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스타트업 기업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하순 국내 최대 IT기업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전해진 후 악재의 연속이다. 고액 연봉과 높은 복지 등으로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IT업계의 부끄러운 현주소이지만 터져야 할 것이 터진 셈이다. 위계적인 조직문화 개선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네이버 노조는 6일 비즈·포레스트·튠 등 3개 사내독립기업(CIC) 조합원 10%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해 초과노동을 했다고 밝혔다. 사측이 주 52시간 근무 한도를 피하기 위해 사내 시스템에 근무시간을 적게 입력하고, 휴게시간은 늘려잡고, 대체휴일에도 일하게 했다는 것이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이달 초에는 카카오가 주 52시간 초과 근무와 수당 체불 등으로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해 지난 4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직장 내 괴롭힘도 줄어들질 않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1~5월 접수한 제보 1014건을 분석한 결과 괴롭힘을 당한 사례가 절반(52.5%)이 넘었다.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일도 31%나 됐다. 직장 갑질의 최대 문제는 회사 대표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능력주의를 앞세운 대표의 오만이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오는 10월14일부터는 대표도 신고·처벌 대상이 되지만, 다음달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2주년을 맞는 상황에서 여전히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스트레스·갑질은 네이버·카카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IT기업과 스타트업의 고질적인 병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IT기업과 스타트업에는 미래가 없다. 문제는 기업들이 알고도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네이버의 노동법 위반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당한 직원의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카카오 사례도 지난 2월 한 직원이 회사 평가시스템에 따른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게 계기였다. 기업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 정부는 노조 요구대로 네이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전수조사와 특별근로감독,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제도 정비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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