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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44]‘팔할’의 도(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

왜 ‘팔할’이었을까. 학창 시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자화상’ 시구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읽고 든 의문이었다. 칠할도 구할도 아닌 팔할. 성찰의 근거가 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당 식으로 풀면 노력이 구할구푼이다.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소개한 <낭송 18세기 소품론>(2015, 북드라망)이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말했건만, 지금 보니 넓힌 게 아니라 오히려 둘러막았군. 그대가 개울가에 거주할 때 집 이름을 매미허물과 귤껍질이라는 뜻의 ‘선각귤피(蟬殼橘皮)’라 하여 작음을 드러내더니 이 방은 무엇이라 이름하였는가?” 이덕무는 웃으며 답한다. “‘팔분당(八分堂)’이라고 하였네.” 손님이 “이름은 어디서 가져왔는가?”라고 묻자 이덕무는 “그대 스스로 찾아보게”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벽에서 왔군. 벽에 걸린 글씨가 십분의 이는 전서체로 쓰이고, 십분의 팔은 해서체로 쓰였으니….” “그렇지 않네. 거기에 집이 작다는 뜻이 있는가?” “병풍 밖에 남은 공간이 몇 자나 되는가? 만약 십분의 이라면 집의 이름은 그것에 있네.” “병풍 밖은 십분의 삼인데 어찌하여 집의 이름을 칠분당이라 하지 않고 팔분당이라 했겠는가?”

마침내 이덕무가 작명 이유를 설명한다. “크기로 이름을 삼는 것은 거짓되고 괴벽한 것이라 군자가 취할 것이 못되네. …사람은 태어날 때 십분의 선한 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지. 그러나 장성하여 어른이 되면 기질에 구애받고 외물에 빠진다네. 그리하여 본성을 잃게 되고 악의 세력이 빠르게 자라나 거의 팔구분에까지 이르러… 보통사람은 선과 악을 오분씩 갖고 있는 자도 있고, 선과 악을 사분과 육분으로 갖고 있는 자도 있네. 그러니 칠분과 팔분의 선이 십분에 이르는 것은 얼마나 진보하느냐에 달려 있네. …나는 어쩌면 선과 악을 오분씩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네. 만약 소인됨을 부끄러워하여 죽을 때까지 선을 행한다면, 다행히 육분이나 칠분에 도달하기를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나와 같은 사람도 현인을 바라는 그런 선비일 수도 있다면, 우러러 그것을 사모하고 발돋움하여 거기에 이르고자 하네. 그 경지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기쁘게 받아들여 힘써 노력할 수 있는, 칠분과 구분의 사이이니 바로 팔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덕무의 ‘팔분당기(八分堂記)’다. 옮긴이들은 ‘팔 할의 선을 향해’라고 이름지었다. 글을 쓸 때 이덕무는 열아홉 살에 불과했다. 이덕무의 ‘팔분의 선’은 미당의 팔할과 같은 이치 아닐까. <주간경향>이 1179호로 스무네 살이 됐다. 미당이 ‘자화상’을 썼을 때보다 한 살 많다. 팔할보다 일푼이라도, 아니 일리라도 더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팔할의 도를 지키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보여준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고 약속드린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