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앤젤루(1928~2014)는 미국 흑인 여성의 희망의 상징이다. 시인, 배우, 전기작가, 인권운동가 등으로서 그가 미 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많은 미국인이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흑인 여성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명성에 날개를 달아준 행사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이다. 그는 축시 ‘아침의 고동(鼓動)에 관해’를 낭독했는데, 낭독 시 앨범은 이듬해 그래미상을 안겼다. 유엔 창설 50주년 때는 축시를 낭독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로부터 28년 뒤 앤젤루의 길을 걷는 흑인 여성 시인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지난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낭독한 23세의 어맨다 고먼이다. 노란색 옷에 빨간 머리띠를 한 고먼은 율동적인 손짓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희망의 미국을 노래하며 청중을 매료시켰다. 4년 전에 미 초대 청년 계관시인이 될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취임식은 스타 탄생의 서막이었다. 취임식 후 그의 시집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올해 출간될 시집 세 권은 초판만 각각 100만부씩 발행할 예정이다.
고먼의 롤모델이 앤젤루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어린 시절 청각장애에 따른 언어장애를 겪은 고먼은 초등학생 때 시를 쓰고 낭독하면서 역경을 극복했다.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한 뒤 실어증에 걸린 앤젤루도 문학을 통해 말문을 열고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얻었다. 고먼은 앤젤루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취임식 때 새장 속의 새 모양 반지를 꼈다. 반지는 앤젤루를 가장 존경하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선물했다고 한다. 앤젤루의 자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고먼은 다음달 7일 2021 미프로풋볼(NFL) 슈퍼볼 개막식에서도 코로나 영웅들을 위해 시를 낭독한다. 앤젤루가 인종차별 시대에 흑인 여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미국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고먼.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2036년 대통령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가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축시 낭독을 듣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미국의 희망의 목소리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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