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2월 22일(현지시간) 네바다 코커스에서 승리한 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3월 3일 ‘슈퍼화요일’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할 경우 ‘샌더스 대세론’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EPA연합뉴스
‘버니겟돈’, ‘네버 샌더스’, ‘스톱 샌더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9)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표현들이다. 주로 민주당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나온다. ‘버니겟돈’은 샌더스의 이름 ‘버니’와 종말을 가져올 대전쟁을 뜻하는 ‘아마겟돈’의 합성어다.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될 경우 민주당 기득권층은 종말을 맞게 된다는 의미다. ‘네버 샌더스’와 ‘스톱 샌더스’는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운동이다.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반대한 ‘네버 트럼프’ 운동과 같다.
이 같은 ‘샌더스 죽이기’는 샌더스가 2월 4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 2월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2월 22일 네바다 코커스를 통해 선두주자로 나서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샌더스가 프라이머리 시즌에서 압도적인 승자가 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오는 7월 13~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슈퍼대의원’ 카드를 이용해 판을 뒤집는 카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샌더스 대세론’ 꺾는 게 1차 목표
샌더스는 네바다 경선에서 나이와 인종 전반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기반을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65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라틴계·백인, 노동자가구·비노동자가구, 대졸자·비대졸자, 민주당원·무소속, 여성·남성 모두 우세를 보였다. 조 바이든 후보(전 부통령)는 65세 이상과 흑인에서만 샌더스를 앞섰다. 샌더스로서는 그동안 리버럴이나 젊은층, 라틴계 비대졸자 백인 위주의 기반을 넓힌 것이다. <트루스아웃>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리버스 피트는 2월 23일 “민주당의 공룡들은 유성을 봤고, 그 유성은 버몬트로부터 오고 있다”고 표현했다. 샌더스에게는 대세론을 펼 수 있는 기회지만 민주당 기득권층에게는 악몽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샌더스는 아이오와에서 피트 부티지지 후보(전 사우스벤드 시장)에게 간발의 차이로 지고, 뉴햄프셔에서는 승리했음에도 주류언론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두 경선에서 각광받은 이는 깜짝 선두를 차지한 부티지지와 3위를 차지한 에이미 클로버셔 후보(상원의원)였다. 샌더스가 2016년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부티지지와 클로버셔의 깜짝 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령에다 사회주의자 대신 중도적이고 젊고 온건한 후보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네바다 승리는 ‘샌더스 대세론’에 쐐기를 박는 의미가 있지만 민주당 기득권층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바이든과 부티지지, 마이클 블룸버그 후보(전 뉴욕시장)가 있다. 특히 3월 3일 14개 주에서 경선이 펼쳐지는 ‘슈퍼화요일’부터 후보로 나서는 블룸버그는 샌더스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대다.
올해 프라이머리는 2016년 프라이머리와 유사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2016년 대선에서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처음부터 2파전을 벌였다. 슈퍼화요일(3월 15일) 이전까지 4차례 대결에서 두 사람은 2 대 2 무승부를 기록했다. 3월 말~4월 초까지 클린턴에 앞서가던 샌더스는 그 후 밀리기 시작하다가 6월 7일 캘리포니아와 뉴저지 프라이머리에서 클린턴에게 패하면서 무너졌다. 당시 샌더스 패배의 원인으로는 중립을 지켜야 할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편향성을 꼽는다. DNC가 비밀리에 클린턴 캠프에 돈을 지원하고, 토론회 질문을 미리 건네주고, 첫 프라이머리 투표가 진행되기도 전에 ‘슈퍼대의원’은 힐러리에게 투표할 것을 다짐했다는 것이다.
3월 3일 ‘슈퍼화요일’ 경선은 올해와 4년 전 프라이머리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로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둬 대세론을 굳힐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그보다는 여러 후보가 승리를 나눠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경우 샌더스의 대세론은 위축돼 다른 후보가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네버 샌더스’ 운동과 클린턴 부부의 영향력
‘네버 샌더스’라는 단어가 미 언론에 등장한 시기는 ‘대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 이전이다. 빌 슈나이더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2월 2일 <더힐> 기고에서 “‘네버 샌더스’ 운동이 나타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당시는 조 바이든 후보와 샌더스가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 때였다. 슈나이더 교수는 “민주당의 선거직들은 이미 자칭 사회주의자가 (대선후보) 티켓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자신들의 능력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 민주당 기득권층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인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는 2월 2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나는 트럼프보다 샌더스에게 투표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트럼프에게 투표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네버 샌더스’ 운동은 샌더스의 네바다 코커스 승리 이후 민주당은 물론 주류 언론의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네버 샌더스’ 운동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상원의원 부부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에 재앙이 된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참사는 애플리케이션 오류 탓이었다. <카운터펀치>에 따르면 이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컨설팅 그룹 ‘섀도’는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참모진으로 구성된 회사로, 버락 오바마 재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타라 맥거완과 피트 부티지지 캠프의 전략분석가의 아내가 만들었다. 부티지지는 아이오와 코거스에서의 박빙의 승리 거두며 돌풍을 일으켰으며, 민주당 기득권층과 월스트리트 기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로 꼽힌다.
온라인 매체 <리더>를 운영하는 레너드 굿맨은 2월 14일 <카운터펀치> 기고 ‘샌더스를 중단시키려는 민주당의 의문스러운 계획’에서 “1990년대 빌 클린턴은 공화당에 기부하는 기업과 똑같은 기업, 월스트리트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기업 돈에 영혼을 판 셈”이라고 주장했다. 굿맨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가짜 야당이 돼 기업 후원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낙태나 동성애자 권리 같은 것으로만 공화당을 공격하고, 긴급구제금융·영구 전쟁·화석연료 추출·영리 건강보험 같은 데 올인했다”며 “반면 샌더스는 대학생 학자금 무료, 전 국민 건강보험, 그린 뉴딜 같은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을 추구했다”고 지적했다.
<그레이존>의 맥스 블루멘탈 편집장은 아이오와 코커스 전날 <트루스디그>의 편집장 로버트 쉬어가 진행하는 <쉬어 인텔리전스>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블루멘탈은 “클린턴 부부는 민주당 리더십 회의를 통해 기업의 돈을 모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다”면서 “이는 그동안 노조나 시민권 연합에 의존해온 민주당 후보와는 매우 다른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조직은 빌 클린턴 퇴임 이후도 사라지지 않고 정당과 정치 그 자체를 삼키기 시작했다”면서 “그 조직은 힐러리에게 넘어가 상원으로도 진출했고, 클린턴글로벌이니셔티브(CGI)로 성장했다”고 했다. 클린턴 부부의 영향력은 당연히 민주당 내 최대 기득권 집단인 DNC에 투영돼 있다.
‘네버 샌더스’ 운동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레먼은 2월 16일 “2016년 공화당 내 ‘네버 트럼프’ 운동파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후보 선정을 막기 위해 막판까지 노력했으나 트럼프의 인기가 워낙 커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슈나이더 교수는 “문제는 2016년 ‘네버 트럼프’ 운동이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면서 반샌더스 민주당에 대한 후폭풍 위험을 경고했다. CNN의 보수적인 진행자 S. E. 컵은 2월 15일 자신의 프로그램 <컵 언필터드>에서 “‘네버 트럼프’의 우려와 ‘네버 샌더스’ 민주당원들의 점증하는 우려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면서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것처럼 버니도 당선될 수 있다. 버니는 트럼프처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트럼프처럼 매우 열성적인 지지층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 기득권층이 선호하는 대선 경선후보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2월 25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전당대회 막판 뒤집기와 블룸버그 띄우기
샌더스가 프라이머리 시즌에서 대의원의 과반수 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오는 7월 13~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가야 한다. 이 경우 샌더스에게 불리할 수 있다. 민주당 기득권층이 ‘슈퍼대의원’을 활용해 뒤집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반대의원의 표수는 3979표다. 슈퍼대의원은 민주당 간부(30명), 하원의원(233명), 상원의원(46명), 민주당 주지사(28명), 민주당전국위원회 회원 중 선출된 사람(434명)으로 구성된다. 표수는 771표다. 전체 대의원의 약 16%를 차지한다. 샌더스가 대선후보가 되려면 전까지 프라이머리 경선에서 1991표를 얻거나, 전당대회 1라운드 투표에서 2376표를 얻어야 한다. 이는 1라운드 투표에서 과반수의 표를 얻는 후보가 없을 경우 민주당 지도부가 특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해 재투표하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슈퍼대의원은 이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지도부의 의견이 반영되는 슈퍼대의원이 움직일 경우 샌더스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 <카운터펀치>의 데이비드 슐츠는 “1952년 이후 중재 전당대회는 없었지만 올해는 어느 대선보다 1라운드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그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샌더스를 대체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 바이든·부티지지·클로버셔·블룸버그 모두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은 블룸버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작가이자 방송 해설가로 활동하는 리즈 피크는 2월 11일 <더힐> 기고에서 “몇 주 안에 민주당은 사회주의자 버니가 재앙적인 패배를 초래할 것을 깨닫고 대체 인물을 찾게 될 것”이라면서 블룸버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소비자보호운동의 선구자이자 3차례 무소속 대선후보였던 랠프 네이더는 <인터셉트>와의 인터뷰에서 “DNC가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트럼프 재선을 막는 후보로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억만장자인 블룸버그는 막대한 부에다 민주당 기득권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연방선거위원회(FEC)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지난 1월에만 광고비로만 2억2000만 달러를 쓰는 등 지금까지 5억 달러를 썼다고 <블룸버그뉴스>가 전했다.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6주간 블룸버그를 다룬 기사는 약 2만4800건인데 비해 샌더스는 5200여 건에 불과하다고 2월 20일 보도했다. CNBC는 2월 24일 블룸버그는 슈퍼화요일 때까지 샌더스를 겨냥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돈을 쏟아붓겠다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카운터펀치>의 데이비드 로즌은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자유파 포퓰리스트 조지 맥거번과 기득권층을 대변한 허버트 험프리가 대결을 펼친 1972년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험프리가 결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지만 대선에서는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완패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기득권층인 민주당 공룡이 샌더스라는 유성을 막을 수 있을지, 아니면 피하지 못해 ‘버니겟돈’을 맞게 될까 라는 것보다 트럼프 재선을 막을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게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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