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설립자 어산지 아프간 기밀문서 공개 후 <슈피겔>과 인터뷰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7월26일 영국 런던의 프론트라인 클럽에서 아프가니스탄 기밀문서 공개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이 내용을 보도한 <가디언>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위키리크스는 민주주의에 축복인가, 저주인가.’
내부비리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www. wikileaks.org)가 7월25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기밀문서 9만2000건을 폭로한 기사와 관련해 독일 언론 <슈피겔>이 뽑은 제목이다. 위키리크스의 아프간 기밀문서 공개가 낳은 파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4월5일 미군이 아파치 헬기에서 민간인들을 향해 기총소사하는 장면이 담긴 ‘이라크 동영상(부수적인 살인)’ 공개에 이어 이번에 아프간 기밀문서를 대량으로 공개하면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위키리크스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당사자인 미 국방부를 비롯한 미 행정부(국가권력)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반역자와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실제로 미 당국은 기밀문서 누출이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조사 중이다. 반면 일반 대중들은 위키리크스와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39)를 영웅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위키리크스는 추가 폭로를 예고해 갈수록 위키리크스 기밀문서 폭로를 둘러싼 파문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서 공개 최종책임은 본인에 있다”
지난 4월5일 위키리크스가 ‘이라크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위키리크스와 설립자 어산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다. 위키리크스는 2007년 설립됐으며, 설립자 어산지는 호주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며, 위키리크스 활동은 웹사이트에 기반하고 있으며, 서버는 정보원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나라인 스웨덴·아이슬란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 분산돼 있으며, 기부금으로 충당되는 운영비는 연 20만유로(약 3억원)이며, 어산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활동가는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하지만 어산지는 7월25일 아프간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영국 런던에서 <슈피겔>과 가진 2시간30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털어놨다. 인터뷰에 따르면 어산지가 위키리크스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은 1990년대다. 그 후 1999년 관련 도메인(leaks.org)을 예약했다. 열린사회(Open Society)에서는 누구든 어떤 사안에 관해서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경험상 비밀이 있는 곳이라면 범법행위가 있게 마련이라고 믿었다. 권력자들은 이같은 비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어산지는 또 개인사에 대한 내용과 위키리크스 활동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 자신 외에 독일인 대니얼 슈미트(32)가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기밀 문서 공개는 누가 결정하는지’ 등 위키리크스 운영과 관련해 제기되는 궁금증도 풀렸다. 어산지는 기밀문서 공개의 최종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누군가 문서 공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나”라면서 “문서가 의문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항상 공개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월27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아프간 기밀문서 폭로에 관한 첫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문서 누출이 “개인이나 작전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위크리크스의 잇단 기밀 문서 폭로는 ‘국가안보 대 정보자유’라는 오래된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어산지는 7월27일 영국 런던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히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어산지는 ‘기밀 공개 때 국가안보를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가 편에 서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라면서 “국가에는 국가안보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국가안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인 개개인이나 미국 시민에게 위협이 되는 문제라면 잠재적으로 진정한 고려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정보 제공자에 대해서는 “우리도 제보자가 누군지 모른다”면서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밀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를 비롯한 일각에서 유력한 문서 제공자로 제기하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22)과의 연계설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서 정보분석병으로 근무하던 매닝은 ‘이라크 동영상’ 공개 파문 이후인 지난 5월 말 미 군당국에 의해 체포돼 기밀누출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52년 징역형을 살게 된다. 이와 관련해 어산지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시스템으로 정보 제공자를 보호한다면 왜 매닝에게 법률자문을 하려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가 우리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또 익명의 제보 시스템 탓에 자료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위키리크스에는 아직 가짜 문서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유출된 문건의 진실성을 평가할 능력을 갖춘 전직 군인과 정보당국 출신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권력남용이나 부패를 언론에 폭로해 세상의 관심을 끌려는 내부고발자나 정부관료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행태는 과거 구 매체가 지배하던 시절과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이 낳은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아프간 기밀문서 폭로처럼 엄청난 자료를 담은 USB를 플래시 드라이브에 꽂으면 인터넷에 그대로 공개된다. 이 부분이 위키리크스의 이번 폭로와 비견되는 1971년 베트남 기밀문서 폭로사건인 ‘펜타곤 페이퍼’와 다른 점이다. 당시 내부고발자 대니얼 엘스버그는 문서를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직접 전달했지만 이번 문서 제공자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위키리크스에 보냈다. 위키리크스의 위력은 지난 4월 이라크 동영상 공개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미군의 기총소사로 2명의 현지인 기자가 사망한 로이터통신은 동영상 복사본을 얻기 위해 미 국방부에 요청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내부고발자 덕분에 동영상을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세계적인 특종을 만들었다.
기밀 폭로, 그 끝은 어디인가
위키리크스는 ‘프렌즈 오브 위키리크스’라는 재단을 올해 안에 독일에서 출범시켜 활동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독일인 슈미트가 백방으로 뛰고 있다. 두 사람은 위키리크스의 기밀폭로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어산지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등산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단지 베이스 캠프에 와 있을뿐이다”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아프간 기밀문서 폭로 직후 1만5000건을 추가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추가 파장을 예고한 상태다. 각종 언론보도에 따르면 위키리크스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밀문서 건수는 120만건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공개된 9만2000여건이 낳은 파장을 감안하면 이 문서가 모두 공개됐을 때 낳을 파장은 짐작할 수 있다. 예고한 대로 이라크 동영상보다 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이는 아프간 민간인 학살 장면 등이 공개될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큰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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