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레이마니 제거와 존 볼턴의 반격으로 ‘네오콘 귀환’ 논쟁 불붙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19년 3월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안경을 매만지고 있다. 같은 해 9월 해임된 볼턴이 오는 3월 나올 회고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관련해 트럼프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사실이 <뉴욕타임스> 보도로 드러났다. / AP연합뉴스
2020년 초부터 미국에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퇴조하던 네오콘이 다시 등장하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지난 1월 3일(현지시간) 일어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둔 사령관 제거다. 누구보다 이를 반긴 이들이 네오콘이다. 네오콘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제거를 자신들의 오랜 염원인 이란 정권교체의 신호탄으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낸 것처럼 이란과의 전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반격이다. 대표적인 네오콘인 볼턴이 오는 3월 출간 예정인 회고록에 트럼프 탄핵심판의 핵심인 권력 남용과 관련해 트럼프에게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볼턴은 지난해 9월 트럼프와 갈등을 빚다 ‘트위터 해고’를 당했다. 만약 미 상원이 볼턴의 증인 소환을 받아들인다면 트럼프 탄핵절차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미 정가에 후폭풍을 낳을 수 있다.
네오콘은 대외적으로 이란과의 전쟁 여부가 주요 현안이 되고, 대내적으로는 탄핵절차와 재선을 앞둔 중요한 국면에서 중심으로 떠올랐다. 트럼프는 과거 부시처럼 네오콘에게 포위된 건가. 아니면 고립주의자이자 불개입주의자에서 벗어나려는 건가.
네오콘의 귀환이냐, 아니냐
네오콘의 귀환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는 제이컵 헤일브룬 <내셔널 인터레스트> 편집장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1920~2009)이 국제문제를 다루기 위해 1985년에 창간한 격월간지다. 크리스톨의 아들 빌 크리스톨이 만든 <위클리 스탠더드>와 함께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 대외정책을 주도하면서 네오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헤일브룬은 1월 23일
<뉴리퍼블릭> 기고에서 “외교정책 이념으로서의 신보수주의는 지난 20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대실패로 불신을 받아왔지만 한 차례의 드론 공격의 눈부신 섬광으로 국가적 대화 속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네오콘은 미 군사력을 이용해 비우호적인 정권을 타도하는 것을 지지하는 세력을 지칭한다. 아들 부시가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이 대표적인 네오콘 이념을 실현한 사례다. 비록 두 전쟁이 미국을 수렁에 빠뜨리면서 네오콘은 퇴조했지만 솔레이마니 제거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헤일브룬의 주장이다.
헤일브룬은 “솔레이마니 제거는 ‘네오콘군사정보복합체’의 건재를 과시했다”면서 “이의 강경 성향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언론, 싱크탱크, 일부 민주당의 자유주의 강경파에도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네오콘이 승자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의 정책이 세계나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솔레이마니 제거는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와 이란의 신정 강화를 가져왔지만 트럼프가 이란에 대해 초강경 라인을 취함에 따라 네오콘은 오랫동안 열망해온 이란과 전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리치 로리 <내셔널 리뷰> 편집장은 앞서 1월 10일 기고에서 “트럼프가 솔레이마니를 제거했을 때 그의 비판자와 일부 지지자들조차 2003년 이라크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처럼 행동했다”면서 “트럼프는 네오콘도, 고립주의자도 아니다.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세력에 대해 응징하는 잭슨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잭슨주의자는 국제정치학자 월터 러셀 미드가 <스페셜 프로비던스>에서 분류한 미 대외정책의 한 유형이다. 잭슨주의자는 세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도록 두되 미국에 위협이 될 경우 단호하게 대응한다. 로리는 “트럼프의 승리는 집권 공화당의 대외정책 합의를 뒤집었지만 고립주의를 뒤흔든 것은 아니다”라면서 “솔레이마니 제거는 정보기관이나 네오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트럼프의 독특한 세계관의 확실한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노팅엄대의 수만트라 마이트라 연구원은 1월 28일 <페더럴리스트> 기고에서 네오콘이 기관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헤일브룬의 주장에 대해 “글로벌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근거로 민족주의자와 보수 현실주의자의 부상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브라질·인도·호주 등에서도 관찰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또 “자제를 옹호하는 이들 중에도 미사일 공격이나 드론 공격, 해군 훈련을 신보수주의나 군사주의의 증거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강경파와 강경파일지라도 끝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 네오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뉴리퍼블릭> 객원 편집인인 데이먼 링커의 1월 23일 트위터(네오콘은 미 군사력을 민주주의 확산과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돕는 데 활용해야 한다)를 소개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드론 공격에 환호하는 네오콘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책을 추진할 세력일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기자회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신화연합뉴스
네오콘과 트럼프
트럼프는 신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는 신보수주의에 조종(弔鐘)을 울린 인물이다. 헤일브룬에 따르면 트럼프가 2016년 워싱턴에서 선언한 ‘미국 우선주의’는 오랫동안 공화당을 지배해온 로널드 레이건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네오콘이 미 대외정책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90년대다. 빌 크리스톨과 로버트 케이건은 1997년 네오콘의 산실인 싱크탱크 ‘새로운 미국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를 만들어 아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근간을 만들고 실행에 옮겼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폴 울포위츠, 국방차관을 지낸 더글러스 페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한 명이자 이탈리아 파시즘 연구 전문가인 마이클 러딘은 1996년 <배반된 자유>라는 책에서 좌파가 아닌 우파가 독재를 타도한 혁명적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2002년에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창조적 파괴는 우리의 중간 이름이다… 우리는 매일 옛 질서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딘의 ‘창조적 파괴’ 주장은 ‘부시 독트린’으로 발전했다. 부시는 2005년 1월 집권 2기 취임 연설에서 “모든 국가와 문화에서 민주주의 운동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씨를 뿌리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전에 발목 잡혀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비주류 트럼프의 등장으로 공화당 안에서는 트럼프 반대주의 운동이 일어났지만 반대주의자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지난해 1월 베네수엘라 특사가 된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애초 국무부 부장관 물망에 올랐다가 트럼프 반대주의자라는 이유로 낙마한 바 있다. <위클리 스탠더드>는 창간 23년 만인 2018년 12월 폐간됐다.
공화당의 재집권을 이뤄낸 트럼프는 고립주의자이자 불개입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하고, 엘리엇 에이브럼스 전 국무부 차관보를 베네수엘라 담당 특사로 기용하면서 네오콘의 목표와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강경파는 볼턴의 후계자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 브라이언 훅 이란특별대표, 마크 더보위츠 민주주의수호재단 대표, 데이비드 웜서 전 볼턴 보좌관, 린지 그레이엄·톰 코튼 상원의원 등이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자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도 포함된다. 그는 2018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란의 반체제 단체인 무자헤딘에할크(MEK)의 산하 조직인 국민저항위원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줄리아니는 이란 정권교체를 위해 MEK에 돈을 댔다.
솔레이마니 제거로 네오콘이 부상하고 있지만 트럼프가 네오콘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는 일단 이란과의 전쟁에서는 발을 뺀 상태다. 헤일브룬은 “이란과 관련해서 트럼프는 볼턴이나 네오콘처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폼페이오조차 트럼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네오콘이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느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고, 트럼프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네오콘 이념이 재부상했다는 것이다.
헤일브룬은 그 이유로 네오콘의 제도화를 들었다. 비록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의 산실이었던 PNAC와 <위클리 스탠더드>는 각각 2006년과 2018년 문을 닫고 폐간됐지만 민주주의수호재단, 허드슨연구소, AEI 같은 싱크탱크는 수십 년간 이란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책임자를 지낸 마이클 도런은 1월 3일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중동에 머물려면 이란의 지상 군사력을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제이미 플라이 ‘자유유럽방송’ 대표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이 군사행동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핵프로그램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정권의 불안정을 목표로 하는 작전계획을 짜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3일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암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 경향신문 자료사진
존 볼턴, 트럼프 발목 잡을까
지난 1월 26일 볼턴이 3월에 출간할 예정인 회고록 일부가 <뉴욕타임스>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해 8월 트럼프와의 대화 중 볼턴은 의회가 우크라이나에 승인한 원조 3억9100만 달러에 대한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집행 지연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수사당국이 바이든 전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넘겨주기 전까지 원조를 계속 보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민주당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온 것이라고 반기며 볼턴을 상원의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하는 반면 백악관과 공화당은 볼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며 그가 상원 증인으로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볼턴이 이 내용을 공개한 동기가 뭘까. 후앙 콜 미시간대 교수는 1월 28일 <트루스디그> 기고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첫째는 돈이다. 자신과 그의 책이 트럼프 탄핵절차에서 중심이 된다면 그는 회고록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볼턴의 책 가치는 대략 2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볼턴이 실제로 트럼프의 탄핵을 바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 콜 교수는 “볼턴과 펜스의 조합이 볼턴과 트럼프 조합보다 더 잘 맞는다”면서 “펜스는 이란에 대해 군사적으로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캐틀린 파커는 1월 29일 칼럼에서 볼턴이 내용을 공개한 것은 단지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했다. 파커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절조 있는 공평성’이다. 트럼프는 볼턴의 조언을 무시하고 트위터로 해고했다. 논란은 있지만 볼턴은 자신의 유산을 지키고 그가 가진 것을 완벽하게 트럼프에게 돌려주고자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동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볼턴을 상원의 증인으로 채택할지 여부다. 볼턴은 지난 1월 6일 성명을 내고 상원이 증인으로 소환하면 증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상원에서 증인 소환 안건이 통과하려면 과반인 51석이 필요하다. 현재 상원 의석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무소속 2석이다. 공화당에서 최소 4명이 이탈해야만 볼턴은 증인으로 상원에서 설 수 있다. 물론 볼턴이 상원에서 증언을 하더라도 탄핵안이 상원에서 가결되려면 67표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탄핵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론은 볼턴의 상원 증언을 원하고 있다. 퀴니피액대학이 1월 22~27일 등록 유권자 19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49%, 민주당 지지자 95%, 무당파 75% 등 74%가 상원 증언을 원한다고 답변했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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