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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16]내부고발자를 간첩으로 모는 미국 정부(2015.05.26ㅣ주간경향 1127호)

또 한 명의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간첩법(Espionage Act)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제프리 스털링(47). 변호사이자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다. 1990년대 이란 핵 관련 정보를 뉴욕타임스 제임스 라이즌 기자에게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스털링은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연방법원 1심 판결에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스털링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라이즌 기자가 법정 증언을 거부하면서 몇 년을 끌어오다 결국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취재원 공개를 강요하지 않기로 하면서 마무리됐다. 라이즌은 2006년 자신의 책 <스테이트 오브 워>를 통해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미국이 핵시설과 관련해 엉터리 설계를 전달하려 한 CIA의 비밀작전 ‘오퍼레이션 멀린’을 폭로한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희생자는 모두 8명이다. 이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역대 모든 행정부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미국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부고발자보호법(Whistleblower Protection Act)을 1989년에 만들었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에서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사례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내부고발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간첩법은 무엇일까.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내부고발자들은 모두 8명이다. 제임스 힛셀버거를 제외한 토머스 드레이크, 샤마이 라이보위츠, 첼시 매닝, 스티븐 김, 제프리 스털링, 존 키리아쿠, 에드워드 스노든(왼쪽부터). / 알자지라방송·커먼드림스 웹사이트 캡처


간첩죄, 역대 모든 행정부 때보다 많아
오바마 행정부에서 처음으로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된 인물은 국가안보국(NSA) 직원 토머스 드레이크이다. 드레이크는 2010년 4월 NSA의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취득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 12월 NSA의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을 보도하자 연방수사국(FBI)은 드레이크를 정보 제공자로 지목했다.

그가 언론에 폭로할 목적으로 정보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 정부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1년 6월 그에게 적용한 10개 혐의를 모두 취하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하나의 혐의를 제외하고는 감형을 조건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합의를 뜻하는 플리바게닝을 거부해 진정한 시민 불복종을 실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5월에는 변호사이자 FBI에서 통역요원으로 일해온 샤마이 라이보위츠가 다른 블로거에게 비밀정보 5건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20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보를 받은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그해 7월에는 이라크에서 미군 정보분석병으로 근무하던 브래들리 매닝(나중에 첼시 매닝으로 개명) 일병이 비리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일지와 국무부의 외교전문 등 엄청난 양의 국가기밀을 제공해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매닝은 3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해 8월에는 국무부에서 선임보좌관으로 일하던 한국계 핵과학자 스티븐 김 박사가 폭스뉴스에 북한 추가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한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오랜 법정 다툼 끝에 검찰과 변호인 간 플리바게닝을 통해 중범죄 인정 및 징역 13개월형에 합의한 뒤 복역하다 지난 12일 형기 만료일을 한 달여 남겨두고 사회 재적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가석방됐다.

그해 12월에는 위에서 언급한 전 CIA 직원 스털링이 간첩법 혐의로 기소됐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당초 스텔링 선고는 4월 24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전날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의 판결 때문에 연기됐다는 사실이다. 불륜관계를 맺은 여성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퍼트레이어스 전 국장에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돼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2012년 1월에는 CIA 전 직원 존 키리아쿠가 CIA의 고문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정보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히고, 나중에 관련 CIA 요원의 이름을 언론에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다. CIA 고문 프로그램과 관련해 유일하게 기소된 그는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2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12년 12월 해군 통역요원 제임스 힛셀버거는 기밀자료를 후버연구소에 넘긴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듬해 3월 간첩 혐의는 취하됐다. 그리고 2013년 6월 NSA의 불법 정보수집을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간첩죄 혐의로 기소됐다. 스노든은 2013년 6월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에 체류 중이다.

불륜여성에게 기밀을 전달했으나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불륜여성. / 가디언 웹사이트 캡처


오바마 행정부에서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8명의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드레이크와 키리아쿠, 라이보위츠, 힛셀버거에게 적용된 간첩죄는 나중에 취소됐지만 대부분이 언론에 정보를 공개할 목적으로 기밀을 취득·누설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의 알권리, 즉 공익 목적으로 언론에 기밀을 누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이를 간첩법으로 처벌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간첩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간첩법은 약 1세기 전인 1917년에 탄생됐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간첩활동에 관여한 자를 처벌할 목적이었다. 다시 말하면 외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지 언론인에게 기밀자료를 제공해 미국민들과 함께 공유하려는 기밀누설자나 내부고발자를 처벌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 이전에 정보누설 혐의로 간첩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인 1970년 미국의 베트남전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5년 해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던 정보분석가 사무엘 모리슨,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방부 정보분석가로 일하던 로런스 프랭클린 3명뿐이다. 국방부에서 분석전문가로 일한 엘스버그는 1970년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역사를 담은 1급 기밀문서를 뉴욕타임스에 넘겨줬다. 뉴욕타임스 보도를 계기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명분이 된 통킹만 사건이 조작된 사실이 밝혀졌다.

닉슨 행정부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뉴욕타임스를 제소해 1심에서 보도 정지 판결을 이끌어냈으나 연방 대법원은 신문사의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모리슨은 1984년 소련의 핵추진 항공모함 제조시설 관련자료를 제인스디펜스 위클리에 넘겨줬다는 등의 혐의로 이듬해 정부 재산 절취 및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년형을 선고받았고, 2001년 빌 클린턴 행정부 마지막 날 사면됐다. 프랭클린은 미국의 이란 정책에 관한 비밀자료를 유대계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통해 이스라엘에 넘겨준 혐의로 간첩죄로 기소돼 2006년 1월 약 1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나중에 가택연금 10개월로 감형됐다.

오바마, 국가안보 이유로 간첩죄 남발
오바마는 2008년 대선 유세 때 정부의 투명성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오바마는 왜 공약을 어기며 간첩죄 적용을 남발하고 있을까. 그가 내세운 명분은 국가안보였다. 오바마는 올해 초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 누설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면서 “나는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의 태도 변화는 당연히 내부고발자 옹호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내부고발자 옹호단체인 익스포즈팩트닷오르그의 노먼 솔로몬 사무총장은 “스털링에 대한 선고는 내부고발자와 언론에 대한 끝없는 전쟁을 의미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정보의 흐름을 단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CIA 정보분석관인 레이 맥거번은 지난 12일 컨소시엄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잠재적인 내부고발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기자들과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전략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스노든과 스털링 같은 내부고발자들은 결국 애국자로 인정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