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는 <뉴욕타임스>의 풍자 만평을 봤을 때 ‘머리 둘 달린 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1959년, 옛 소련 의사 블라디미르 데미호프는 작은 개 머리 부분을 잘라 큰 개 어깨에 접붙여 ‘괴물’을 만들었다. 작은 개는 큰 개의 심장에 의존해 살지만 괴물은 오래 살지 못했다. 나흘 만에 죽은 괴물은 박제가 돼 독일 박물관에 기증됐다. 데미호프는 장기이식 수술의 선구자였다. 머리 둘 달린 개 실험은 그 일환이었을 터이다. 실험 사진은 당시 <라이프>지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실험 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데미호프는 인류의 장기이식 수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대표적인 ‘배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비판 받는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에서 이를 소개한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데미호프의 실험이 결국 ‘머리 둘 달린 인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머리 둘 달린 인간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뉴욕타임스> 만평과 머리 둘 달린 개는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 현실과 맞물리면서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순실과 박 대통령이 머리 둘 달린 인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상상의 끝은 이렇다. 두 사람은 안 지 40년 가까이 됐지만 최순실이 박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최순실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도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작은 개가 죽으면 큰 개도 죽는 법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상식을 초월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으로 여겼다. ‘배반’의 캐릭터 박 대통령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절망에 빠진 국민은 딜레마 속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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