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강경론자들의 역사 지우기… 기단에 새긴 시구 해석 왜곡
미국 이민당국 책임자인 켄 쿠치넬리 시민이민국(CIS) 국장대행이 지난 8월 15일 워싱턴 국토안보부 본부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배경으로 웃으며 셀카를 찍고 있다. 쿠치넬리 국장대행은 셀카를 찍은 뒤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없앴다. 쿠치넬리 트위터
2015년 국내에서 개봉된 미국영화 <이민자>(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폴란드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채 여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에바(마리옹 코티아르 분)가 겪는 애환을 그렸다. 병에 걸린 동생을 이민심사국이 있는 뉴욕만의 엘리스섬에 남겨둔 채 미국 땅을 밟은 에바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는 장면과 먹고살기 위해 분장한 자유의 여신상 모습은 이민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뉴욕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10월 28일 이후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상징물이다. 한때 이민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엘리스섬과는 불과 1㎞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심리적 거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을 상징하는 만큼 멀고도 험난했다. 영화 <이민자>에서 보듯 이민자는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민을 둘러싼 갈등은 미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으며,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특히 불법이민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극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강경론자들은 자유의 여신상의 상징성과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도발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을 욕되게 하는 자들
이들이 집중 겨냥하는 대상은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기단)에 새겨진 에마 래저러스(1849~1887)의 시 ‘새로운 거상’(1883)이다. 그 중에서도 ‘지치고 가난한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라는 시구다. 이 시구는 미국으로 오는 모든 이민자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시구의 본래 의미를 헐뜯고 깎아내리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며 이민의 역사를 다시 쓰려 하고 있다.
지난 8월 13일, 미 이민당국인 국토안보부 산하 시민이민국(CIS)의 책임자인 켄 쿠치넬리 국장대행(51)은 공영라디오 NPR의 <모닝 에디션>에 출연해 이 시구를 ‘두 발로 설 수 있는 자(자립할 수 있는 자)’만 환영하는 의미라고 깎아내렸다. 쿠치넬리 국장대행은 진행자 레이첼 마틴으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래저러스의 시구(지치고 가난한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또한 미국 에토스의 일부분이라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 두 발로 설 수 있고 ‘퍼블릭 차지(public charge)’가 되지 않을, 지치고 가난한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자유의 여신상 동판은 ‘퍼블릭 차지’ 법안이 처음 통과된 바로 그때 설치가 됐는데, 시기가 매우 흥미롭다.”
쿠치넬리가 말한 ‘퍼블릭 차지’ 개념은 1882년 미 정부가 퍼블릭 차지가 되는 사람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의회가 처음 만들었다. 당시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 이래 퍼블릭 차지는 최저생활 보장을 위해 정부의 도움을 받는 사람, 즉 저소득층 의료제도인 메디케이드나 식품 구입용 쿠폰이나 전자카드 형태로 식비를 제공받는 생활보호대상자를 의미한다. 쿠치넬리의 언급은 단도직입적으로 생활보호대상자는 이민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과 궤를 같이하며, 자유의 여신상의 의미를 명백히 왜곡한 것이다.
쿠치넬리는 같은 날 밤 CNN에 출연해서는 래저러스의 시구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를 축소했다. 쿠치넬리는 아버지 쪽은 이탈리아계, 어머니 쪽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는 그동안 불법이민자의 대학 입학 금지와 직장 내 영어 사용 등을 강조하는 등 트럼프의 강경 이민정책을 지지해왔다.
에마 래저러스와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동판에 쓰인 그의 시 ‘새로운 거상’. 위키피디아
래저러스의 시 의미는 ‘누구든 환영’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자에 대한 쿠치넬리의 공격은 이어졌다. 그는 이틀 뒤인 8월 15일, 전날 시민단체 ‘유나이티드위드림’과 ‘무브온’이 국토안보부 본부에 설치한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없애버렸다. 없애기 전 그는 셀카를 찍어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민자들을 환영한다’는 문구도 지웠다. 무브온의 코니 볼 국장은 성명을 내고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없앤 것은 “이민과 미국적 가치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볼 국장은 또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이 난민이나 삶을 찾으려는 누구든 언제나 환영한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라면서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자와 난민신청자의 아이들을 가두거나, 가족을 강제로 분리하거나, 불법적으로 난민신청을 막거나, 무슬림의 입국을 막는 등 비합법적이자 비도덕적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쿠치넬리의 자유의 여신상 의미 왜곡 발언은 민주당 대선주자 등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는 우리의 가치들이 새겨져 있다. 이는 바뀔 수 없다”면서 “우리는 그런 가치들과 이민자 공동체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정부가 마침내 우리가 내내 알고 있던 사실을 인정했다. 그들은 자유의 여신상이 백인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82)는 쿠치넬리의 언급에 대해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비미국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난 8월 14일 밤 CNN의 <앤더슨 쿠퍼 360>에 출연해 “나는 두 차례 난민을 겪었다. 한 번은 나치 때로 우리는 영국에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체코를 점령했을 때 미국으로 왔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자유의 여신상이 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종종 재킷 브로치로 자신의 대외정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날 단 브로치 모형은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울고 있다’는 표현은 미국 내 이민자들의 역할과 성취를 무시할 때 종종 나온다. 2년 전인 2017년 8월 초, 트럼프 행정부가 합법이민 제한 방침을 발표하자 인권단체 안네 프랑크 센터는 ‘자유의 여신상이 트럼프가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변기 속으로 버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바 있다.
지난 7월 31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임보좌관인 스티븐 밀러(34)가 래저러스의 시구를 헐뜯고 깎아내렸다. 밀러는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와 자유의 여신상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밀러는 트럼프 이민정책의 설계자라 불릴 만큼 강경 극우파다. 아코스타는 지난해 중간선거일인 11월 7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다 트럼프로부터 “마이크 내려놔.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트럼프 행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다. 아코스타가 자유의 여신상에 적힌 래저러스의 시구를 인용하자 밀러는 “당신이 언급한 시는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자유의 여신상 원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밀러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래저러스 시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밀러도 어머니 쪽이 과거 제정러시아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의 후손이다.
쿠치넬리와 밀러뿐만 아니다. 비합법적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 지도자를 지낸 데이비드 듀크(69), 네오나치이자 백인우월주의자 싱트탱크인 국가정책연구소(NPI) 회장 리처드 스펜서(41)도 자유의 여신상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유명하다. 스펜서는 2008년 다문화주의와 불법이민자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대안우파’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뉴욕만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위키피디아
‘자유의 여신상이 울고 있다’
이민자 환영의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은 애초에는 이민과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미시간대 후앙 콜 교수(역사학)에 따르면 자유의 여신상 건립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상징물로 시작됐다. 남북전쟁(1861~1865)에서 남부연방이 패배하자 미 헌법을 찬미하는 소수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해방된 흑인들의 미국을 위한 자금을 모을 목적으로 프랑스해방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미국의 노예해방을 기념하는 기념물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의 기부자들은 영국을 물리친 프랑스-미국연합의 기념물로 여겼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조각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도 개인적인 자유에 관심이 많았다. 바르톨디는 독일계 개신교 출신의 프랑스인이었고, 당시 개신교는 프랑스에서 소수파로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다. 실제로 1886년 10월 28일 자유의 여신상 헌정식 때 연설을 한 글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노예나 이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민자와의 관련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받침대 동판에 새겨진 래러저스의 시 ‘새로운 거상’은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건립을 위한 자금을 모을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미 정착 초기 유대인 가문 출신으로 뉴욕에서 태어난 래저러스는 헤브루이민원조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870년대 말~1880년대 초 이민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동유럽에서 벌어진 유대인 집단학살이나 반유대인 폭동을 피해 온 유대인 이민자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그런 감동이 그의 시 ‘새로운 거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민에 대한 래저러스의 생각은 진보적이었다. 그는 전문적인 기술이나 학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민자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미국은 도덕적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진보를 위해 억압받은 자들의 피난처가 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교육과 지원을 통해 미국을 더 위대한 국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이민자에 대한 래저러스의 생각은 당시나 지금이나 논쟁적이라 할 수 있는 주제다.
래저러스를 이야기할 때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단일토지세를 주장한 저서 <진보와 빈곤>으로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다. 래저러스는 조지의 친구이자 찬미자였다. 미 정착 초기 유대인 가문 출신인 래저러스는 당대의 정치경제학자였던 조지의 급진개혁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빈곤 철폐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조지의 뉴욕시장 선거를 돕기도 했다. 조지는 부의 확산을 위해 공공소유와 토지개혁을 주장했다. 특히 그는 물질적 제한선뿐만 아니라 도덕적 제한선도 강조했다. “문명이 진보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양심과 더 예리한 정의감, 더 따뜻한 형제애, 더 높고 고귀하고 진실된 공공의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래저러스는 “정의는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는 조지의 주장에 감동을 받았다.
이민 제한 시작은 1882년 중국인배제법
결국 자유의 여신상은 래저러스가 의도한 대로 이민자를 환영하는 상징물이 됐다. 래저러스의 시에는 ‘월드 와이드 웰컴’이라는 구절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오든 환영’이라는 뜻으로, 쿠치넬리가 말한 ‘두 발로 설 수 있는 자’와는 완전히 대비된다. 하지만 이민 제한의 역사는 미국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도 사실이다. 래저러스 시절 유럽인에 대한 이민 제한은 없었다. 당시 이민은 엘리스섬에서 실시한 간단한 건강진료만 통과하면 누구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미국에서 5년간 살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목격자만 있으면 시민권도 취득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인종이나 계급을 근거로 이민을 차별하기 시작한 계기가 1882년 제정된 중국인배제법이다. <뉴요커> 편집장 마이클 루오에 따르면 당시 공화당의 존 프랭클린 밀러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은 그해 2월 중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제한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 법안은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종적 적대감을 지닌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 덕분에 환영받았다. 반면 같은 당 조지 프리스비 호어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은 반대했다. 호어에 따르면 1881년 이민자는 72만명이었다. 그 중 중국인은 2만1000명에 불과했다. 호어는 “성조기의 별은 모든 국가를 의미한다. 캘리포니아에 온 수십만 명의 중국인은 모든 것을 바꿨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체스터 아서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중국인 노동자는 10년간 입국이 금지됐으며, 이미 정착한 중국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이 법은 수정을 거듭하다 1943년 태평양전쟁 때 중국이 미국의 연합국으로 싸웠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중국인배제법은 이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특히 미국이 특정 외국인을 배제할 필요로 국경에 대한 통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미 역사학자 에리카 리는 “1882년 미국은 어떠한 제한이나 국경, 통로 없이 외국인을 환영해 온 걸 중단하는 대신 국경을 통제하는 국가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후 1965년 이민국적법을 도입한 미국은 기술이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예외적인 능력을 가진 자와 미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친척에게 이민의 우선권을 부여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다. 트럼프는 ‘다시’에 방점을 두지만 처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이들이 이민자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민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논쟁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자유의 여신상과 래저러스의 시구를 둘러싼 논란은 이민과 관련한 미국의 오랜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완벽하지 않았다. 이민 온 모든 세대는 존재 자체에 대한 적대감과 자식들의 기회 향상이라는 만족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미 국가에는 ‘자유로운 자들의 땅이자 용감한 자들의 집’이라는 구절이 있다. 누군가가 아무리 역사를 지우고 다시 쓰려 해도 미국의 건국 윈칙인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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