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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1]선택(2015.07.14ㅣ주간경향 1134호)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도, 선택당할 수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결과는 예측불허다.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야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의도한 선택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타인의 선택은 나머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에게는 선택이 죽고사는 문제일 수 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대의나 전체를 생각하지 않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선택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나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상밖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이든 과정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누구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만약 연기금에 투자한 돈이 사람을 죽이는 폭탄 제조기업에 투자돼 돈을 번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떨까. 내가 운용한 것이 아니니 관계없다고, 수익을 올렸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블러드 머니(피묻은 돈)’로 불리는 이런 수익은 전쟁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블러드 머니를 맛보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눈뜬’ 안과의사 부인의 선택은 어떨까. 갑자기 닥친 전염병으로 언젠가 자신도 눈이 멀 거라는 생각에 눈먼 남편을 따라 수용소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두려움에 떠는 눈먼 자들의 한 줄기 희망의 빛이자 인간 존엄 회복의 상징이 된다.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지만 혼탁한 사회에서는 이런 선택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보다도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다. 그는 구제금융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벼랑끝 전략으로 국민투표(7월 5일)를 선택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결과는 치프라스와 그리스 국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통령과 맞짱을 뜨다 사퇴 압박에 몰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도 일생일대의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최고의 권력에 떼밀린, 강요된 선택이지만 결정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 파장은 어떨까.

    나 또한 예기치 않게, 주간경향 편집장으로 선택당했다. 매주 표지이야기를 비롯한 글감을 선택하고, 기자들의 숨소리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랄 뿐이다. 루쉰은 말했다. 용감하게 똑바로 바라봐야 용감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감당할 수 있다고. 신중하면서도 당당하게 걷겠다. 독자분들의 애정 어린 격려와 질책을 기다린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