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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주간경향

미국 이란공작 위해 테러단체 지원?(2012 05/01ㅣ주간경향 973호)

미 정부는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MEK에 비밀 자금을 댔으며, MEK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미국 측에 제공했다. 이 같은 미국의 이란 비밀작전은 요즘도 진행되고 있다고 허시는 전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의 환락도시 라스베이거스 북서쪽 약 100㎞ 떨어진 척박한 고원지대에는 미 에너지부 산하의 네바다국가보안구역이 있다. 과거 핵실험이 이뤄진 곳이지만 지금은 방첩부대 훈련시설과 보잉737 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시설이 있다. 민간인 접근이 금지된 지역으로, 이곳을 지키는 보안요원들은 불법 침입자가 있을 경우 총기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지난 1월11일 경찰이 폭탄테러로 숨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의 자동차를 견인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로샨의 암살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도움을 받은 이란 반체제 단체 무자헤딘 이 칼크(MEK) 조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테헤란|AFP연합뉴스

 

 

미군이 이곳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대이란 공작활동을 위해 이란 반체제 단체 인사들을 훈련시켜왔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이 주장을 펼친 이는 주간지 뉴요커의 저명한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모어 허시(75)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은폐한 밀라이 사건(1969년)과 이라크 주둔 미군의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 이라크군 포로 인권유린 사건(2004년) 등 수많은 특종이 그의 취재 끝에 빛을 보게 됐다.

허시는 지난 4월 6일 뉴요커 인터넷판에 미군 특수전을 총괄하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가 2005년부터 네바다국가보안구역에서 이란 반체제 단체인 ‘무자헤딘 이 칼크(MEK)’ 회원들을 훈련시켜왔다고 전·현직 정보관리 및 군사고문들의 말을 인용해 폭로했다. 이란 인민무자헤딘기구(PMOI)로도 불리는 MEK는 1960년 중반 마르크스주의-이슬람주의자 학생 조직으로 출범했지만 현재는 이란의 대표적인 반체제 단체가 됐다. 프랑스 파리와 이라크 캠프 아쉬라프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조직원은 최소 3000명에서 최대 1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MEK는 1979년 리자 샤 팔레비 국왕을 축출한 이란혁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혁명 후 보수 이슬람 성직자들과의 갈등 탓에 내부투쟁의 길을 걸었다. 특히 미국인 6명 암살사건과 연루됐다는 이유로 1997년엔 미 국무부로부터 테러단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2002년 이란이 지하 장소에서 우리늄 농축을 시작했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제적인 신뢰를 얻었다.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나중에 MEK가 공개한 이란 핵정보는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제공한 것이라고 털어놨다고 허시는 기사에서 밝혔다.

이란 반체제단체 MEK, 미군 지원받아


MEK가 서방 정보기관과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JSOC는 이란이 지하 비밀장소에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우려를 확인하기 위해 이란 내 작전에 돌입했다. 미 정부는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MEK에 비밀 자금을 댔으며, MEK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미국 측에 제공했다. 이 같은 미국의 이란 비밀작전은 요즘도 진행되고 있다고 허시는 전했다.

MEK의 문장

미군이 이란 내부 정보를 캐내기 위해 국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한 단체에 비밀 훈련을 시키고 자금을 댔다는 폭로는 충격적이다. 현재 이란과 서방은 이란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미 국무부는 MEK를 테러단체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네바다 훈련을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허시는 지적했다.

 

한 전직 정보관리는 “우리는 그들을 이곳에서 훈련시켰고 에너지부를 통해 그들의 신분을 세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을 멀리 떨어진 사막이나 산악지대에 배치해 통신능력을 배양시켰다”면서 MEK 조직원 훈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중단됐다고 말했다. 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관련 자문을 해온 퇴역 4성 장군은 2005년에 MEK와 관련된 이란인들이 네바다에서 미군이 개입한 훈련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6개월 동안 통신훈련, 암호해독, 소규모 전술, 무기와 같은 표준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1996년까지 MEK 조직원으로 활동하다 탈퇴한 뒤 영국에서 탈퇴자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수드 코다반데도 최근 탈퇴자로부터 네바다 훈련에 대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네바다에서 하는 통신훈련은 공격을 받는 동안 통신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통신감청을 배운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MEK 훈련을 주도한 JSOC의 대변인은 “미 특수전부대는 MEK 조직원을 알지도 못하고 훈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허시는 전했다,

이란 핵과학자 암살 주범으로 드러나


MEK 측도 부인했다. MEK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앨런 거슨은 MEK는 공식적으로 반복해 폭력을 포기했다면서 네바다 훈련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만약 이 같은 훈련이 사실이라면 “MEK를 테러단체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겠다는 국무부의 결정과 맞지 않다”면서 “테러조직에 자금을 댈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외국 테러단체 명단에 오른 조직원을 어떻게 미국이 훈련시킬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MEK는 또 지난 1월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이던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 암살을 비롯해 2007년 이후 5명의 핵과학자 사망의 주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 NBC방송은 지난 3월 오바마 행정부 관리 2명의 말을 인용해 5건의 이란 핵과학자 암살을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로부터 자금과 훈련을 지원받은 MEK 조직원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관리들은 MEK 활동과 미국의 개입은 부인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허시는 이란 핵과학자 사망 배후에 모사드가 미국의 정보를 토대로 MEK와 함께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특수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란 안에서의 미국과 MEK의 연계는 오랫동안 이뤄져왔다”면서 “현재 이란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MEK 대리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시 기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MEK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공작을 하기 위해 활용해온 ‘비밀병기’인 셈이다.

 

MEK를 이란 체제 변화를 위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의 이란 핵정책에 비판적인 폭스뉴스 인터넷판은 4월 16일 MEK를 적극 활용할 것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충고하는 내용을 담은 톰 리지 초대 국토안보부 장관의 기고문을 실었다. 리지 전 장관은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개발 야망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투쟁해왔지만 미국이 지금 배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외교를 통한 제재나 미사일을 이용한 전쟁이 아니라 이란의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야권은 탄압을 받아 지리멸렬하고 이란 신정체제 타도를 목표로 활동해온 MEK도 쫓겨나는 등 박해를 받아왔지만 이란 당국은 MEK를 현실적인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 국무부가 MEK를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란 당국에 살인면허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