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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미국 일부다처제 종말 고하나 (2006 09/12ㅣ뉴스메이커 691호)

지난 8월 28일 밤, 미국 네바다주 경찰이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외곽에서 2007년형 빨간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승용차를 세웠다. 콜로라도주 임시 번호판을 단 데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3명의 탑승자 중 한 명이 콘텍트렌즈 영수증을 제시했다. 의심을 한 경찰은 차를 수색했다. 경찰은 수색 끝에 가발 3개, 휴대전화 15개, 현금 5만4000달러, 1만 달러 어치의 기프트카드, 랩톱 컴퓨터 4대, 위성추적장치(GPS) 1대, 현금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봉투 등을 찾아냈다. 그리고 경찰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은 `‘예언자(The Prophet)’라는 e메일 주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쾌재를 불렀다.

FBI가 ‘10대 수배자’로 내걸고 추적해온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FLDS교회’ 교주인 워런 스티드 제프스(50)가 도피 2년 만에 체포된 것이다. 스스로 ‘예언자’로 불러온 제프스는 미성년 여자아이와 나이 든 남성 간의 결혼을 주선한 혐의로 유타주와 애리조나주로부터 수배를 받아왔다. 그는 또 유타주에서 두 건의 강간사건의 공범 혐의도 받아왔다. FBI는 지난 5월 그를‘`FBI 10대 수배자’ 명단에 올리고 그의 목에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FBI 10대 수배자에는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도 올라 있다. 함께 타고 있던 두 사람은 그의 아내와 남동생으로, 무혐의로 석방됐다.

FBI의 ‘10대 수배자’ 명단에 있는 워런 제프스.AP=연합뉴스


추종세력 1만여 명 집단거주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제프스는 80명의 아내와 약 60명의 자식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약 1만 명이며, 유타주 힐데일과 애리조나주 콜로라도시티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FBI는 네바다주를 비롯한 4개주와 캐나다에도 제프스의 `‘안전가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에 따르면 제프스의 재산은 1억1000만 달러에 달한다.

FLDS교회는 모르몬교가 1890년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자 이에 반대해 이탈한 분파다. 모르몬교는 1830년 미국 뉴욕주 맨체스터에서 조지프 스미스가 창건한 교회로 스미스가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만들었다는 모르몬경(經) 등을 기본 경전으로 삼는다. 한국에서는 `‘말일성도교회’라 부르다 2005년부터‘후기성도교회’라 부른다. 1843년 스미스는 계시에 따라 일부다처제를 인정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대법원이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지했으며, 교회도 1890년부터 이를 금지했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자는 기존 교리를 고수, 미국 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제프스는 오랫동안 FLDS교회를 이끌어온 아버지가 2002년 98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교회를 이어받았다. 제프스 아버지는 여러 명의 아내와 65명의 자식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스는 아버지 사망 후 아버지의 아내를 거의 모두‘ 인수’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FLDS교회 이탈자들에 따르면 제프스 밑에서 미성년자 결혼이 수백 건 이뤄졌으며, 그는 결혼한 남자를 내쫓는 방법으로 가정을 해체한 뒤 부인과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미성년 강제결혼·근친상간 등 심각

베일에 가려진 제프스와 그의 아버지의 생활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9년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1980년대 초부터 가족과 함께 살아온 유타주의 샌디에 있는, 높은 담으로 둘러친 7에이커의 저택을 190만 달러에 매각했다. 아버지의 아내들이 거주하던 방 벽엔 `‘ 어떤 일이 있어도 달콤함을 지켜라’는 글씨가 씌어 있으며, 문 입구에는 여성의 생리 여부에 따라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꼬리표가 달려 있다. 그리고 모르몬교가 금지하는 커피와 포도 와인을 마신 증거도 발견됐다.

제프스의 도피와 체포가 미국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내 일부다처제 논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제프스는 일부다체제 논쟁을 촉발시킨 인물이다. 일부다처제를 소재로 한 HBO TV 드라마 ‘빅 러브(Big Love)’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CNN과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 ‘CSM’ 등 미국 언론이 일부다처제 가정을 앞다투어 취재하기도 했다. 제프스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영국의 채널4 TV는 지난 7월 19일 ‘80명의 아내를 거느린 남자’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송했으며, 일간 ‘인디펜던트’도 같은 날 그에 대한 추적기를 실었다. 국내에서도 MBC가 지난 5월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국경에 위치한 일부다처 공동체인 `‘센터니얼 파크’에 있는 한 가정을 찾아 취재한 프로그램을 방송한 바 있다. FLDS 교회의 일부다처제 관행이 미성년자 강제 결혼과 근친상간 등 심각한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 당국이 수사에 나서, 일부 남성을 체포해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 일부다처제를 이행하고 있는 숫자는 확실하지 않다. 유타주와 애리조나주 검찰청 자료를 보면 2만~4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WP’는 밝혔다. 일부다처제 옹호단체인 ‘프린시플 보이시스’는 미국 서부지방에는 현재 3만7000명의 모르몬교 근본주의자가 있으나 대부분 일부다처제를 옹호할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3년 동안 일부다처제 결혼 경험이 있으며 지금은 반대단체인 테피스트리 오브 폴리가미를 이끄는 비키 프런티는 ‘WP’ 인터뷰에서 일부다체제를 실행하고 있는 미국인은 약 10만 명에 달하며,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르몬교의 마이크 오터슨 대변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우리는 일부다처제를 지지하지 않으며, 일부다처제를 실행하고 있는 교도는 누구든 파문할 것”이라고 했다고 ‘WP’는 전했다.

유타주 힐데일의 산기슭에 있는 FLDS교회 신도 집단 거주지. AP=연합뉴스

교주 체포 소식이 전해진 유타주 힐데일의 FLDS교회 집단거주지에서는 애통해 하는 분위기라고 AP통신은 전했다. 과거 FLDS교회 신도를 변호한 바 있는 솔트레이크시티 고문변호사인 로드 파커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FLDS교회 내부에서 그동안 제프스에 대한 충성심으로 꼼짝 못했던 사람이 심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어떤 사람은 더 강해지고, 어떤 사람은 더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제프스가 체포된 후 FLDS교회가 힘을 잃고 일부다처제가 와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애리조나 주정부 법무장관인 테리 고다르는 그의 체포에 대해 “FLDS교회의 소규모 그룹이 1만 명 신도에게 자행해온 전제통치가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스의 체포가 몰고올 사회적 파장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