는 체코(400명)와 이탈리아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에 따라 오바마는 나토 회의에서 추가 파병보다 전쟁비용 지원이나 아프간 경찰 훈련 등에 대한 협조를 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비한 MD 추진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가 이미 러시아에 관계 개선을 위해 변경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기로 한 체코의 경우 지난달 24일 하원이 토폴라넥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가결함에 따라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체코 방문에서 오바마가 MD 추진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G20 정상회의와 나토 정상회의는 대통령 취임 후 첫 국제 무대에 데뷔하는 오바마에겐 명실상부한 세계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할지 가늠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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