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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미국 대선 깅리치 돌풍은 반사이익?(2011.12.6/주간경향 953호)


 타 후보 추문, 말실수에 상대적 지지 상승...약점 많아 초반 인기 그칠 수도


   ‘컴백 키드’ ‘와일드 카드’.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68)에게 미 언론들이 붙인 이름들이다. 컴백 키드는 199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으로 공화당 혁명을 일으켜 총선 승리를 이끌고 이듬해 40년 만에 공화당 출신의 하원의장이 된 깅리치의 부활을 의미한다. 와일드 카드는 그가 내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공화당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64)를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10월 17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잭슨빌/AP연합뉴스
 
  두 용어가 보여주듯 깅리치 전 의장이 최근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깅리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력 후보인 롬니 전 주지사를 제치고 선두로 나서면서 미국의 정치분석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깅리치의 급부상은 경쟁자인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61)와 허먼 케인 전 피자체인 최고경영자(66)가 잇단 추문으로 추락하는 사이에 얻은 반사이익 덕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깅리치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는 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깅리치가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가 고꾸라진 다른 후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혹평도 나온다. 그럼에도 깅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 승리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깅리치의 급부상은 무엇보다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지지율에서 드러난다. 깅리치는 10월 22일 공개된 퀴니피액대학의 여론조사에서 라이벌 롬니 전 주지사를 앞섰다. 깅리치는 공화당 선호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6%의 지지를 얻어 22%를 얻은 롬니를 따돌렸다. 두 사람 간 맞대결에서도 깅리치는 49%를 얻어 39%에 그친 롬니를 10%포인트나 앞섰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 깅리치가 롬니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꺾을 수 있는 후보로 깅리치(23%)보다 롬니(38%)를 선호했다. 두 사람은 오바마와 맞대결을 벌일 경우 모두 지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그 격차는 롬니(1%포인트)보다 깅리치(9%포인트)가 컸다. 
  
 공화당이지만 불법체류자 이민에 긍정적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인지 깅리치는 11월 22일 CNN 주최로 열린 공화당 경선 후보의 TV토론회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깅리치는 이날 토론회에서 민감한 불법이민 문제에 대해 차별화된 의견을 밝히면서 토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5년 동안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아들·딸·손자와 함께 살아온 이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깅리치를 비판했다. 깅리치는 공화당의 다른 후보와는 달리 불법체류자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입장을 지녀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이 당내 대선 주자로 부상하기 위한 도박인지,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포석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공화당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깅리치의 갑작스런 부상의 원인과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깅리치는 5개월 전인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선거캠프 참모들이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사실상 당내 경선 후보에서도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다. 당시 이 사실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깅리치 캠프의 핵심 전략가인 데이브 카니, 언론홍보 책임자인 릭 타일러 등 참모진 16명이 캠프에서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다른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대반전을 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가운데)이 10월 22일 열린 CNN방송 주관 TV토론에서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와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살롱은 11월 15일 깅리치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많은 공화당원들이 미트 롬니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 허먼과 페리가 스스로 위신을 실추시킨 점, 그리고 깅리치는 TV토론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실제로 깅리치는 경쟁자들의 잇단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다. 케인은 잇단 성추문으로, 페리는 잦은 말실수로 스스로 추락했다. 깅리치는 또 이들과 달리 지금까지 진행된 TV토론에서 아무런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깅리치는 대권 후보로서는 뼈아픈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치전문 주간지인 <내셔널저널>은 10월 16일 깅리치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 5가지를 들었다. 대표적인 약점은 그가 대통령직에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그의 캠프 참모들이 떠난 이유도 그가 대통령이 되기보다 자신의 책이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선거에 나섰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 번의 이혼과 그 과정도 약점으로 꼽았다. 깅리치는 의회에서 자신의 보좌관인 정부와의 결혼을 위해 암투병 중인 부인마저 차버린 과거가 있다. 그는 이를 의식해서인지 10월 1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 역사상 재임 중 윤리규정을 위반한 유일한 하원의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는 1998년 자신이 세운 세금이 면제되는 재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한 것이 발각돼 30만 달러라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그가 1999년 초 정계를 은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깅리치가 세운 회사들이 거둔 엄청난 이득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은 깅리치가 세운 두 회사가 2001년부터 2010까지 10년 동안 5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에 있는 정치자금 및 로비자금 감시기구인 공직청렴센터(CPI)는 이와 별도로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깅리치의 정치조직인 ‘미래승리를 위한 미국의 해법’이라는 단체가 5000만 달러를 모금했다면서 깅리치는 2001년 이후 모두 1억500만 달러를 모았다고 전했다. 이 자금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깅리치는 대선 고지 점령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자금을 엄청나게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깅리치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당장 롬니라는 최대 라이벌을 넘어야 한다. 롬니는 높은 지명도와 탄탄한 재정·조직을 배경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다. 내년 초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까지 돌풍을 이어갈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롬니를 넘는다 하더라도 오바마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바마가 경제위기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 한 재선은 불문가지라고 전망하고 있어 요행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살롱의 스티브 코나키 편집장은 깅리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셸 바크먼, 릭 페리, 허먼 케인 등과 같은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초반 돌풍의 주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깅리치의 부상은 돌풍으로 끝날 것이며, 그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