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을 최근에야 봤다. 지난해 개봉 때는 물론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사태 때도 보지 않았던 영화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런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된 계기는 최근 물의를 빚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건이 아닌가 싶다. 영화 내용은 얼추 알고 있었지만 송 전 주필 사건이 터지면서 도저히 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교도소에 수감된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 분)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개·돼지’ 발언이나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드립도 ‘오징어 안줏거리’와 ‘국민의 냄비 근성’ 발언 앞에서는 초라할 정도였다. “오징어 씹어보셨죠?… 이빨 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씹겠습니까?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살기도 바쁘고….” “… 우린 끝까지 질기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얘기는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얘기는 울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얘기는 욕할거리를 주는 거죠. 열심히 고민하고 울고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좀 풀다 보면은 제풀에 지쳐버리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영화가 아무리 현실을 사실대로 묘사했다고 하더라도 현실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그게 영화의 묘미다. 하지만 송 전 주필 사건은 이를 무너뜨렸다. 이강희 대신 송희영을, 미래자동차 대신 대우조선해양을 대입하면 현실 그 자체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착잡함이, 본 뒤에는 참괴함이 엄습했다. 900만명이 넘는 관람객과 나처럼 집에서 본 이들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언론인을 한통속으로 비난했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부자들>을 보고 난 뒤, 몇 달 전에 본 영화를 떠올렸다. <내일을 위한 시간>(원제는 1박2일)이었다. <내부자들>만큼이나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이유는 달랐다. 우울증으로 휴직했다가 복직을 꿈꿔온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금요일에 친한 동료의 전화를 받는다.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산드라는 투표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사장으로부터 월요일 재투표 약속을 받아낸다. 남은 시간은 주말, 1박2일뿐이다. 망설임 끝에 동료들을 찾아가지만 ‘보너스를 포기해달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강요된 신자유주의 속에서 부유하는 신세가 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지만, 감독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현실에는 이강희와 같거나 산드라와 같은 인생이 존재한다. 극과 극이 대비되는 상황이지만 선택은 개인의 몫만은 아닐 게다. 이강희나 산드라의 삶은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끊이지 않는 정경유착, 권언·금언유착, 법조비리처럼 지금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비정상의 증거들은 이번 추석명절의 최고 안줏거리가 될 것이다. 다만 이강희의 마지막 대사와 같은 이유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들이 바라는 일일 테니까. 아울러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 하지 말고 연대나 작은 행복의 가치에 위안받았으면 한다. 그것이 <내일을 위한 시간>이 던지는 메시지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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