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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온두라스 쿠데타 ‘훈수꾼의 대결’(2009 07/14ㅣ위클리경향 833호)


지구상에 대통령이 두 명인 나라가 있다. 한 명은 군부쿠데타에 의해 국외로 강제추방됐지만 국제사회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자국 의회와 사법부, 군부에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지난달 28일 군부쿠데타가 발생한 중미 온두라스의 두 대통령 이야기다. 쫓겨난 대통령은 마누엘 셀라야(56)이고 그를 쫓아내고 권좌에 오른 것은 새 대통령 로베르토 미첼레티(63)다. 그러나 한 하늘 아래 최고권력자가 두 명 있을 수는 없는 법. 한 명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남게 될까.
온두라스 쿠데타는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쿠데타 세력은 셀라야를 축출한 표면적인 이유로 그가 대법원의 반대에도 개헌 국민투표를 강행함으로써 법을 어겼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재집권을 노리려는 셀레야를 이 참에 제거해야 한다는 속셈이 숨어 있다. 반면 쿠데타 반대 세력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타로 쫓아내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구동성으로 쿠데타를 비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쿠데타 이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비롯한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쿠데타 비난에는 예외가 없다. 유엔과 미주기구, 유럽연합,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도 쿠데타 세력에 대해 쿠데타를 무효화하고 셀라야 대통령을 복귀시키라고 외교·경제 카드를 꺼내들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온두라스 사태가 외교적 방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지, 유혈 사태를 부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셀라야가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해 내년 1월 후임자에게 권좌를 넘기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쿠데타 세력이 쉽게 굴복할지, 아니면 셀라야가 다시 대통령에 복귀하더라도 재선의 꿈을 버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온두라스 사태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온두라스 사태는 온두라스 내부 정치권력 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주지역 정세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온두라스 사태의 중심에는 당사자인 두 대통령과 국외자인 차베스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호세 미구엘 인술사 미주기구 사무총장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핵심인물은 당연히 오바마와 차베스다. 지난 4월 미주기구 정상회의에서 군부쿠데타와 군사정권을 지지해온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작’을 공약한 오바마로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다. 2002년 4월 자신을 향한 우파의 쿠데타 시도 악몽을 가지고 있는 차베스에게는 사태 해결의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중남미 좌파의 맹주라는 지위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쿠데타 이후 두 정상이 보이는 행보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오바마는 쿠데타 발생 후 쿠데타 세력을 신속하게 비난함으로써 과거 미국의 개입에 의문을 가진 중남미 국가들을 안심시켰다. 덕분에 그는 미 언론으로부터 2002년 차베스 축출 시도 쿠데타 발생 때 초기에 암묵적인 지지 입장을 보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달리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오바마의 태도가 명쾌하지 않고,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쿠데타 당일 쿠데타라고 부르지 않는 대신 “온두라스의 모든 정치·사회 지도층은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할 것”을 촉구하는 등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쿠데타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대놓고 비판하는 차베스는 차치하더라도 한목소리로 쿠데타를 비난하고 셀라야의 복귀를 촉구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과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미주기구와 유엔, 리우그룹 등이 즉각적이고도 무조건적인 복귀를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자 하루가 지난 지난달 29일에야 비로소 “우리는 쿠데타가 적법하지 않다고 믿고 셀라야는 온두라스의 대통령으로 남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왜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미 워싱턴 소재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마크 와이스브롯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미국의 목표가 다른 국가만큼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예로 과테말라와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이 쿠데타 발생 직후 온두라스에 대한 무역거래를 이틀간 중단할 것을 선언한 데 비해 미국은 원조 중단 등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의 해외원조법에 따르면 군부쿠데타로 국가 정상이 축출된 경우 무조건 원조를 금지하게 돼 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미주기구가 지난 1일 쿠데타 세력에 셀라야의 복귀를 위한 3일간의 유예기간을 주자 이를 지켜본 뒤 7월 6일까지 원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이유는 온두라스 쿠데타 세력이 TV와 라디오방송을 폐쇄하고 언론인들을 구금하는 등 언론을 통제하고 있어 실상이 미국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강도 높은 비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와이스브롯은 또 언론들의 평가와 달리 오바마가 이번 쿠데타에 보인 태도와 부시가 2002년 4월 차베스 축출을 위한 쿠데타 때 보인 입장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부시는 쿠데타 당일 이를 지지했지만 다음 날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밝히자 기존 입장을 바꿨으며, 오바마도 중남미 국가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차베스는 쿠데타가 발발하자마자 미국의 쿠데타 배후설을 주장하면서 민주주의 신봉자라는 이미지를 중남미 국가에 새기는 데 성공했다. 차베스는 미국이 쿠데타 세력에 자금을 대줬으며, 미 중앙정보국이 쿠데타 세력을 부추기는 활동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차베스 주장을 일축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1일 이 같은 차베스의 미국 배후설은 반미 선동일뿐 오바마에게는 먹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온두라스 사태의 최후 승자는 차베스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 오클랜드 소재 인디펜던트인스티튜드의 알바로 바르가스 로사 선임연구원은 지난 1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온두라스의 승자’라는 글을 통해 “온두라스의 승자는 쿠데타 세력도, 쫓겨난 대통령도 아닌 차베스”라고 주장했다. 온두라스 사태를 계기로 중남미에서 결국 차베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네수엘라의 정치분석가 루이스 빈센테 레온은 워싱턴포스트 2일자에서 온두라스 사태는 완벽하게 차베스에게 유리하다면서 “차베스가 독재자가 아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옹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소재 국제위기그룹의 마크 슈나이더는 “차베스가 이번 위기에서 분명히 이득을 얻을 것이지만 그가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