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시작된 미국 메릴랜드주 최대 도시 볼티모어 폭동 첫날에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흑인 어머니가 시위에 참가한 아들을 훈계하는 동영상이었다. 미 ABC 방송의 볼티모어 지역 제휴 방송 WMAR 카메라에 잡힌 영상에는 흑인 여성이 10대 흑인 아들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시위 참여를 막는 모습이 담겼다. 이 여성은 TV에서 자신의 아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본 뒤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 손으로는 아들이 쓴 검은 마스크를 벗기기 위해 애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소년의 머리를 계속 때린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 “전기충격총에 맞고 싶으냐”고 말한다. 여성은 나중에 토야 그레이엄으로, 아들은 16세 마이클로 밝혀졌다. 그레이엄은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하나뿐인 아들이다. 그가 또 한 명의 프레디 그레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프레디 그레이(25)는 이번 볼티모어 폭동사태를 촉발시킨 흑인 청년이다. 그는 지난 4월 12일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척추를 심하게 다쳐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뒤 숨졌다. 그의 체포와 부상 경위 등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공권력을 사용하고 응급처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27일 그의 장례식이 열린 직후 벌어진 항의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이 동영상은 온라인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페이스북에서만 그날 하루 1800만건 이상이 조회됐다. ABC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은 어머니의 아들 훈계방식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보수잡지 스탠더드 위클리의 짐 스위프 부편집장은 트위터에 ‘올해의 어머니’라는 트윗을 올리면서 이 말은 급속도로 퍼졌다. 앤서니 배츠 볼티모어 경찰국장은 “자기 아이들을 저렇게 책임질 줄 아는 부모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6년 미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인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주)은 볼티모어 폭동이 “인종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파괴와 아버지의 부족 탓”이라며 합세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경찰이 4월 30일(현지시간) 경찰의 구금 중 의문사한 프레디 그레이의 죽음에 항의해 일어난 폭동 사태로 내린 야간 통행금지 시간에 시위를 벌인 시위자를 체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트위터에 ‘올해의 어머니’로 치켜세워
하지만 이 동영상은 파급력이 컸던 만큼 볼티모어 폭동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보수 웹사이트와 보수 논객들은 이 동영상을 이번 폭동이 흑인 비행 청소년들의 탓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이용했다. 이번 폭동이 흑인 문제가정의 자녀에 대한 교육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이번 사태를 편협적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있다. 과연 볼티모어 폭동의 원인은 비행 흑인 청소년들과 이들을 잘못 가르친 흑인 부모에게만 있을까. 볼티모어 폭동이 일어나자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분석했다. 존 레니 쇼트 메릴랜드대 교수의 분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경찰의 잔혹성, 경찰과 흑인 간의 신뢰 부족, 흑인의 경제적 기회 및 사회적 이동 제한을 꼽았다.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잉단속이나 폭력과 같은 잔혹성이 흑인 폭동의 잠재적 원인이 된 지 오래다. 멀게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짧게는 지난해 8월 미주리주 퍼거슨 사태가 그랬다. 이번의 경우 그레이 체포 및 사망 과정에 연루된 경관 6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경찰은 그레이를 체포한 뒤 경찰서로 압송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가 아닌 네 차례 멈춰선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의 폭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레이는 지난 4월 12일 경찰과 눈이 마주치자 달아나다 체포됐다. 체포과정에서는 경관 2명이 그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면서 제압한 뒤 축 처진 그를 경찰차로 끌고 가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과잉행동 논란이 일었다. 체포된 뒤 차량으로 경찰서로 이동하는 약 40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푸는 것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독립언론 인터셉트는 ‘경찰의 군대화’가 경찰의 폭력성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군대화 뒤에는 1991년 걸프전 이후 남아도는 군 무기와 장비를 경찰에 지급하기 위해 미 정부가 1997년 도입한 ‘1033 프로그램’이 있다. 국방부는 이를 통해 기관총은 물론 경장갑차와 지뢰방호차량까지 지원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그동안 지원된 금액은 2013년 4억5000만 달러 등 43억 달러에 이른다. 메릴랜드주 경찰은 2006년 이후 1200만 달러 규모의 장비와 무기를 지원받았다. 이 가운데 볼티모어는 최소 55만3000 달러 상당의 군 장비와 소총 283정을 받아 경찰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다고 볼티모어 선이 전했다. 결국 볼티모어 경찰은 시민에 대한 잔혹한 대응 결과 2011년 이에 대한 보상금으로만 57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15세 소년은 더러운 자전거를 탄다는 이유로, 26세 임신부는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봤다는 이유로, 65세 교회 집사는 담배를 말았다는 이유로, 87세 할머니는 다친 손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각각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고 인터셉트는 전했다.
지난 4월 12일 경찰에 체포돼 연행되는 프레디 그레이가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뉴욕포스트 웹사이트 캡쳐
폭동의 원인은 흑인 사회 소득 불균형
이번 폭동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흑인사회에 만연하는 가난과 소득 불균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폭동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자들의 의사표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폭동은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볼티모어 흑인사회가 그레디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미국 사회에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볼티모어는 미국에서 6번째로 가난한 도시다. 특히 그레디가 살았던 길모어 홈스를 포함하고 있는 샌드타운-윈체스터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다. 16~64세의 절반 이상(51.8%)은 실직상태다. 미 전체 실업률은 5.9%다. 평균 가구 연소득은 2만4000 달러로, 미 전체 가구 평균 연소득 5만3046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전체 가구의 25%가 공공부조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8월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총격에 숨진 뒤 소요사태를 겪은 미주리주 퍼거슨과 비슷하다. 기대수명은 69세로, 미국 전체 79세보다 10년이나 짧다. 인구 10만명당 범죄율은 35명으로 미국 내 최상위권이다. 60% 이상은 그레디처럼 고교 졸업장도 없다. 동네의 집 33%는 비어 있다. 흑인이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비율이 백인보다 5.6배나 높은 등 흑인의 높은 범죄 수감률은 심각할 정도다.
하지만 흑인을 살해한 백인 경찰은 대부분 불기소 처분되거나 무죄석방되는 등 엄밀한 의미의 사법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배심이 퍼거슨 사태를 촉발한 대런 윌슨 경관에게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2012년 2월 플로리다주 샌퍼드에서 흑인 고교생 트레이본 마틴을 총으로 살해한 백인 자경단원 조지 짐머맨이 이듬해 무죄평결을 받고 석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이 이번 사태에서 연루 경관들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번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일고 있다. 2016년 미 대선의 민주당 경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때마침 ‘사법정의’ 회복을 강조했다. 클린턴은 지난 4월 29일 “우리는 사법제도가 균형을 잃도록 만들었다. 미국 인종과 정의에 관한 냉혹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범죄자를 감옥에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정부에 내려가는 연방정부 예산이 전쟁을 위한 무기를 사들이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LA타임스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스는 볼티모어 폭동을 LA 흑인 폭동의 해결되지 않은 그림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볼티모어 사태는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지를 환기시킨다”면서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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