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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러시아, 시리아 군사개입 발목잡는 진짜 이유는(2012 02/14ㅣ주간경향 962호)


“국제사회가 시리아 국민을 지지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러나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잘못된 생각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시리아 사태 종식 결의안 채택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안보리가 채택하려 한 결의안은 모로코가 제안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권력 이양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 종식을 담고 있다. 군사개입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나오는 “왜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수 있다. 시리아 사태에 무력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아랍연맹 등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다.


 

1월 26일 시리아 반정부 시위대에 합류한 탈영병들이 시위대와 함께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엔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사태로 민간인 54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어린이만 34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리아 정부는 정부군도 24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참상을 감안하면 국제사회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더욱이 지난해 3월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주도해 리비아 무력개입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한 것과 비교하면 ‘왜 시리아 사태엔 손을 놓고 있느냐’는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부동항인 시리아 타르투스 항 잃을까 두려워해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왜 시리아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시라아 군사개입에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국제사회가 무력으로 개입할 경우 내전과 같은 장기적인 무력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변 아랍국가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러시아, 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섣부르게 군사개입을 했다가는 아랍 민족주의 국가들과의 분쟁을 불러 또다른 중동전쟁을 낳을 위험도 있다. 시리아는 또 정규군 32만여명과 예비군 20만명을 둔 군사강국이자 세계 최대의 화학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시리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꿈쩍도 않고 있다.

도대체 러시아는 왜 시리아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는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것일까. 1970년대 이후 알 아사드 가문을 지지해온 관계 때문인가. 아니면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시리아에 무기 수출을 하지 못하는 데 따른 막대한 경제적 손실 때문인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일 러시아가 6년 전 시리아 빚 100억 달러를 탕감해준 사실을 들며 알 아사드 정권과의 관계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 발발 이후에도 활발한 무기계약을 맺어왔다. 지난해 12월엔 야크 130 제트 훈련기 36대(5억 달러)를 파는 계약을 시리아 정부와 체결했다. 2007년에 체결한 SS-N-26 대함 순항미사일 72기도 시리아에 넘겼다. 3억 달러 규모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유엔 제재가 단행돼 러시아가 시리아에 무기 공급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피해규모가 50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무기 생산과 수출을 지원하는 국영기업 ‘로스테흐놀로기이’ 세르게이 체메조프 사장은 1월 25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과의 군사계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항공모함 쿠즈네초프호가 지난 1월 8일 시리아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정박해 있다.                                 타르투스/AFP연합뉴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지중해 연안에 있는 시리아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를 잃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러시아는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 시절인 1970년대에 타르투스항 임차계약을 맺었다. 러시아로서는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타르투스항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중해의 중요한 전략기지를 잃게 된다. 러시아에 타르투스 기지는 단순한 항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러시아가 18세기 후반부터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온 부동항 확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러시아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부동항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후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부동항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예카테리나 2세는 “부동항을 얻지 못하면 대국의 지위를 잃을 것”이라며 부동항 확보를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예카테리나 2세는 1774년 오스만 제국과 싸워 흑해로 나가는 통로를 확보했으며, 결국 지중해로 나가는 길을 열게 됐다.

지중해 다른 국가가 군기지 제공할까
러시아는 그 뒤 이집트와 아드리아해의 유고연방에도 해군기지를 두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패하고,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부동항 두 곳을 잃었다. 당연히 시리아 타르투스항은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으로서 그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아졌다. 러시아는 타르투스 내 기지 현대화에도 상당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알 아사드 정권이 끝나면 타르투스항을 사용하는 것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이 러시아의 인식이다. 러시아는 지난달 항공모함 쿠즈네초프호를 타르투스항에 입항시켰으며,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국제사회가 부동항 확보에 안달이 난 러시아를 달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은 있을까. 지중해 다른 국가가 러시아 군기지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미국 워싱턴에 있는 근동정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소네르 차이아프타이는 지난 1월 30일 터키 일간 후리예트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스령 키프로스를 비롯해 어느 나라도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 기지 두 곳을 두고 있는 그리스령 키프로스의 경우 러시아 기지 허용은 곧바로 터키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뾰족한 수는 없을까. 차이아프타이는 시리아 야권이 러시아에 알 아사드 퇴출 이후에도 타르타스항 사용권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무력개입을 피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서도 손해가 되지 않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은 시리아 야권과 국제사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