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미국 매체 리포티들리는 미국과 유럽의 퇴직연금과 국부펀드, 투자은행 등이 예멘 공격에 활용된 폭탄 제조회사에 투자한 사실을 보도했다. 개인이 수익을 위해 투자한 돈이 부지불식간에 ‘블러드 머니’가 되는 예다.
블러드 머니(Blood Money). ‘피 묻은 돈’이라는 뜻이다. 사전을 보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번 돈’이나 ‘살해된 사람의 유족에게 주는 위자료’로 풀이돼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주로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세계 유수의 군수기업이 전쟁을 통해 돈을 번다”는 언사에서 ‘번 돈’을 우리는 블러드 머니라고 부른다. 때문에 블러드 머니는 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돼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무기 제조업자나 무기산업 투자자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며 무기산업 종사자를 강하게 비난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블러드 머니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블러드 머니는 군수업자나 그와 관련된 이해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개인들이 수익을 위해 펀드에 투자하는 돈이 부지불식간에 블러드 머니가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는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쟁은 국제적으로 돈벌기 위한 사기’
지난 6월 24일, 실시간 르포를 위해 만들어진 미국 매체 리포티들리(reported.ly)는 미국과 유럽의 퇴직연금과 국부펀드, 투자은행 등이 예멘 공격에 활용된 폭탄 제조회사에 투자한 사실을 보도했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미국이 설계하고 독일이 이탈리아 공장에서 제조한 폭탄 부품이 사우디 항구를 통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로 들어가 폭탄으로 제조된 뒤 대통령을 축출한 예멘 시아파 반군인 후티를 공격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는 지난 5월 예멘 사이버군이라는 친후티 해킹 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를 해킹해 확보한 문서를 분석한 것이다. 리포티들리는 세계적인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야르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대량감시를 특종보도한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와 손잡고 만든 미디어그룹 퍼스트룩미디어 산하의 인터셉트가 만들었다.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동맹군들이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의 근거지인 예멘 북부 청사 공격에 사용한 폭탄 제조사인 RWM 이탈리아 라벨이 새겨진 폭탄 사진들과 폭격 장소. 휴먼라이츠워치와 리포티들리는 이 폭탄이 MK80 폭탄 시리즈의 하나라고 확인했다. / 리포티들리 웹사이트 캡처
보도에 언급된 폭탄 제조업체는 독일 군수업체인 라인메탈이다. 주요 투자자들은 미국 뉴욕주 퇴직자 연금과 노르웨이 국부펀드, 칼리지 아메리카를 포함한 미국과 유럽의 연금과 JP모건체이스, 알리안츠, HSBC 등 투자은행 약 200곳에 이른다. 독일 활동가들은 이 회사의 무기 수출을 하지 말 것을 독일 정부에 로비하고, 주요 주주들에게는 주식을 매도할 것도 종용했다. 주요 대주주인 JP모건체이스는 지난 6월 중순 현재 주식 보유율을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지난해 말 보유지분은 1.87%였다. 블룸버그는 올해 이 회사가 1억30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사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유럽연합의 제재로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손실을 입었다는 이유로 독일 정부를 상대로 1억2000만 유로의 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한 자회사가 그리스 무기거래와 관련해 뇌물을 준 혐의로 3700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라인메탈이 제조한 폭탄은 미국이 설계한 MK82·MK83·MK84 등 MK80 시리즈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항공기 투하용 폭탄이다.
사우디 외교부 자료를 보면 폭탄 부품은 라인메탈의 이탈리아 자회사인 RWM 이탈리아 S.p.a에서 제조된 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거쳐 UAE의 무기 제조업체 부르칸 뮤니션 시스템스로 운송됐다. UAE 공군은 지난 3월 하순에 시작된 사우디 주도의 예멘 공습에 참가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폭탄 전문가 마크 히즈네이는 “예멘 북부 정부청사 공격에 사용된 폭탄에서 RWM 이탈리아라는 라벨이 새겨진 폭탄 사진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리포티들리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지금까지 이 폭탄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폭탄이 예멘의 다른 지역에서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라인메탈과 뉴욕주 연금을 감독하는 뉴욕주 회계감사관, JP모건체이스 등 대부분의 연루 투자기관들은 자신들의 확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리포티들리는 전했다.
1961년 1월 고별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 리퍼블리칸시큐리티카운슬 웹사이트 캡처
의원·국방론자·군수업자 공생관계
리포티들리의 보도는 ‘전쟁은 돈벌기 위한 사기(War Is A Racket)’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말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31년 퇴역한 뒤 같은 제목으로 연설하고, 나중에 같은 제목의 책(1935년)을 펴낸 미국 해병 장성 스메들리 버틀러(1881~1940)다. “전쟁은 돈벌기 위한 사기다. 언제나 그래 왔다. 전쟁은 아마도 가장 오래됐고, 손쉽게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고,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업이다. 전쟁은 국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다. 또 이윤은 달러로 계산되지만 손실은 인간의 목숨으로 지불되는 유일한 사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사기’야말로 (전쟁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믿는다. 전쟁이 무엇인지는 ‘내부’의 극소수 사람들만이 알 뿐이다. 전쟁은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가 희생하는 사업이다. 전쟁을 통해 극소수의 사람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버틀러가 이 같은 언급을 하게 된 계기는 1933년 플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전복계획을 폭로하면서부터다. 당초 공화당 지지자에서 1932년 대선을 계기로 민주당 후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지지한 버틀러는 1933년 의회에서 부유한 산업자본가들(제너럴 모터스, JP 모건, 록펠러, 조지 W 부시의 증조부인 프레스콧 부시 등)이 루스벨트 행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하지만 버틀러의 의회 증언 이후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쿠데타 계획을 부인하고, 언론들도 그의 진술을 ‘거대한 사기’로 치부했다. 의회의 최종 보고서에서는 버틀러 진술의 일부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버틀러의 ‘전쟁은 사기’ 언급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을 거쳐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개념으로 발전된다. 소설 <1984>을 통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고 설파했던 오웰은 전쟁의 실체를 이렇게 말했다. “외국과의 전쟁은 부유층이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버틀러의 언급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술이다.
1961년 1월 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별연설에서 “우리는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군산복합체에 의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에 대해 맞서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에 가까울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상존하며 지속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에 전력하던 미국의 체제를 비판한 아이젠하워의 경고는 여전히 울림이 크다. 군산복합체는 21세기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미국에서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의회 의원들과 국방론자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군수업자 간 ‘철의 삼각구도’는 난공불락 철옹성을 만들어 항구 전쟁을 부르짖으며 공생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미국 군수업체의 위상은 전 세계를 압도한다.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세계 10대 군수업체 가운데 미국 기업은 록히드마틴(1위), 보잉(2위), 레이시온(4위), 노스럽그루먼(5위), 제너럴다이내믹스(6위), 유나이티드테크놀러지(8위) 등 6개다. 100대 기업으로 확대하면 39곳이 미국 기업이며, 이들이 차지하는 무기 판매규모는 58%에 이른다. 6대 기업의 점유율은 35%다. 미국 매체 데일리 시플의 릴리 데인 기자는 지난 3월 미국의 전쟁 비용으로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을 계산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미 정부의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을 위해 1시간에 31만3500 달러의 세금을 허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위해 쓴 세금은 시간당 각각 1017만 달러와 36만5297 달러였다. 2001년 미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전쟁 비용으로 들인 세금은 시간당 1054만 달러였다.
'이무기가 쓴 기사 > 월드프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드 프리즘24]'자유의 여신상'을 욕되게 하지 말라(190902/주간경향 1342호) (0) | 2019.08.26 |
---|---|
[월드 프리즘23]미국서 40년을 산 지미 알다우드는 왜 이라크에서 죽었을까(190826/주간경향 1341호) (0) | 2019.08.19 |
[월드 프리즘21]미군기지 건설로 쫓겨난 ‘차고스인의 눈물’(2015.06.30ㅣ주간경향 1132호) (0) | 2015.06.24 |
[월드 프리즘20]‘인권 의장국’ 꿈꾼 인권탄압국 사우디(2015.06.23ㅣ주간경향 1131호) (0) | 2015.06.17 |
[월드 프리즘19]NSA보다 더 무서운 NSAC(2015.06.16ㅣ주간경향 1130호) (0) | 2015.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