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말~5월 초 일어난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폭동을 떠올릴 때면 늘 두 장면이 생각난다. 주지하다시피 볼티모어 폭동은 경찰에 체포돼 구금 중이던 프레디 그레이라는 흑인 청년의 의문사가 원인이었다. 그레이는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척추를 다쳐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만에 숨졌다. 그의 체포 과정과 부상 경위 등이 공개되지 않자 그동안 자신들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불만을 품어온 흑인들이 그레이의 장례식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첫 장면은 군사작전하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시위진압 경찰이다. 당국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주 방위군과 경찰 특수기동대(SWAT)는 물론 각종 첨단장비들을 동원했다. 감시용 드론(무인비행기), 자동소총을 탑재한 경장갑차, 산탄총과 연막탄, 최루탄 발사기, 적의 무선통신장비를 도·감청하는 헤일스톰과 스팅레이, ‘소리대포’로 불리는 LRAD 등이다. 헤일스톰은 1마일 안에서 이뤄지는 모바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LRAD는 인간의 청력을 영구 손상시킬 수 있는 ‘전파전’ 장비다. 군사용이지만 2014년 8월 퍼거슨 사태 때 처음 활용했다. 두 번째 장면은 폭동 첫날 시위에 참여한 10대 아들을 훈계하는 흑인 엄마 동영상이다. 동영상은 폭동 첫날 최대 관심거리였다. 볼티모어 지역방송 카메라에 잡힌 영상에는 흑인 여성이 시위 현장에서 아들을 때리며 쫓아내는 장면이 50초가량 담겨 있다. 엄마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전기총에 맞고 싶냐?” “돌을 내려놓으라”고 다그친다. 엄마는 나중에 방송 인터뷰에서 “내 아들이 또 한 명의 프레디 그레이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군 장비로 무장한 시위진압 경찰의 모습은 ‘경찰의 군대화’ 논란을 불렀다. 경찰의 군대화는 1991년 걸프전 이후 남아도는 군 무기와 장비를 경찰에 지급하기 위해 미 정부가 1997년 도입한 ‘1033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그동안 43억 달러가 지원됐다. 논란을 빚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폭동 사태 후 행정명령으로 경찰에 군 장비를 도입하는 것을 제한·금지하도록 했다. 반면 파급력이 컸던 동영상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역할을 했다. 보수 웹사이트와 논객들은 흑인 엄마를 ‘영웅’이라 칭송하며 부모들에게 이 엄마처럼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폭동이 흑인 비행 청소년들의 탓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폭동의 원인을 흑인 문제가정의 자녀에 대한 교육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태를 편협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문가들은 폭동의 원인으로 경찰의 잔혹성, 경찰과 흑인 간의 신뢰 부족, 흑인의 경제적 기회 및 사회적 이동 제한 등을 꼽는다.
볼티모어 폭동 6개월 뒤 서울 한복판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두 사건은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닮은점이 느껴진다. 시민(국민)을 적으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경찰은 애초에 유휴장비 재활용 차원에서 군 장비를 도입했지만 결국 ‘테러와의 전쟁’이 정당성을 부여했다. 한국 경찰도 시위대 속에 불순분자가 섞여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불순세력에 대한 공권력 행사는 정당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 결과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다.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자국의 군대화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파시스트 국가의 그림자를 봤다.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일 때 국내에서도 같은 우려가 나왔다. 현재 미국의 모습이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인가. 머지않아 물대포보다 더 위력적인 살상 장비들이 시위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나 않을까 두렵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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